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21일 (월) 마약일기
회사에 제출할 탄원서가 대략 완성되었다. POP(power of pleasure·마약 연구모임) 활동가분들이 과거에 조사해둔 자료가 있어서 그것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내용을 보면, 기자인 나도 몰랐던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유엔 인권대표가 2015년 11월 단순 약물 사용자에 대해 비범죄화 하고 약물 사용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마약 사용자에 대한 보편적 원칙이 있었는데 나는 별로 관심 갖고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자 이런 발표들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그동안 마약 사용자들에 대해 ‘이해 안되는 범죄자’ 정도로만 관심을 기울였던 나였다. POP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왜 이런 분들에 관심조차 없었을까. 유엔이 저런 원칙들을 확립해가고 있는데 왜 나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내안의 혐오였을까. 아니면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할 모순들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나조차도 이런 지경이었는데, 지금의 <한겨레>를 어떻게 탓하랴.
만약 이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회사 징계위원회에 아무런 준비없이 나가야 했을 것이다. 마약쟁이가 벌거벗은 채로 사람들 앞에 끌려나가 돌팔매질을 당하기 직전인데 그래도 POP가 내게 겉에 걸칠 얇은 속옷 정도라도 마련해준 느낌이다. NGO 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불행한 일도 벌어졌다. 나를 도와줘야 할 노동조합이 중간에 붕 떠버렸다. 노동조합장이 회사와 마찰을 겪고 그만 사퇴해버렸다고 한다. 내 문제 때문인건지 애초에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인지. 둘다인건지 모르겠다. 이런 제기랄. 조합원의 부당한 상황에 같이 항의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왜 잠적해버리는가. 노동조합도 나때문에 혼란스러운건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 앞에 마약은 차마 용기 내기 어려운 주제란 말인가.
내일이 징계위원회다. 나는 어떤 일을 겪게 될까. 두렵다. 잇몸이 성하지 않은데 차가운 물을 마시면 기분 나쁜 시림을 느끼곤 한다. 구멍이 뚫린 가슴에 누가 얼음물을 붓는 것처럼 시리고 아프다. 살벌한 봄을 지나고 있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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