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16일(수) 마약중독자의 일기 (1)
낮 12시. 이은의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한겨레신문, 아니 우리 회사가 내 모발에서 필로폰이 검출되었다는 기사를 썼다는 거다.
이럴수가. 내가 한 마약이 필로폰이었구나. 대마초나 프로포폴이 검출되는 정도이길 기대했는데. 역시 그렇구나. 대충 짐작은 했지만 난 마약 중에서도 가장 사회적 혐오도가 큰 필로폰을 한거였다. 그래. 누구를 탓하랴.
그런데 가만. 경찰은 아직 나한테 아무 통보도 안했는데. 이 변호사에게 경찰로부터 연락왔냐고 물어보았다. 역시 이 변호사도 아무 연락을 못받았다.
이럴수가. 경찰은 당사자보다 회사에 먼저 이 사실을 알리는구나. 기자들에게 내 피의사실을 먼저 알리는구나. 이래도 되는건가. 마약을 한 사람에게는 어떤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구나.
팀장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차가운 목소리. 차갑다는 말로는 좀 설명이 부족하다. 뭐랄까. 귀찮은 보이스피싱 전화 따위를 상대하는 것 같은 목소리. 세상 가장 벌레만도 못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 같은 목소리. 당장이라도 내 심장을 얼려버릴 것만 같은 한파같은 목소리가 내 따귀를 때리듯 내리쳤다.
“이미 기자들이 너 모발검사에서 뭐가 나왔는지 다 알고 있다. 이젠 기사를 안쓸 수가 없어.”
그는 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챙겨주는 팀장이 아니었다. 그냥 그는 회사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회사원이었고, 나는 문제를 일으킨 사원에 불과했다. 아니다. 이건 내 추측일 뿐이다. 팀장은 ‘허재현 동의없이는 기사를 쓰지 말라’고 항의해주었는데 편집국장에게 거절당했을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너무 비참하다.
한겨레 쪽에서는 당연히 기사를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피 냄새를 맡은 타사 기자들이 먹잇감을 물어 뜯기 위해 짐승같은 본능으로 달려들고 있을거다. 괜히 아무 것도 해명하지 않았다간 나를 과잉보호 한다는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내가 회사에 끼친 물의가 있으니 한겨레가 나와 관련해 기사를 쓰는 것을 뭐라 할 수 없다. 그래, 이해하자. 일단 내용부터 확인하자.
차마 인터넷에 접속할 용기가 안난다. 이 변호사에게 해당 기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기사를 읽어보고 나는 다시 한번 까무라쳤다.
“허재현 기자의 해고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 드립니다.”
잠깐만. 이래도 되는건가? 해고라는 징계는 편집국의 권한이 아니다. 엄연히 노사 협약에 의해 징계위원회가 열려서 그 심사결과에 따라 징계 수위가 결정되어야 하는건데, 한겨레 편집국장이 무슨 권한으로 나의 해고를 결정한다는 건가? 내가 어차피 회사를 떠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건 합법적인 해고가 아니지 않은가.
팀장에게 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해고 절차에 착수했다는 표현은 수정해주세요.’ 팀장은 편집국장에게 보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응답이 없었다. 역시. 그렇구나. 팀장은 나를 위해 안에서 싸워주고 있지 않구나. 모든 것을 믿고 상의했던 팀장에게 배신감이 밀려온다. ‘너도 살고 회사도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나. 나를 해고할 작정은 이미 하고 있으면서, 그냥 내가 다른 돌발행동을 못하도록 묶어두기 위한 사탕발림이었나.
어쩔 수 없이 편집국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국장님. 제가 너무나 큰 누를 끼쳐서 면목이 없는 줄은 알지만 부탁하나만 드립니다. 해고 절차에 착수했다는 표현은 기사에서 수정해주십시오. 징계 수위의 결정은 징계위원회에서 하는 것이니 징계절차에 착수했다고 해주십시오.”
박용현 편집국장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이 변호사가 화가 나서 직접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사건 당사자인 본인과 문구 등 협의 없이 기사를 낼 수 있냐’고 따졌나보다. 들려온 대답은 ‘언론사가 취재해서 기사를 쓰는 건 당연한 권리다’는 식의 설명이었다고 한다.
저게 내가 믿고 따라왔던 팀장이 한 소리라니. 나를 한번이라도 후배로 생각했다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허 기자가 왜 그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우울증에 걸렸는지 알 것 같아요.”
이 변호사가 나보다 더 격앙된 목소리로 화를 내었다. 이 순간, 나를 위해 분노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다. 날카로운 칼로 갈기갈기 온몸이 찢겨진 걸레같은 기분이다. 걸레같은 사람도 인권이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선 안되는건데, 한겨레도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냉정하고 저질적인 폭력을 품고 있던 회사였구나. 나를 죽여라. 그래. 그래야 니들이 살거니깐.
어떻게든 회사는 살려보겠다고 기자들에게 거짓말까지 앞장서 했던 지난 일주일의 허재현을 저주한다.
(2편에 계속)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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