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인지 행동 치료, 건강 보험 적용
비싼 상담 치료를 저렴하게
오늘자 기사에 앞으로 정신과 병,의원에서 인지 행동치료가 건강 보험에 적용된다는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그동안 마음병으로 정신과 병원에 가서 간단한 약물 치료를 받게 되면 건강 보험을 적용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 상담을 받거나 좀 더 깊은 치료를 받게 되면 그런 치료에 대해서는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은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했죠. 앞으로는 이러한 고가의 정신과 치료까지 국가에서 일정부분 보조를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더 많은 도움을 받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얼마 전 이국종 교수라는 의대 교수가 언론에 나와 외상 센터의 환경의 열악성에 대해 언급했죠. 또한 이대 목동 병원 사건을 두고 근본적인 의료 문제가 낮은 수가에 있다라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많은 의료인들은 의료 수가(건강 보험이 정해준 치료 가격)가 낮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습니다. 원가보다 의료 수가가 낮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의료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밥그릇을 더 크게 달라는 소리 아니냐, 하는 비판도 많습니다. 문케어 정책 추진으로 앞으로 건강 보험 보장 확대에 대한 소식이 많이 들려올 듯 한데요, 이쯤에서 아주 간략하게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의료 가격은 어떻게 결정 되는가
각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요인
의료는 대단히 특이한 서비스 입니다. 일단 의료 행위를 하는 의료인들(의사, 간호사 등등)의 수를 국가가 제한하고 있죠. 일종의 독과점 시장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 가격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그 뿐 아니라 각 나라마다 의료 인력이 되기 위한 자격 취득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어 의료인이 국가를 넘나들며 의료 행위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가마다 치료비에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의료 집단에서는 우리 나라가 OECD 국가 중 치료비가 매우 낮은편에 속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 옳은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의료비와 의료 제도는 한 국가의 역사적 궤도와 정치적 이해 관계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이 부분은 복잡한 이야기이니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국민 소득이 비슷한 A 국가와 B 국가가 있습니다. A 국가에서는 다친 환자를 치료하는 데 1만원이 든다고 해봅시다. B 국가에서는 다친 환자를 치료하는데 10만원이 듭니다. 이것을 보고 '아, 다친 환자에 대한 치료는 A 국가보다 B 국가에서 10배쯤 더 큰 가치를 두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A 국가는 국가가 관리하는 건강 보험 제도를 실시합니다. 또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은 A 국가의 정책 방향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B 국가에서는 민간 보험 회사가 관리하는 건강 보험 제도를 실시합니다. 민간 보험 회사와 의사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의료비를 많이 받기로 했습니다. B 국가의 정부는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데 그닥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B 국가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비용은 A 국가보다 결과적으로 무려 10배나 높게 들게 된 거죠.
그러면 A 국가에서의 의사가 B 국가에 가서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B 국가는 그럴 줄 알고 A 국가의 의사가 B 국가에서 진료 행위를 하는 것에 많은 제약을 둡니다.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서죠. 결과적으로 A 국가와 B 국가에서는 똑같은 치료를 받아도 치료비가 크게 차이 나게 됩니다.
이쯤에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그러면 A 국가는 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려고 한 걸까요? 반대로 B 국가 정부는 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에 별 관심이 없을까요?
의료 보험 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독일 비스마르크 정부 때의 일입니다. 산발적으로 쪼개져 있던 작은 도시 국가들을 통합시켜 한 나라로 만든 독일은 국민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펼쳤습니다. 당시엔 공산주의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던 시기 입니다. 가난했던 통일 독일 국민들에게 공산주의는 매우 매력적인 이념이었죠. 이것을 두려워한 독일 정부는 그렇잖아도 국민 통합이 어려운데 공산주의까지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여러가지 복지 정책을 시행하게 됩니다. 이 때 의료 보험 제도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주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공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해주는 회유책의 일환으로 의료 보험 제도를 이용한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의료 보험 제도는 독재 국가를 거치며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일환으로 채택 되었습니다. 결국 전두환 정권에 이르러 체계적인 의료 보험 제도가 정착되기에 이르죠. 과정이야 어떻든,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의료 보험 제도를 갖추게 되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 A 국가 : 상처 치료에 1만원? 국가가 결정해 줌. 국민들을 통합 시키기 위한 제도 : 대한민국
- B 국가 : 상처 치료에 10만원? 시장이 알아서 결정함. 자유를 강조한 제도 : 미국
위에서 예를 든, A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에 해당 됩니다. A 나라가 정부 주도의 건강 보험 제도를 채택하고 낮은 의료비로 통일 시킨 이유는 아마도 국민들을 통합시키거나 정부에 대한 반발을 줄이고자 했던 역사적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B 나라의 경우는 굳이 국민 통합을 시킬 필요성을 못느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의료 시장 전체를 키워서 (즉 많은 의료비를 지불케 하여) 제약회사를 키우고, 의료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B 국가가 바로 미국에 해당 됩니다. 미국은 의료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 입니다만, 그만큼 의료 시장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처럼 큰 의료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제약회사와 발달된 선진 의료 기술을 일찍부터 키워올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의료 수가가 나라마다 크게 다른 이유는 이런 이유 말고도 수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이해를 위해 단순화 시켜 보았습니다. 의료 수가와 관련된 논란이 많은 데에는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완전한 의료 제도는 없다
