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에 대한 인터뷰등으로 진행되던 다큐는, 다큐중간에 일어난 주인공의 신변상에 일어난 일로 내용에 변화를 맞는다.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다."
이말은 얼마나 맞는 말일까?
아무것도 모르거나, 그래도 만족하면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지만,
한단계 도약하고 싶다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을때 -예를 들면 공부-
돈이 있는 누군가는 쉽게 할 수 있는것들도, 좌절되거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
이때 가난은 정말 큰 제약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이 다큐에서 보여주는 많은 것들은 사실 가난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또한 딸(여동생,시동생) 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가족들은 마음속으로 서로를 원망하거나 자책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자 결과임을 보여주지만, 여기서 국가는 빠져있다.
가난속에서 하루하루 희망없이 사는 삶.
가난해도 희망이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꿈꾸기 힘든 가난이라면?
그렇게 때문에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다." 이런 말을 가져보고 누려본자가 감히 한다면,
그건 무지에서 나온 말이며, 공감능력 제로의 무책임하기까지 한 말이다.
또한 공적이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난은 나라님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라는 등의 말을 한다면,
그건 책임회피의 기만이다.
가난은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도약을 위한 기반이자, 짧은 어린시절동안 누려야할 권리(교육,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면,
이미 국가로서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그것보다도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보기 괴로운 다큐였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제목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은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