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17일 마약일기
노사 협약에 의해 확립된 해고의 규칙이라는 게 있는데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한 회사를 어떻게든 바로 잡아야 한다. 직원이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 직원 역시 노사 협약의 당사자다. 이권 인권침해다. 한겨레가 인권침해를 하다니. 내가 이 회사를 떠날 때 떠나더라도 이런 관행이 반복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한겨레노동조합 대표에게 도와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조합원의 부당한 권리 침해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 그것이 노동조합의 의무다’라는 답신이었다. 노동조합의 존재에 새삼 다행감을 느낀다. 난 징계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어떤 처분이든 달게 받을 생각이다. 다만, 그 징계의 수위를 권한이 없는 편집국장이 일방적으로 통보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박용현 편집국장은 월권 행위를 저질렀다.
오후에 나영정씨의 집을 찾았다. 어제 내게 기적처럼 연락을 준 나영정씨라는 분이 궁금하다. 한국에 마약 사용자의 차별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연구 모임명은 POP 라고 한다. 마약 사용자가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집단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였다.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서 좀 황망함까지 느껴진다.
떨어지는 이슬비가 아스팔트를 두들긴다. 흐린 날씨는 원래 흐릴 운명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흐리니까 내 기분에 맞춰주는 날씨인 것일까. 비참하다는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내 심경을 하늘이 대신 알아주는 듯 해 기분이 묘하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촬영하던 경순 감독도 때마침 나를 걱정하며 연락이 왔었다. 나영정씨 집에서 같이 만나기로 했다. 경순 감독은 나를 보자마자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음모아니에요? 경찰이 허재현 기자에게 보복하려고 표적 수사를 한 것 아니냐고.” 음모일까. 그렇다면, 나에게 약을 건넨 사람도 경찰이 보낸 정보원이었을까. 몇 개월간 계속 약을 같이하자며 SNS로 꾀어내려 한 얼굴없는 인간들이 경찰이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상상까지 하기엔 내가 가진 증거가 너무 없다. 경찰이 나에게 마약을 주었건 어쨌건 간에 나는 그 약을 받아들였다. 그 결정은 오롯이 내가 한 게 맞다. 내가 그에 대한 죗값은 치러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나영정씨와 경순 감독이 머리를 맞대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논의해주었다. 일단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최소한 검찰의 기소여부가 결정된 뒤 징계의 수위를 결정해달라고 호소하기로 했다. 주요 인권단체 인사들과 사회 유력인사들을 중심으로 탄원서를 받아 회사에 제출하기로 했다.
나영정씨와 경순 감독 두분이 적극 도와주시기로 했다. 나영정씨는 이런 식으로 마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당하는 그런 한국 사회의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나에게도 논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나는 마약을 한 것은 맞다. 결과적으로 그렇다. 설사 처음에 그게 뭔지 모르고 했다고 치더라도 그 죗값은 치르는게 맞다. 그러나 나는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해태 행위를 한게 없다. 내가 즉시해고에 이를 정도의 중범죄를 저질렀다는건가. 아니다. 불과 며칠전까지는 죽어도 마땅한 죄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거지?
아니다. 죄의 경중을 따지기도 전에 마약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해고되는 건 나 개인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해고되어 왔을까.
소리 지르자. 아아아아아아!!! 더 크게, 아아아아아아!!!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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