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일기] 맹봉학 선생께 말했습니다 "이러다 제가 남자 김부선이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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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봉학.jpg 맹봉학 선생님(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는 최근 개봉한 영화 <앨리스죽이기>의 김상규 감독.

얼마전(7일) 배우 맹봉학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저와는 알고 지낸지 10여년쯤 되는데 오며가며 인사는 하고 지냈지만 같이 밥을 먹거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해본지는 꽤 되었습니다. 맹 선생님께서 최근 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고 밥을 사주시겠다고 해서 대학로로 찾아뵈었습니다. 요즘 장애인 극단 소리극인 '옥이'에 출연하고 계시거든요.

맹 선생님과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고 차를 마시러 갔습니다. 그런데 뭔가 맹 선생님께서 창밖을 계속 바라보시면서 저와의 대화 자리를 어딘가 불편해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는데, 좀 제 말씀에 집중을 안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속으로 '왜 저러시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좀 바쁘셔서 그런가 했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얘기가 나왔는지, 제가 고개를 푹 숙이고 수줍게 웃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맹 선생님께서 의외의 말씀을 뱉으셨습니다.

"이제 좀 내가 알던 허기자답네. 인상좀 그만 써. 내가 너무 불편했어."

헉.

그때서야 깨닳았습니다. 제가 맹 선생님을 처음 만나 밥을 먹는 순간부터 차마시러 이동하고 찻집의 앉은 자리에서까지 인상을 쓴 채 계속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정확히는, 제가 왜 마약을 하게 되었고 제가 그간 사회로부터 받게 된 처분과 어떤 비난들에 대해 억울하다고 느끼는지 등등을요. 거의 한시간 넘게.

"허기자. 사람들은 생각보다 허 기자가 왜 마약을 하게 됐는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이젠 좀 그 부담을 내려놓고 편하게 지내보면 어때요?"

그렇구나. 사실 그간 저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왜 마약을 하게 됐는지' 설명하고, 어떤 점을 반성하고 있으며 어떤 점을 억울해하는지 이해를 구하는 대화를 당연하게 해왔습니다.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들으러 저를 만난다고 의례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맹봉학 선생님은 수년간 심리적인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해 '심리 치유 연극' 자원 봉사를 해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의 심리 상태를 바로 읽어내셨습니다.

"허기자. 아직도 많이 힘들고 억울하지요? 아무래도 허기자에게는 편안한 대화를 하는 연습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와 한달에 한번 만나서 차한잔 할까요? 정말 아무런 복잡한 이야기 없이, 아무 얘기나 하는 거예요. 저는 비록 돈 많이 못버는 배우로 살고 있어요. 어떻게 된게 이명박박근혜 정부때보다 더 일감이 없어. 그래도 지금 주어진 일에 늘 감사함을 가지려 노력해요. 어차피 상황이 달라질게 없는데 불만을 가져봤자 뭐해? 지금 주어진 조건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편안해져."

하긴. 생각해보면, 맹봉학 선생님은 이명박근혜정부 10년동안 이런저런 보이지 않는 탄압을 받아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텐데 표정에서 드러나듯 인상이 여전히 밝고 선하십니다. 그게 저런 삶의 태도덕분일지도 몰라요.

사실 저는 여전히 마약 외에 다른 화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한 것 같습니다. 1년간 마약과 마약으로 인해 달라진 제 삶과 저를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제 삶의 중심에는 마약 외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약 이야기 외에는 주변에 잘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 예를 들어 어제 어떤 떡볶이 집을 갔는데 정말 맛있었다든지, 어제 무슨 영화를 보았는데 어떻게 보고돌아왔는지 등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맹봉학 선생님을 한달 뒤에 다시 보더라도 떡볶이나 날씨 이야기 등은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며칠 뒤에는 총리실에서 일하고 있는 한 공무원 지인을 만났습니다. 고맙게도 저에게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주더군요. 저는 또 저를 위로해주는 자리이니 그분에게도 저의 '마약 1년'의 삶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분도 제게 맹봉학 선생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기자님. 이제는 좀 지겨워요. 마약 이야기 그만 하세요. (웃음)그리고 그만좀 미안해 하세요. 너무 그렇게 얘기 안하셔도 돼요." 맹 선생님께 며칠전 들었던 지적이 있던 터라, 지인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내가 또 마약 이야기만 하고 있었구나.'

중독자들의 삶은 대체로 저와 비슷할 겁니다. 하루 종일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거든요. 무슨 이야기냐구요? 마약 하고 싶은 걸 계속 참아야 하거든요. 한번 시작된 마약중독은 이렇게 지독합니다. 그러니 온통 머릿속은 마약이지요. 또는, 마약과 형사처분으로 인한 삶의 파괴와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일들의 반복이지요. 그러다보니 인상을 쓰고 사는게 일상이 되었나봅니다. 맹봉학 선생님은 수년만에 저를 만나서 그걸 발견하신 거고요.

"선생님. 어쩌면 제가 제대로 마음을 치유하지 않고 분노와 화병을 계속 갖고 살면 '남자 김부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는 김부선씨가 왜 늘 화난 표정을 짓고 사는지 솔직히 이해가 돼요. 저역시 마약 사건을 겪고 사회적으로 벼랑끝에 내몰린 뒤부터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많이 내고, 감정 절제가 잘 안돼요." (※김부선님 죄송합니다. 김부선님을 모욕하려는게 아니라, 마음의 병이 깊은 사람들의 흔한 특징중의 하나라는 것을 설명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김부선님의 치유를 함께 응원합니다.)

저는 여전히 마음의 병이 큽니다. 기자로서 사회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심리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고 느껴요. 취재와 기사 작성 때 객관성을 유지하려면 좀더 차분해져야 하는데 이런 점은 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언제쯤이면 저도 좀 편안하게 일상의 사소함을 즐기며, 주변 사람과의 대화가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저와의 대화가 불편하면서도, 저를 다시 안보겠다는게 아니라, 한달에 한번씩 차 마시면서 편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해주신 맹봉학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고민많은 삼순이가 아버지 찾아가서 주저리주저리 아무말이나 내뱉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거처럼, 맹봉학 선생님 자주 찾아뵙고 편안하게 대화하고 웃다 오는 법좀 배우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