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참으로 여러 종류의 사막이 존재한다는 걸 나이 스물이 넘어서야 알았다면, 열대지역이나 중위도 뿐만 아니라 남극, 북극에도 사막이 있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면, 더구나 지구상 육지 면적의 무려 1/10 이상을 사막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와서야 알았다면 너무 무식한 걸까요?
'지구상에 사막이 이렇게 폭넓은 위도와 기후대에 걸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현재 인류의 1/10이 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의 무지를 위로하며 내 생애 첫 사막을 떠올립니다.
그때 터키 이스탄불을 출발 히말라야를 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하던 나는 이란의 카비르 사막 남쪽 언저리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모래 사막은 아니었지만 분명 자갈밭과 바위로 뒤덮여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사막(한자로 모래 沙로 쓰지만 모래 뿐 아니라 소금, 자갈, 암석 등등 표면 형성 물질에 따라 사막의 종류는 다양하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제야 '내 인생의 첫 사막'을 보게 되었다고 좋아라 했지요. 그러나 첫 경험의 환희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변함없이 똑같은 풍경을 지나가는 동안 한 달째 잊고 물을 주지 않은 화초처럼 시들어버렸습니다. ‘똑같은 풍경’은 ‘아무것도 없는 풍경’과 다를 바 없었던 거죠.
사막 위의 휴게소(라고 부르자니 말이 휴게소지 실상은 천막 아래 차와 빵을 파는, 마치 사극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막 같은 분위기의 가게였다)에 잠시 정차를 할 때 잠시 내려 볼일을 보는 게 무미건조한 리듬만 이어지는 사막에서 맞이하는 유일한 악센트. 치마 입은 여자들처럼 제자리에 앉아서 소변 보는 사내들 사이에서 나는 서서 소변 보는 유일한 사내. 볼 일을 보고 버스에 오르면 버스 차장은 승객들에게 향수 같은 것을 손바닥에 뿌려줍니다. 그 야릇한 향수 냄새는 순식간에 '땀'과 '먼지'와 섞여 독특한 냄새로 변하며 승객으로 미어터지는 버스 안을 가득 채우지요.
운전수 위론 18인치 TV 브라운관과 VCR이 설치 되어 있었지만 틀어주는 영화 대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더구나 같은 영화를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돌리는지 창 밖을 쳐다보다 화면을 보면 늘 같은 장면인 것 같았지요, 마치 창 밖으로 펼쳐지는 사막 풍경처럼. 결국 덜컹거리는 버스 유리창에 기대어 내가 할 일이라곤 공상 밖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유년시절 나는 드 넓은 사막 어디쯤에 바벨탑이 있으리라고 상상했습니다. 아마도 그런 상상의 뿌리엔 그 무렵에 본 만화책 <바벨2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 만화가 불법이던 시절, ‘김동명’으로 둔갑한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바벨2세>는 환상과 실재를 혼동하는 어린아이의 재능에 힘입어 사막을 사라진 바벨탑이 숨겨져 있는 장소로 여기게 만들었지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사막 어디쯤엔 모래폭풍으로 둘러싸인 바벨탑이 분명 있을 거라고.
그 후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나이가 들면서 바벨탑이 만화가 뿐만 아니라 예술가, 고고학자, 과학자들에게도 호기심과 영감을 불러일으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집, 역사서, 소설 등등 곳곳에 남아있는 바벨탑의 흔적. 브뤼헐의 <바벨탑> 그림, 고고학자 콜데바이의 지구라트 발굴, 소설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등등.
이란의 사막을 지난 후에도 또 몇 개의 사막을 더 지나고서야 한국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바벨탑에 대한 상념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바벨탑에 대한 망상으로 뇌가 통째로 부글부글 거리는 듯한 느낌.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책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처음엔 책 커버에 씌여 있는 제목만 보곤 순수문학이나 연애소설쯤 되나, 하고 짐작했어요. 그러나 속을 들쳐보니 작가의 휘황찬란한 이력은 제목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에스에프(SF)문학계에서 가장 권위를 자랑하는 휴고상, 네뷸러상, 존 캠벨 기념상, 로커스상을 휩쓴 작가. (근래 드니 블뇌브가 감독한 영화 <콘택트 ARRIVAL>는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덟 개의 중단편 중 첫 편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눈동자와 활자 사이에 파지직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바빌론의 탑>
<당신 인생의 야이기>에 수록된 <바빌론의 탑>은 일찍이 내가 알고 있던 SF소설이 아니었죠. 이야기의 배경은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였고, 로보트, 우주선, 외계인, 가상공간, 화성 등등 공상과학적인 사물이나 장소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설로 여기는 ‘바빌탑’을 실재했다고 상정한 뒤 그 안에서 누구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낯 선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지요. 소설 속으로 더 들어가자면,
멀리서 '바빌론의 탑'을 보면 오래전 대홍수를 일으켰을 정도로 엄청난 수량을 담고 있는 물탱크 ‘천정’과 인류가 발딛고 있는 ‘지상’을 팽팽하게 잇고 있는 밧줄처럼 보이고. 이란에서 온 힐라룸(주인공)은 천정을 뚫는 작업을 하기 위해 바빌론의 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바빌론의 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탑에서 살다가 탑에서 죽기도 하고, 바빌론의 탑 안에서 밭 갈고 채소를 가꾸며 지상을 떠난 지 이미 수십 년이 넘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빌론의 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자 길.
마침내 바빌론의 꼭대기와 맞닿은 ‘세계 그 자체의 천장’에 도착한 힐라룸은 천정을 뚫는 작업에 투입됩니다. 백색 화강암 같은 천장을 뚫으며 더 높은 곳으로 향해 올라가던 중 엄청난 양의 물에 휩쓸리고 말지요. 그는 맹렬한 급류에 휩쓸려 빛 한점 없는 터널을 지난 후에야 간신히 터널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마주한 풍경이란!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납니다. “그는 탑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할 작정이었다. 이 세계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를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이 소식은 <올드 보이> 반전쯤은 무릎 꿇게 하는 스포일러, 힐라룸으로부터 직접 들으시길)
2010년 최고층 구조물 부르즈 칼리파(162층, 829.84미터)가 두바이에서 개장했습니다. 2019년이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높이 1킬로미터가 넘는 제다타워(1,600미터)가 완공될 예정입니다. 국내에서도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들이 세워졌고 계속해서 지어질 예정이지요.
사실 10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는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인류가 초고층 빌딩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상복합빌딩의 경우엔 초고속 엘리베이터부터 영화관, 서점, 음식점, 쇼핑몰, 슈퍼마켓 등등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모든 물건과 서비스가 갖춰져 있지요. 지면 보다 공중 위로 올라간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우리 삶을 차지한 지 이미 오래. 우리는 이미 '바빌론의 탑'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사진 @roadpherom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