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15일(화) 마약중독자의 일기
부모님 댁에 간지가 너무 오래 됐다. 부모님은 내가 왜 집에 잘 안오고 있는지 잘 모르신다. 그저 취재 때문에 바쁜줄 아실거다. 아무래도 부모님께 한번 가야겠다. 같은 서울인데. 우리 강아지 루시도 너무 보고 싶다.
남부순환로로 차를 몰고 가던중 잠시 셀프 주유소를 들렀다. 기름을 넣는 와중에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미디어오늘이 널 계속 취재하는 것 같아. 네가 사표를 낸걸 확인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진짜로 마약한게 맞냐고 묻는다. 너 그런 얘기했어?”
내가 사표를 왜 내? 난 그런 말 한 적도 없고 그 뒤로 미디어오늘은 내게 전화한 적도 없다. 그런데 저런식으로 취재를 하고 있구나. 내가 공식적으로 마약을 했는지 안했는지 확인을 안해주니까 저런 식으로 떠보면서 취재를 하는구나.
아니. 나도 내가 정확히 무슨 약을 했는지 모르는데 내가 왜 사표를 내? 지금은 언론에 뭘 확인해줄 단계가 아니다. 아니, 내가 설마 마약을 했다 치자. 이게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취재할 사안인가? 내가 연예인인가? 아니면 공직자야? 아니면 마약 카르텔 조직과 연관된 기자야? 그냥 좋아했던 친구가 중독자여서 같이 있다가 우연하게 벌어진 사고일 뿐이라고!
애초에 미디어오늘 기자에게는 거짓말 한게 미안해서 적당한 때 모든 것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려 했었다. 뉴스타파 선배에게는 기자들에게 소문이 계속 퍼지자마자 모든 것을 사실대로 설명해주었다. 조금만 차분히 기다리면 오보를 내지 않도록 내가 알아서 도와줄텐데 왜 저렇게까지 취재를 한단 말인가. 화가 난다. 미디어오늘 기자에게는 내가 먼저 전화 절대 안해줄거다.
언론의 사명감 때문에 날 파헤치는 거라면 설명이 필요하다. 내가 기자로서 대체 뭘 잘못했지? 기사 청탁을 대가로 마약을 받았나? 경찰에 압력을 넣어서 친구의 수사를 무마시켰나? 대체 내가 마약을 했다는 의혹 말고는 나올 게 없을텐데? 그냥 마약이라는 말초적 소재밖에 나오는게 없을걸? 이 관음증 환자들 같으니라고.
내가 언론인으로서 내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면 내가 미디어오늘이 됐든 어디든 당연히 소상히 밝힐 거다. 만약 그랬다면 이 사건은 더 이상 프라이버시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이건 미디어오늘이 이렇게 시간을 들여 파헤치고 다닐만한 사안 자체가 아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내 프라이버시 사안일 뿐이다.
아무튼 나는 ‘거짓말쟁이’, ‘쓰레기’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 우리 회사는 보호해줘야 한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내가 회사도 속여서 마약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처럼 입장을 취하자.
“선배. 미디어오늘 기자에게는 제가 어떤 전화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선배는 제가 마약을 안했다는 식으로 항변하고 있고, 사표도 당연히 내지 않았다고 그렇게 기자들에게 설명하세요. 여튼 너무나 죄송한 마음입니다.”
주유소 바닥 아스팔트에서부터 훅 하고 뭔가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다. 화끈거린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아무래도 이번 일은 해프닝처럼 조용히 넘어가기는 다 틀린 것 같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한겨레는 떠나는게 맞는 것 같다. 이런 구설수에 오르내린 것마저도 회사에 큰 누를 끼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표를 내면, 마치 마약을 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알려질 수 있다. 그러다 모발 검사에서 아무것도 안나오면 더 이상한 꼴이 되잖아! 신중하게 대처하자. 발 딛는 곳마다 살얼음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