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면 꼭 정신이 탈탈 털릴 정도로 며칠을 앓는다. 감기몸살은 물론이고, 가끔은 느닷없는 물갈이도 한다. 친구들이 한국 덥다 덥다 해서 정말 더운 줄 알았다. 보란 듯이 민소매에 쓰레빠까지 신고 인천공항을 밟았다. 밖에는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낮 최고 기온 43도였던 동네에서 막 날아온 나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이미 콧물이 찔찔 흘렀다. 동네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집에 와서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조카랑 온몸으로 놀았다. 그것도 모자라 근처로 이사 온 동생네 집에 가서 꽤 늦게까지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에도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고 심지어 끝내야 할 일이 있어 꼴딱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깐 자고 다시 밖에 나가 영화를 봤다.
"야, 적당히 해라."
몸이 비명을 질렀다. 아플 줄 알면서도 그리 했다. 입천장이 다 까질 것을 알면서도 뜨거운 코코아를 그냥 입에 후르르 흘려 넣어 버리는 마음과 비슷하달까. 집에 돌아와서는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숙면에 돌입,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잠만 잤다. 잠도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 중간중간 먹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어날 때마다 거울을 봤는데 얼굴이 너무 부어서 점차 평면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일주일은 자야 모든 피로가 풀릴 것만 같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내 어마어마한 두통과 메슥거림이 함께 찾아왔기 때문이다. 약을 먹어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넷째 날 밤에는 너무 아파서 절로 눈물이 흐를 정도였다. 베갯잇이 축축해질 때까지 울었다. 그러고 보면 몸이 아파서 울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2박 3일에 걸쳐 한국 오는 길에 고생을 좀 많이 했다.
멀미
다람살라에서 델리까지 가는 버스에서 늘 멀미를 했다. 그래서 대체로 비행기를 탄다. 무슨 배짱인지 이번에는 별생각 없이 예약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가 뒤늦게 운임을 확인했는데 보통 내가 내던 운임의 네 배는 되어서 포기했다. 도대체 평생 없던 멀미가 왜 몇 년 전 갑자기 시작되었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이번 멀미는 좀 심했지 싶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멀미 지옥. 꿀렁이는 버스 안에서 온몸으로 뉴턴의 운동법칙을 증명해내며 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식은땀이 나면서 손발이 차가워졌다. 손에 피가 돌지 않는지 손톱이 하얬다. 두 번이나 토했다. 앞 좌석 등받이에 고개를 파묻고 연신 가쁘게 숨을 내뱉고 있는 내게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비닐봉지를 건넸다. 고마워요.
오착륙
버스는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얼마쯤 더 달려서야 마침내 멈춰섰다. 사실 5분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였지만 나는 그 상황을 절망으로 받아들였다. 새벽 다섯 시, 쓰레기로 뒤덮인 거리에 여전히 자고 있는 개들이 얼핏 보아도 열 마리는 보였다. 엉망진창 보도블록 위를 휘청거리며 걷느라 내 오른쪽 허벅지가 자꾸만 캐리어에 가 부딪혔다. 그 자리에 피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연신 캐리어를 들었다 내렸다 했다. 겨우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기절 직전이었는데, 리셉션의 인도인 직원은 자꾸만 했던 말을 또 하게 만들었다. 결국, 짜증을 내고 말았다. 미안해요.
굶주림
겨우 침대에 몸을 뉘었다. 침대마저 꿀렁거렸다.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일어났다. 델리에서 들러야 할 곳들이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대충 씻고 나가 식당에 가서 국수를 시켰다. 세 젓가락 먹었나. 간밤의 멀미 기운이 다시 몰려오는 것 같아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물을 마셔도 토할 것 같아서 입술만 좀 적셨다.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식당 주인이 왜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았냐고 물었다. 밤새 멀미를 했어요. 저 어제 다람살라에서 왔거든요. 그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커드를 먹으면 좀 나아질 거라 했다. 커드 생각을 하니 또 속이 울렁거려 대충 대답하고 떠나버렸다. 원래 이 집 국수 참 좋아해요. 또 미안합니다.
