연일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MeToo 운동이 해외에서 국내로 전파되면서 그 엄청난 폭발력이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성폭행은 정치계, 연예계, 문학계, 종교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그 중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은 그야말로 핵폭탄급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군의 대표주자들 중 하나로 준수한 외모와 젠틀한 매너 그리고 그의 깊은 눈에 담긴 정열은 젊은 지지층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그에게서 남미의 혁명가 체게바라를 연상하는 것도 그렇게 과장된 공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패한 권력, 그리고 그 권력에 빌붙어 있던 사회의 부조리를 일소하고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으로 나아가자던 그가 이젠 한낱 파렴치한 성폭행 혐의자로 전락해 있다. 그가 타도하자고 했던 적폐... 그 자신이 바로 그 적폐였음을 알고 있을까?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이 너무나 거대해서 자신의 악행을 덮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것이 잘못된 행위였는지 인식조차 못한 것일까? 어느 쪽이었든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는 두얼굴을 가진 괴물이었을 것이다.
조재현, 김기덕, 이윤택, 오달수 등 내로라하는 연예계 인사들 또한 성폭력을 자행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배우 조민기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입장에선 가해자가 누구든 같은 심정이겠지만 안희정과 같은 비중있는 정치인의 경우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다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근래에 보기드문 변혁을 경험하고 있다.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일들은 한두명의 히어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그동안 구태 정치에 신물이 나서 침묵하고 있었던 다수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 동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이번일을 계기로 그 침묵의 다수가 다시 정치적 냉소주의로 빠질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이런 의미에서 안지사는 피해자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서 우리나라 정치의 새희망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얼마전 미투운동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에 김어준이 뉴스공장 프로그램에서 '미투운동이 진보계열 정치인을 향한 공작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필자는 그의 의도를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적어도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미투가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어준은 정봉주 전 의원을 비롯하여 진보계열의 정치인들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공유되었던 불편한 과거 또한 많을 것이다. 김어준이 그 시점에 그런 얘기를 던진 것은 그가 알고 있는 많은 친구(?)들을 미리 디펜스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작금의 사태로 볼 때 그런 연막성 멘트로 막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님은 이제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미투운동의 파장으로 역시 남자는 세 끝을 조심해야 한다...라는 정신나간 소리도 많이 들린다. 이것은 이 사건들의 핵심을 전혀 보지 못한 탓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성폭력 사건들은 권력을 가진 인간이 권력을 가지지 못한 다른 인간에게 가한 성적인 학대인 것이다.
권력형 채용비리,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주민들의 갑질, 골목 상권을 장악한 재벌들... 이 모든 권력형 비리와 궤를 같이 하는 사건인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힘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한 또 다른 모습의 갑이었던 것이다.
절대선을 추구하지 말고 사소한 악을 일소하라!
절대선에 가리워져 사소하게 보이는 악들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며 사소하게 보이는 악들을 하나씩 일소해 나가는 것만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길이다.
오늘 같은 날 다시 돌아보게 되는 주옥같은 교훈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