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에 대해 쓰다가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냥 지우고 다른 글을 쓰기로 했다~
동서고금에서 민간인 학살은 정말 이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이 일어났지만, 현대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더 기분나쁘게 다가오는게, 광주 민주화 운동도 그렇고 그 가해자들이 주변 어딘가에서 섞여서 동시대를 평범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소름끼치는 개같음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인간 본성에 성선선이니 성악설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신뢰를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최소한의 자기보호를 위한 기제이기도하다.
아무튼 대신 쓸 수 있는 글이 뭘까 생각하다가 파리코뮌에 대해 써본다.
파리 코뮌은 동학농민운동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물론 동학은 제정을 옹호하는등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들이 있지만 말이다.
그것들은 자주를 위한 싸움이었고 생존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이며 실험이기도 했다.
자체적 정치조직 내지는 자치조직이 있었고 그 운영또한 나름 꽤 훌륭했다. 또 하나는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는 과정에서 외국 군대의 도움을 빌렸다는 것이다.
(자기나라 국민을 죽이는데 외국군대까지 동원하는 못난...)
그리고 그 양민학살까지도 비슷하다.
동학농민운동 이전엔 텐진조약으로 조선엔 10년간 큰 외국군대가 없었다. 이것은 짧다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조선으로서는 스스로 강해질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짜피 기울대로 기운 조선이기에,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는 왕조와 지배세력의 관심은 주로 기득권 유지이다.
나폴레옹3세가 스당에서 포로로 잡히면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프랑스의 패배가 기정사실이 되며, 왕정은 다시 끝이 나지만, 굴욕적인 강화협상에 다시한번 파리시민들은 반발한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정규군의 전투와 더불어 프로이센 군의 도움(퇴로차단)까지 받아서 코뮌을 잔혹하게 진압힌다.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거의 1세기동안 공화정과 왕정을 반복한다. 그건 혁명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말해준다.
파리코뮌 이후로는 더 정확히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로 프랑스는 다시 왕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 여전히 왕당파가 득세하였지만 파리코뮌은 어찌되었건 3공화제가 자리잡는데 유무형의 기여를 하였다.
파리코뮌은 소설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그 유명한 생 제르맹 백작만큼이나 (아 이건 발자크의 '나귀가죽'에서인가 '오페라의 유령'에서인가 살짝 헷갈립니다. 둘다 워낙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자주 언급이 되어있다. 오페라 극장의 지하에 수많은 유골들은 당시의 시체들이다.
파리코뮌는 프랑스 혁명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하지만 주로 노동자를 위한 사회주의적 가치를 실험한 이것은 이전것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당시 코뮌에서는 남녀평등적 가치(참정권)와 근로자의 근로시간단축등 지금의 우리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진보적 실험들이 이어진다.
나는 실패한 역사의 단편에 불과할지도 모를 파리코뮌을 항상 높이 평가해왔다. 이것은 어찌보면 노동계급일 수도 있는 나의 정체성 때문이기도 하고, 프랑스적 가치이지만 또 보편적 가치이기도 한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믿음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