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10일 (목) 마약 중독자의 일기
사진설명. 나는 혐의를 부인한 적이 없다. 경찰과 회사에 처음부터 모든 경위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마약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어서, 그때까지는 공개적으로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겠다고 회사와 상의한 결과였다.
이제는 기자들 사이의 소문을 넘어 일반인들에게까지 내 입건 사실이 퍼졌나보다. 전화통에 불이 난다는게 이런 거구나. 전화벨이 1분에 한번씩 울리는 것 같다. 회사의 연락은 계속 받아야 하니, 전화를 꺼놓을 수도 없고 돌아버리겠다.
당장 ‘투넘버 서비스’를 신청하든지 하고 기존 전화번호는 바꿔버려야겠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 아니다. 심장이 멎었다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반복해서 견딜 수가 없다. 심장이 요동치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마약도 안했는데 손이 떨리는 건 왜 인가.
이걸 어찌 해야 좋을까. 내 입건 사실을 일반에 퍼뜨린 경찰은 대체 누구인가. 잡아서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 아니, 잡을 수나 있을까. 경찰 수만 11만명이다. 어떤 놈이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대체 어떻게 아나.
기자들이 본격적으로 나와 관련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나보다. 이젠 모든게 끝났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이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질 수는 없을까. 영화에선 그런 일 자주 벌어지던데. 누가 내 심장에 불을 지른 것처럼 타들어가는 것 같다. 세상이 이대로 끝나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뉴스타파 박 선배가 급하게 떠올랐다. 이 선배한테만큼은 거짓말 한게 너무나 죄스럽다. 얼른 설명을 해줘야겠다.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저 입건된 거 맞아요. 그리고 어쩌면 마약 한겉 같아요. 제가 뭘 했는지는 정확히 몰라요. 저도 바보가 아닌데 대충 그 약을 하고나서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건지는 바로 직감을 했어요. 선배. 사람들한테 저 마약할 사람 아니라고 더 이상 해명해주지 마세요. 전 마약 따위를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건 맞아요. 그런데, 그런데. 전 마약할 사람이기도 했어요. 그게 진실이에요. 제가 이런 일을 경험해보니 알겠어요. 마약은 내가 찾아가는 게 아니라, 마약이 나를 찾아오는 거였어요. 선배에게 거짓말해서 미안해요. 회사와 제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야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박 선배는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나를 위로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난 박 선배에게 큰 결례를 저질렀다. 언젠가는 찾아 뵙고 죄송한 마음을 전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기자가 내게 들은 거짓 설명을 듣고 그 내용으로 기사를 썼나보다. 기자들이 속보경쟁에 뛰어드니 미디어오늘 기자도 잠시 정신줄 놓은 건가.
‘바보야! 그건 거짓말이란 말이야. 기사를 안쓰겠다고 하니까 내가 거짓말로 설명해준 거라고! 나한테 한번더 사실확인을 하고 기사를 쓰던지 해야지. 그걸 그대로 기사 쓰면 어떡해!’
모르겠다. 나한테 다시 한번 사실 확인도 안하고 기사를 쓴 건 미디어오늘의 책임이다. 멋대로 해라. 오보의 책임을 나한테 묻지 말아라. 아니다. 나도 잘한게 없지. 내가 미디어오늘에 피해를 입힌 걸까. 아니다. 내가 미디어오늘한테 피해를 당하고 있는 거잖아. 아니야. 둘 다인 것 같다.
나한테 지금이라도 이 기자가 전화를 걸어오면, 내가 자세히 설명해줄텐데 전화 한통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전화를 먼저 해줘야 하는 걸까. 아니다. 내가 그럴 의무는 없지 않나. 도통 오늘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감당도 안된다.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는데, 회사에서 나를 가장 아끼는 회사의 두 선배가 나를 찾아오겠다고 한다.
“어디냐? 많이 힘들지? 저녁에 집으로 찾아갈게.”
“아닙니다. 제가 찾아뵐게요. 회사 근처까지 갈게요.”