불타는 미로
델리의 낮 기온은 42도였다. 최근 몇 년 더운 나라의 더위에 꽤 단련이 되어 견딜만하다 생각했는데, 아마 신체 활동이 정상적이지 않아 그마저도 착각한 것 같다. 델리에는 코넛 플레이스라는 곳이 있다. 나는 그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구역이 체계적으로 잘 나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인간의 공간지각능력을 농락하는 미로와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인생 최초로 눈앞에서 현금을 털리는 사기를 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 가고 싶었던 가게가 코넛 플레이스에 있었기에 가야만 했고, 역시나 보란 듯이 길을 잃었다. 나름 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검색해 찾아두었던 가게가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 가게를 기준으로 다음 가게를 찾아갈 셈이었는데, 기준이 흔들리자 내 머릿속 지도와 동선도 함께 엉망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지도를 검색할 수도 없었다. 제기랄. 급히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알려주면 친구가 가는 길을 검색해서 보내주는 방식으로 다시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겨우겨우 모든 미션을 수행했다.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물 한 병 사 먹지 않고 두어 시간을 불볕더위 속에 쏘다닌 후, 나는 탈수 상태였으나 깨닫지 못했다. 무슨 정신인지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어서 호텔에 가서 짐을 들고 공항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부탁한 술을 샀다. 그것이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인도에 열 번도 넘게 와놓고선 그걸 몰랐다.
관용의 사나이
델리 메트로의 모든 역에서는 엑스레이로 소지품 검사를 하는데, 술병을 들고 탈 수가 없다. 나는 정말 몰랐다. 내 가방에서 술병을 발견한 군인은 말했다.
"술병을 들고 지하철을 탈 수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세요."
공포의 교통 체증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택시를 탔다가는 비행기 놓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사정했다.
"이거 선물로 산 건데, 지금 이 길로 호텔 가서 바로 공항 갈 거예요. 한 번만 봐주세요."
군인은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여권을 보여줬다. 그는 '다음엔 절대 안 돼!' 하며 귀여운 미소와 함께 나를 보내주었다. 그의 관용이 나를 더 큰 불행으로 이끄리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방실방실 웃으며 군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는 나를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었다. 기어코 나를 돌려보냈어야 했다.
불관용의 사나이
왜냐하면, 호텔에서 짐을 챙겨 나와 공항철도를 타러 가기 위해 도착한 지하철역에서 불관용의 사나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코넛 플레이스에서 만난 군인이 나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면 나는 그 술병을 캐리어에 쑤셔 넣고 또다시 지하철을 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멍청한 나에게 예고된 불행이었다. 두 번째 만난 사나이는 울며 사정하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고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실제로 울었다. 수를 써보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억울하고 속이 상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지켜낸 술인데 버리고 가야 한다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의 단호함에 나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훔치며 항복을 선언했다. 빨리 공항으로 향해야만 했다. 술병을 내려놓고 다시 가방을 싸려는 내게, 불관용의 사나이는 비수를 꽂았다.
"이 술병을 이렇게 그냥 두고 지하철 탈 수 없습니다. 당신 손으로 직접 역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밖에 버리고 다시 들어오세요. 그래야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하이에나
그 말에 나는 진심으로 상처를 받아서 수 분간 더 실랑이를 벌였다. 저 진짜 늦었어요. 빨리 지금 당장 가야 해요. 그는 눈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캐리어를 질질 끌고 한 손엔 술병을 들고 역 밖으로 나갔다. 오토릭샤꾼들이 내 앞에 몰려들어 자기 릭샤를 타라고 난리였다. 나는 말 없이 고개만 저었다. 우르르 달려들었던 그들이 약간 주춤했다. 웬 아시아 여자가 눈물 젖은 얼굴로 위스키병을 들고 서 있으니 그 꼴이 얼마나 진기한 광경이었겠는가.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훌쩍거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먼저 눈치챈 사람이 다가와 여전히 호객하느라 야단인 사람들을 막아주었다. 훌쩍이는 와중에도 저들끼리 쉬쉬거리며 분위기 파악을 하는 모습이 좀 우스워서 속으로는 좀 웃었다. 나는 정말 미친 건가...
"이거 갖고 메트로 못 탄대요. 어쩜 좋아요. 흙흙."
그러니까,
"응, 맞아! 그거 안돼! 저기 쓰레기통!"
라며 해맑은 웃음과 함께 손가락으로 쓰레기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분노가 치밀었다. 아마 많은 여행자가 같은 이유로 술병을 저 쓰레기통에 버리고 갔을 것이고, 그 술들은 이들 중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가져갔을 것이 분명했다. 미친 나는 빨리 그것을 버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가야 하는데 무슨 미련인지...
바겐세일
"이거 375루피 주고 샀는데 200루피에 사실래요?"
