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나에 대하여

roundyround(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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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별생각이 없다. 생각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주 파괴적으로 한다. 집중력과는 거리가 멀고,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한다. 뻔하지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문다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대체로 별생각이 없는 것과 더불어 요즘 강렬하게 궁금한 것이 별로 없다. 엄청난 호기심꾸러기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관심을 두는 영역에서 새롭고 멋진 것들이 등장하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두근거리곤 했는데. 그 많던 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진 적이 전에도 있다. 지금 갑자기 찾아봤는데 2008년 5월 21일에 쓴 글이다.

문득 드는 생각은
그 많던 나는 다 어디로 갔을까
노래방에서 페니실린의 로망스를 부르던 나는
홀든을 자처하며 홀든의 말투를 곧잘 따라 하던 나는
아라라트를 보고 아르메니아 역사를 뒤지던 나는
맘속 깊이 짜라 언니를 질투하던 나는
상기된 얼굴로, 진지하게 사후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나는
(그리고, 너희들은?)
문과대 큰 강의실에서 밤을 새우며 자크 라캉을 저주하던 나는
그 밖에 많은 나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원래 '나' 부분에 내 이름이 써있는데, 내 이름을 연타로 부르기가 부끄러워서 '나'로 바꿨다.

2008년 5월 21일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진 무수한 내가 있었을 것이고, 지금 나는 그 많은 나'들'이 어디로 갔는지 또다시 모르겠다. 동시에 저 모든 나'들'을 꿰뚫는 그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하나의 단어로 그 '나'를 정의할 수는 없고, 일부를 표현하자면 그것은 '구도자인 나'이다. 너무 거창한가...

답을 구하는 가운데, 영원히 모를 것만 같았던 일들을 알게 되거나, 또 모를 일들에 지쳐 일부로부터는 스스로 떨어져 나오거나, 했다. 나는 시를 쓰지 않지만, 그런 마음을 담아 쓴 시가 있다. 스팀잇에 공개하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든 김에 그냥 공개한다.

답

끝없이 구하는 사람은 어쨌든 답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게 된다고 믿고 있다
구하고, 물으며 한 걸음씩 걷던 그 시간 동안 길 위의 하늘은 어두워졌다
마른 바람이 자꾸만 목구멍을 긁는다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질서를 잃은 숨을 쉬다가, 캑캑 거리고, 눈물을 찔끔 흘리고, 제 분을 못 이겨 허공에 욕을 퍼붓고는 뒤를 돌아본다
길을 따라 이어진 발자국들이 보이고 그 끝에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나는 처음보다 더 모르겠다
이대로 걷다가 아주 멍청이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기대도 한다

2014년에 쓴 시이다. 시 같지 않지만 시를 쓰겠다고 쓴 글이기 때문에 시이다. 시를 통해 담아낸 생각대로 나는 처음보다 더 모르겠고, 아주 멍청이는 아니지만 조금 멍청이가 된 것 같기는 하다. 조금 멍청이가 되었지만, 과연 나쁘지는 않다. 그러려니 한다. 다만 무언가에 강렬한 호기심이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호기심 하니까 생각났는데.

대학교 1학년 때, 학교에 현수막이 붙었다. 라엘리언 무브먼트가 건대 새천년홀에서 강연회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호기심꾸러기 만렙이었던 나는 라엘리언 무브먼트가 어떤 이야기를 공유하는 집단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서 친구를 하나 꼬셨다. 혼자 가기는 무서웠다... 사실 꼬실 것도 없었다. 그녀는 매일 밤 방에서 수정구슬과 대화를 나눌 것 같은 사람이었다.

강연회장에 모여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긴 머리카락, 긴 수염, 위아래로 검은 의상이 차례로 생각난다. 너무 오래전이라 구체적인 기억은 왜곡되었을 수도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러했다. 우리는 뒤쪽에 자리 잡고 열심히 그 사람들을 구경했다. 강연회장에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라엘리언 무브먼트의 기원과 역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 몸을 복제하고, 외계인에게 송신한 유전자 정보를 다시 복제된 몸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영생한다고 했다. 유전자 정보를 어떻게 외계인에게 보내는고 하니, 침례와 똑같은 방식으로 몸을 강물에 담갔다가 나오면 된다고 했다. '외계인' 운운할 정도면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게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는 그 부분에서 아주 허탈한 기분을 느꼈다. 긴 머리카락, 긴 수염, 검은 옷의 사람들이 가입신청서를 나누어줬다. 나와 친구는 손을 꼭 잡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리고, 2008년의 대학로.

티베트 평화 연대 집회에서 커다란 외계인 탈을 쓴 사람들을 만났다. 라엘리언 무브먼트였다. 아... 맞다... 비폭력과 세계평화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이었지... 평화운동 집회에 가면 종종 등장한다고 한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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