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곳곳에서 히말라야 산맥으로 트렉커들이 몰려든다. 특히 한국 등산객들 사이에서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의 인기는 대단하다. 오죽하면 인천~카트만두 직항로가 열렸을까? 근데 성수기에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는 건 주말에 북한산을 오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빨리 올라가지 않으면 화살코로 똥침을 찔러버리겠다는 뒷사람에게 밀리고 밀리고, 먼저 올라서 내려오는 등반객을 만날 때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러다 보면 하루 해가 다 저문다.
물론 길이 2400㎞에 이르는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엔 '에베레스트 트레킹 코스'나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도 여러 갈래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높이’와 ‘명성’ 때문에 에베레스트 코스나 안나푸르나 쪽으로 몰려든다. 영화 관람이든, 음악 감상이든, 립스틱 색깔이든 한쪽으로만 몰리는 한국 사회의 트렌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네팔에서 유유자적 히말라야, 산 그 자체를 즐기고 싶다면 '랑탕 히말라야 코스'가 최적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국인 탐험가 티르만에 의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진 랑탕 히말라야는 서구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름이지만 한국인에겐 생소한 곳이다.
아침 일찍 네팔 수도 카투만두를 출발해 점심시간 즈음이면 트리슐리에 도착해 샤브로베시행 버스로 갈아타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낡은 버스를 타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낭떠러지길을 따라 달린 후 샤브로베시에 도착하면 당신은 드디어 랑탕 강을 끼고 펼쳐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성수기도 한참 지난 2월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트리슐리 강가에서 보름간을 묵은 후 등반객들의 발길도 거의 끊어져 갈 무렵 랑탕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다. 오가는 등반객은 없고 고지에 사는 마을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날들이었다. 샤브로베시를 떠나 랑탕 히말라야의 품에 안긴 지 나흘이 지났을까? 해발 3,000미터에 위치한 ‘평화 가득한 식당’에서 티베트계 네팔인 요리사 우낀 라마를 만났다.
‘우낀’은 ‘웃긴’의 오타가 아니다. 그의 이름은 정말 ‘우낀’이었다. 한국어 '웃긴'과 엇비슷한 그의 이름과 딴판으로 우낀 라마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심오한 표정을 지닌 사내다. 근데 심오한 표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진함 때문에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웃음이 나도 모르게 계속 터져 나온다. 그의 표정과 말이 상대를 웃기기 위한 의도에서 발현된 절묘한 조합이라면 정말 지구상 최고의 개그맨이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마치 <럼두들 등반기>를 읽는 것 같았다.
요기스탄에 있는 럼두들은 해발 1만2,000미터가 넘는 만년설의 산. 등반대장 바인더가 이끄는 등반대가 럼두들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럼두들은 전인미답의 봉우리였다. 바인더는 길잡이, 보급 담당, 과학자, 의사, 통역사, 사진촬영 담당으로 이루어진 최정예 대원(?)과 요기스탄인 포터를 이끌고 럼두들 원정에 나섰다. 근데 문제가 심각하다.
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인 길잡이(같은 길을 맴맴 도는 지경까지 이르자 길잡이는 오직 직진의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 크레바스를 만나면 크레바스를 넘지 않고 크레바스 밑으로 내려가서 다시 올라와 오직 직진을 고집하는 해괴한 길잡이다) 계산에 계산을 거듭한 끝에 럼두들 정상까지 가는데 포터가 3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보급 담당, 발음상 실수로 3만명의 포터를 모집하게 만드는 통역 담당 대원(결국 출발도 전에 불필요한 포터들을 다시 해산하는 데 엄청난 돈이 들고 만다), 해면, 즉 바다 수면 높이가 해발 153피트라고 계산하는 이상한 과학자, 자신의 말대로만 하면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면서 저 혼자 온갖 질병에 걸려 골골거리는 의사까지. 이거 뭐, 배가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등반대가 통째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지경이다.
‘과연 이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 처절하게 이어지지만, 독자로선 사건 하나 하나가 포복졸도할 해프닝이다. 이 모든 해프닝은 등반대장 바인더의 관점으로 전개되는데, 그는 정말 세계에서 가장 눈치 없고, 꽉 막힌 등반대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반대는 마침내 세계 최고봉 럼두들 정상에 오른다!
그러나 등반대장 바인더를 역대 최고의 알피니스트 리트스에선 찾을 순 없다. 왜냐면 윌리엄 어니스트 보먼이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럼두들 산도 가상의 산이다.
산악인 사이에서 전설이 된 이 책을 작가 심산은 인수봉에서 비바크를 하는 중에는 절대 읽지 말라고 경고한다. 주체할 수 없는 웃음 때문에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그러나 인수봉 아니라 도심에서 특히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이동 중에도 이 책을 펼쳐 들면 안 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느닷없이 터져나오는 웃음 때문에 미친놈 취급 받기 십상이니까.
글/사진 @roadpheromone 로드 페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