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관 시절 이야기를 한번 써보려한다 01

ribai(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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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6_14-34-47.jpg

난 25살이 되어서야 군대를 입대했다.
학교도 2번이나 휴학해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것이였지
그 휴학은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중이기 때문이였기도 했지만 내가 그런 휴학을 하고 군대를 미룬 이유는 군대에 있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임종을 못지키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부정맥이라는 질병과, 턱관절 장애로 오는 안면통증까지 있었기에 진단서를 모아서, 공익근무라도 하면 좋겠다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군대를 늦게까지 미루고 있었던 것도 있다 내자신에게는 불행이지만 그 병에 대한 증상들이 병무청에서 인정하는 기준에 미달했기에 나는 3급 현역을 받고 입대를 했어야 했다

약간의 내 신세한탄을 하자면 부정맥이라는 병때문에 공황장애도 있었고 수시로 과호흡이 왔다 (그게 과호흡인줄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리고 날 괴롭힌건 안면통증이란 병이 더 심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얼굴에 욱씬거리고 나사로 조이는듯한 불쾌감이 하루종일 지속되는 병이였다

여튼 이런 병이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지만, 안면통증은 진단서가 나오지 않는 병이였고 (MRI를 찍어도 그렇게 큰 턱관절 질병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상이 있긴했지만) 부정맥은 그렇게 문제 되지 않는 부정맥 종류 중 하나였기에 병무청 여직원이
"그럼 입대를 하실 수 밖에 없겠네요"라고 웃으며 라고 이야기해도
그냥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지

현역으로 입대하는 것은 정해졌고..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암은 참 신기한 질병이다. 세포 하나가 변질되어 그 세포를 포함한 유기체 전체가 그 세포한테 변질되는 것이니까.
그런 원리말고도 암환자 가족들에게는 마음을 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
암환자 당사자에는 큰 재앙이지만, 아마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급히 잃는 충격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지
아버지가 암환자 시한부여서 6개월이라도 아버지를 간호하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를 대비하는 시간이라도 주어지니까 (아버지의 암투병기간은 5년이였다 재발 후 6개월 뒤에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에 대한 슬픔이 한번에 오지 않았던거 같다)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고 나는 학교에 다시 복학을 하여 학교를 졸업한뒤,
시험을 하나 치르고 군입대를 계획했다 늦은 나이에 ,
안면통증은 달고 살고 있었고 어머니는 혹시나 내가 군대에서 적응을 못해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을 하셨지...

병사로 가면 꼭 육군 어느 부대에서 적응을 못한 관심병사가 되서 큰일을 낼 것 같았다
그만큼 고치지 못한 안면통증은 나에게 두려움이였다

학과가 방사선학과라서, 의무부사관으로 지원할 수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에 공군 의무병에서도 지원했으나 경쟁자가 많아서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복무기간이 길다보니 의무부사관은 경쟁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었다.

부사관으로 가면, 그대로 이등병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니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면서 돈도 좀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해군의무부사관을 가려했으나, 공군의무부사관도 합격을 하여 공군진주훈련소로 갔다. 친구들은 이미 전역을 했기에, 군대간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서 혼자 갔었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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