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마약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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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11일(금) 마약중독자의 일기

오줌보가 터질 것만 같다. 그래도 화장실을 못가겠다. 침대에 누워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방문을 나서는 것조차 못하겠다. 침대라는 사각 공간 밖으로 발가락 하나조차 내밀지 못하겠다. 그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끙끙댄다. 이게 광장공포증이나 공황장애같은건가. 분명 나 외에 아무도 없는 방인데, 아무도 없는 깊은 곳이 있다면 계속 도망치고만 싶은 이 기분은 무엇인가. 나라는 사람이 1 마이크로그램 미만으로 계속 작아지다가 아예 사라지면 좋겠다. 그러면 밖에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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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시쯤 되었지? 낮 12시가 다 되어가는구나. 혜문스님과 점심 약속이 되어 있는데 못 지킬 것 같다. 스님에게 오늘은 집밖에 도저히 못나갈 것 같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스님은 그러자 직접 차를 몰고 30분만에 집 앞으로 찾아와 주었다. 드라이브 하면서 바람을 쐬어줄테니 마음을 추스르자고 스님은 위로해주셨다.

남양주 인근으로 스님의 차를 타고 바람을 쐬었다.

“허 기자님. 인생 3막을 연다고 생각하세요. 이제 한겨레 기자로서의 미련은 버리고 새 인생을 살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때가 찾아와요. 그 인생을 재미있게 살면돼요. 마약은 좀 챙피해서 그런 거지, 그렇다고 허기자가 무슨 뇌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인 거도 아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곧 잊혀질 거예요.”

스님의 충고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두렵다. 난 연로하신 부모님을 끝까지 봉양해야 한다. 기사를 쓰고 직장에서 월급받아 부모님께 갖다드리는 것 외에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운 방법이 없다. 내가 과연 부모님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한 3개월 푹 쉬면서 마음을 정리해보세요.”

스님의 말은 고맙지만 난 3개월이나 쉴 형편이 되지 않는다. 우리 집은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된다. 회사에서 잘리면 막노동이라도 해서 바로 돈을 벌 것이다. 부모님께 드릴 생활비가 절대 끊기면 안된다.

스님이 고기를 구워주었다. 배는 안고픈데, 음식이 눈앞에 있으니 또 목구멍으로 뭔가는 계속 넘어간다. 이런게 사는건가. 아니, 살아지는건가. 살고싶은 마음이 없는데 살아지는 것이란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나는 굉장히 삶의 의지도 강하고 자존감이 센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며칠만에 삶의 태도가 달라질수 있는 것이구나.

스님과 헤어지고 서울동부지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동부지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인 한 변호사와 저녁 약속이 예정돼 있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온다. 모 대기업 관련 비리를 제보하려고 나와 이전부터 수차례 연락해왔던 분이다. 이분은 아직 나와 관련한 찌라시나 기사를 못본 모양이다.

“죄송한데 제가 곧 부서를 이동하게 될 거 같아서요. 선생님께서 제보해주시는 내용을 기사로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제보를 거절해봤지만 그는 그래도 한사코 나를 만나러 온다고 한다. 제발 자기가 준비한 자료만 받아달라면서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찾아오겠다 한다. 제보자들의 애타는 마음을 알기에서울동부지검 앞으로 오라고 했다. 난 곧 잘릴 기자인데. 마약이나 하고 다닌 쓰레기 기자라는 게 곧 알려진텐데. 나한테 의지하시면 안되는데. 이말을 차마 못하겠다. 제보자를 만나 어차피 기사로 쓰지도 못할 제보 내용을 30여분간 차분히 들어주었다. 회사와 상의후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하며 그를 겨우겨우 돌려보냈다. 그분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는 대기업 비리 관련 제보라서 내가 보도를 망설이는 것처럼 오해하는 듯 했다. 내가 그럴 리가. 다만 이젠 자격이 없는 기자라서, 그에게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멀리하려는 것인데. 모르겠다. 내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분도 조만간 알게 되겠지.

제보자와 헤어지자 박아무개 변호사가 환한 웃음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어스름이 낮게 깔려가는 동부지검 앞 법조 거리를 박 변호사와 함께 걸었다. 박 변호사는 얼마전 한 프리랜서 기자와 함께 억울한 사건을 파헤치며 재심을 이끌어내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박 변호사에게 ‘프리랜서 기자가 할만 한지’ 물었다.

“정말 힘들어보이던데. 겉으로는 씩씩하게 잘 사는 것 같지만 가끔 그 기자도 연락이 안될 때가 있어요. 정신병 걸릴 정도로 힘들다고 해요. 사람들의 후원금에 의존하지만 그것도 들쑥 날쑥 한가봐요.”

그렇구나.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나 프리랜서 기자로 사는 것은 역시 녹록지 않구나. 다 때려치우고 택시운전이라도 할까. 박 변호사에게 내가 마약 사건으로 입건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크게 탄식을 했다.

“아. 제가 마약사건을 몇 번 변호해봤는데 그게 사람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실수같은 범죄인데 우리 사회는 그걸 잘 이해못해요. 허 기자 앞길이 정말 험난하겠어요.”

그렇구나. 마약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구나. 나는 지금까지 마약 따위는 인생을 방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서나 벌어지는 범죄라고 여겼다. 솔직히 그래서 이런 범죄에 연루되는 사람들을 좀 한심하게 바라봤다. 동정심도 좀 다른 사람들에 견줘 덜 가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마약을 하게 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같은 금욕주의자가. 난 내 인생의 정신줄을 내려놓고 산적이 한번도 없는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 마약투약이라는 박 변호사의 설명으로 뭔가 좀 명쾌해지는 것 같다. 마약이라는 범죄에 대해 나도 잘 모르고 있었고, 우리 사회가 오해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겨우 맥주 두병으로 불콰해진 얼굴을 맞대며 박 변호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하다가 헤어졌다. 만날 때는 따뜻했던 저녁 바람이, 헤어질 때쯤 차가운 밤바람으로 변해있었다. 집으로 가자. 침대라는 사각형의 공간 속으로 얼른 숨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