하나 주고 하나 받기
아직까지는 어느 나라의 의료 보험 제도가 더 옳다, 그르다 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의 의료 보험 제도가 매우 좋긴 하지만, 그만큼 문제점도 많이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달마다 국민들에게 부과하는 의료 보험료를 함부로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정부 입장에서 국민들의 반발이 부담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고가의 진료비의 경우는 비급여, 즉 건강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치료 항목으로 빼놓습니다. 성형수술이나 피부과와 같이 미용 치료부터 시작해서 임플란트나 기타 여러가지 고가의 비용이 드는 항목은 제외 시키게 되었죠. 하지만 중증 질환과 관련된 치료는 가급적 건강 보험 보장 범위 안에 집어 넣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점점 커지는데 그렇다고 건강 보험료를 올리긴 힘든, 그와 같은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수가를 거의 동결 시키거나 올리더라도 아주 약간만 올려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수가가 낮기 때문에 올려야 한다 / 높기 때문에 내려야 한다, 라는 주장은 별 의미 없는 주장에 불과 합니다. 사람을 다루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수가를 올려야 한다, 라는 주장 역시 별로 설득력 있는 근거에 기반한 주장이라 볼 수 없습니다. 교통 제도를 개선하고 신호등 체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한 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재난 대책에 돈을 투입할 때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그런 쪽에 더 많은 돈을 사용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특히 응급 의학과나 산부인과, 외과나 재난 의료와 관련된 의료 수가가 올라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제 때 더 훌륭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그만큼 혜택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의료 보험의 수가를 올려 이런 분야의 의료 수가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료 집단의 주장 역시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일견 타당합니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이러한 쟁점 역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또 맞는 것은 아닙니다. 과연 의료 수가를 올린다면, 높아진 의료 수가 증가분이 정말로 환자들에 대한 혜택으로 돌아갈까요? 의료 기관이나 의료인들의 수입이 더 증가하는 효과만 발생하지는 않을까요? 그동안 의료인들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신뢰를 보여주어왔다면, 국민들도 보험료를 올리는데 더 쉽게 수긍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디에서나 그렇지만, 신뢰는 곧 돈과 같습니다. 의료 수가를 올렸을 때 그것이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더 좋은 혜택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만한 시스템이 먼저 구축될 필요도 있습니다. 의료에 들어가는 돈이 좀 더 투명하게 드러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의료는 또한 투명함과 거리가 먼 특징이 있습니다. 병원 수술실에서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동네 의사들이 정말로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를 해주고 있는지 환자 입장에서는 명확하게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의료인들은 자신들이 모두 합리적으로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있다고 하지만, 검증 시스템이 없는 한 이것은 무의미한 주장에 불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검증 시스템을 갖추기도 어렵고, 의료는 그 특성상 '불확실성' 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즉, 아무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최신 의료 지식과 기술로 치료를 한다 해도 그 결과를 확실히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죠. 완치율이 100%인 치료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동시에, 때로는 복구할 수도 없는 일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고장나면 수리 센터에 가서 수리해주어서 거의 원상태로 복구해 놓거나 완전 새 것으로 교환할 수도 있죠.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못 자르면 시간이 흘러 더 기른 후 원래 상태로 복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다가 실수로 아이 혹은 산모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의사가 실수 없이 최선을 다했다 해도) 이 상황을 복구할 수 없습니다.
비급여 항목이 건강 보험에 포함되면?
이번 경우처럼 정신과 인지 행동 치료가 건강 보험에 편입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될까요? 그동안 인지 행동 치료비는 비급여 항목으로 병원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이것을 같은 가격으로 통일 시키게 되니 그동안 높은 치료비를 받고도 성업중인 병원은 상대적으로 불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환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치료 가격이 낮아지는 혜택을 받게 되니 인지 행동 치료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겠죠. 특히 그동안 상대적으로 비싼 치료비 때문에 망설였던 환자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쓸데 없이 정신과에서 환자들에게 인지 행동 치료를 더 많이 권유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건강 보험 재정의 낭비로 이어지겠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무조건 좋은 일만 일어나는 정책은 없는 셈입니다.
정책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 합니다. 안 그런 일이 또 있겠냐마는 말이죠. 다만 그 과정에서 더 좋은 효과를 받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어떤 정책도 모두를 만족 시킬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료 정책에 흥미를 갖고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면 포스팅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건강해 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