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술값을 깎아 팔려고 하다니... 난 진짜 미친 건가? 375 루피면 6달러도 되지 않는 돈이다. 히죽거리며 쓰레기통을 가리키는 그들에게 도저히 이 술병을 고스란히 넘길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어떤 아저씨는 내게
"그거 저기서는 350루피야!"
라고 약 올리듯 속삭이고 지나갔다. 내 이놈들을 확 그냥! 그래, 차 타고 공항에 가면 되잖아! 나는 순간 이 술을 끝까지 사수하여 한국까지 가지고 가겠다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고, 느려 터진 인터넷으로 우버를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관광지가 아닌 이상 델리에서 그냥 지나가는 택시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잡는다 하더라도 바가지는 기본,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보통 택시를 예약하거나, 우버를 이용한다. 얼마 전 우버 앱을 지워버린 나를 죽도록 원망했다. 유심 카드는 히마찰 프라데시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델리에서는 로밍이 되는 상태여서 인터넷 속도가 끔찍하게 느렸다. 속이 타들어 갔다. 발을 동동 구르며 다운로드 상태를 지켜보다가 자연스레 사고가 정지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수 분간 백지가 된 머릿속을 부유했다.
이러나저러나 선물
정신을 차리고 다운로드가 반의반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지금 우버를 잡아탄들 교통체증 때문에 절대 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지하철역으로 올라오는 티베트 남녀를 붙잡아 세웠다.
"이거 친구 선물 주려고 샀는데, 이거 못 갖고 탄데요. 저 인도 아저씨들에게는 주고 싶지 않으니 당신이 가져요."
그들은 처음엔 심각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듣더니 결국에는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캐리어를 들고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가 지하철을 탔다. 불관용의 사나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도 한동안 울었다. 내가 사랑하는 인도는 이렇게 가끔 나를 엉엉 울게 만든다. 욕도 좀 많이 했다. 이놈의 나라 다시는 오나 봐라.
계산 착오
지하철 안에서 비행기 출발 시각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0분이나 앞당겨졌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내려온 나의 판단력(?)에 감탄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차 10분 전부터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내려서 미친 듯이 뛰었다. 비행기를 놓치는 것도 문제지만 비자 만료일의 밤 11시 비행기였다. 즉, 비행기를 놓치면 불법체류 1일 차가 되고 마는 것이다. 벌금 내면 별일 없이 출국할 수 있지만, 다음에 다시 인도 비자를 받을 때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두 개씩 뛰어 날아올랐다. 나는 내가 그렇게 힘이 센 줄 모르고 살았다. 사실 체력이 아닌 정신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늘 하던 생각인데 인간들은 자신이 가진 정신력의 크기를 가늠조차 하지 못한 채 화석으로 만들어버리며 사는 중인 것은 아닐까. 체크인 카운터에 줄이 너무 길어서 제가 이러다 비행기를 못 탑니다. 굽신굽신. 해서 겨우 체크인. 제가 이러다 비행기를 놓쳐요. 굽신굽신. 해서 엑스레이도, 출국 심사도, 통과. 그 와중에 공항에서 친구에게 부탁받은 물건들을 3분 만에 사고, 15분 전에 탑승. 엉덩이 붙이자마자 기절했다.
악몽
비행기는 홍콩에 한 시간 반 동안 섰다. 뒤에 앉아있던 인도 여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러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이다, 여기 그의 연락처와 주소가 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그의 번호로 전화 한 통화만 할 수 있을까 등등.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기절했다. 꿈속에서도 나는 비행기 안에 있었는데, 비행기 날개가 부러져 추락을 앞두고 있었다. 그 꿈은 너무도 생생해서 그 짧은 순간 '아, 나는 죽는구나!' 하며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착륙의 순간 단 몇 초 꾸어낸 꿈이다. 착륙하는 소리에 비행기 날개가 부러지는 꿈을 만들어냈나 보다.
웰컴 투 코리아
먼저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둘을 통화시켰다. 빠르게 걸어서 자동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짐 찾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녀가 기나긴 줄을 기다려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까지 20분가량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새를 못 참고 그녀의 남편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제 아내가 한국에 처음입니다. B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가족 상봉을 잠시 지켜보고, 부부와 번갈아 악수한 뒤 비바람이 몰아치는 공항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간 민소매와 쓰레빠 차림의 나.
인도에서의 마지막 1박 2일은 내게 지옥이었지만 인도 가족이 함께 보낼 한국에서의 두 달은 내내 행복하고 따뜻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