횡단 보도 건너편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선배가 보였다. 만나자마자 허리를 굽혀 죄송하다고 말했다.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 선배들은 내가 한겨레 입사 때부터 가장 의존하고 믿고 따랐던 분들이다.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내가 몇 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았던 것들, 그리고 우울증 약에 의존해 몇 년을 버텼던 것들, 회사에서의 고립감과 스트레스들, 끝없는 경쟁과 견제들. 내가 대외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면 낼수록 더 외로워지는 이상한 상황들. ‘너가 일을 잘하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다들 너랑은 일 같이 못하겠다고 한다’고 대놓고 말해버리는 몹쓸 선배들. 내 출입처 취재원들에게 나에 대해 험담하고 다닌 선배들에 대해.
그런 상황에서 내가 마음을 주었던 어떤 사람. 그가 하필이면 마약중독자였던 사실들. 그러다 벌어진 아찔한 사고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난 펑펑 울어버렸다. 선배도 같이 울어주었다. 선배는, 이 회사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나 외에 여럿 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선배는 가슴으로 들어주는 듯 했다. 선배도 말없이 나같은 고통을 겪었던 것일까.
하지만 우울증을 앓는다고 사람들이 다 마약을 찾는 건 아니다. 난 분명 잘못한 것이다. 어떻게 회사 동료 선후배들에게 사죄를 구할 수 있을까. 마침 어떤 선배가 내게 사과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진정으로 조직에 대한 애착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진정으로 사과문을 올리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자유와 쾌락, 또는 실수가 어떻게 남은 이들을 속박하고 남은 자들에게 오욕이, 지옥이 되는 지를... 나는 이 고통을 감내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건 또 그러려니 합니다. 한겨레란 이름은 누구 하나의 이름보다 너무 귀합니다. 될진 모르겠지만 한겨레와 시민 모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 바랍니다.”
정답이다. 나는 사과문을 올려야 한다. 한겨레라는 귀한 이름을 이렇게 사람들에게 조롱거리 입방아에 오르게 만들다니. 죽을 수만 있다면, 죽음으로써 이 죗값을 다하고 싶다. 내게 부모님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서 책임질 가족이 없다면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할까. 죽음으로써 나의 미안함을 설명할 수 있을텐데.
변호사에게 급히 문자를 보냈다. “당장 공개사과문을 올릴까요?” 변호사는 반대했다. 추후에 올리든지 하라고. 지금은 어떤 결론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니 어떤 글도 올려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일단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과는 반드시 해야 한다. 때와 형식을 잘 생각해봐야겠다.
나를 아껴주는 또다른 선배가 보고싶다고 연락이 왔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회사 근처에서 선배를 만났다. 야근을 끝내고 나를 보러 부랴부랴 달려와준 선배가 고맙다.
“내가 아는 어떤 방송사 동료는 찜질방에서 돈을 훔치다 걸려서 입건된 적 있는데 회사가 손을 써서 유야무야 되고 아직도 회사 잘만 다니고 있어. 그런거에 견주면 너가 지은 범죄는 다른 피해자도 없는데 네가 겪는 고통과 비난이 너무 큰거 같다.”
선배 말은 맞다. 내가 겪는 고통은 너무 크다. 그러나 어찌됐든 내 죗값은 치러야 한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창피하다. 기자가 마약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그 누구보다 법과 도덕에 민감해야 할 직업인이 기자가 아닌가. 사람들은 나를 앞다르고 뒤다르고 낮과 밤이 다르다고 생각할 거다. 난 그런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아니 그정도 비난을 받아도 마땅한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를 죽이고 싶을만큼 밉다가, 내가 죽을죄를 지은건가 불쌍해보인다. 오락가락한다. 뭐가 맞는걸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단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앞선다. 아마도 이 선배는 내가 혹여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이런 식의 위로라도 해준 걸까.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긴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어두컴컴한 밤길을 어떻게 운전해서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아니, 나를 위한 하루가 있기는 할까. 내일 도살장에 끌려갈 운명을 미리 알고 있는 가축의 심경이 나와 같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