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마약 범죄를 무작정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마약 사용자들의 삶’, 그리고 마약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벌이는 온갖 ‘좌충우돌’을 함께 관찰해보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마약 문제와 정책을 사용자 입장에서 단 한번도 들여다보고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는 1년전부터 제가 써온 ‘마약일기’와 더불어 1년이 지난 후의 ‘회복일기’를 함께 공개해드리려 합니다. ‘1년전의 허재현’과 ‘1년후의 허재현’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저는 계속 성찰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저 제가 겪어온 일과, 또 앞으로 겪을 일들이 개인만의 경험이 아닌 우리 사회 올바른 마약 정책 마련의 공공재이자 논의의 소재로 활용되기를 기대합니다.
2019년 5월17일 회복일기
경찰의 개혁을 위한 취재를 시작했다. 지난해 이맘 때쯤 정보 경찰의 개혁을 위해 이런저런 기획 기사를 계속 쓰다가 마약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중단되어버렸다. 그 일을 이어서 계속 해야겠다.
오후에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교수님을 찾아가 만났다. 과거부터 경찰 개혁과 관련해 여러 자문을 들어왔던 교수님이다. 그와 한 시간여 떠들자, 이런저런 취재의 로드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원래 잘하던게 이런 건데.’
뭔가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다. 교수님은 누구나 사람은 실수를 하고 산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언제든 찾아오라고 격려해주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교수님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나를 배웅해주었다.
20대 후반의 내가 이 대학 근처에 자주 가던 분식집이 있었다. 한겨레 입사하기 전까지 언론사 입사시험 준비하며 때늦은 공부에 매달렸을 때 배고픔을 달래러 자주 갔던 분식집이다. 3000원짜리 물냉면 한그릇 뚝딱 먹고 돌아가면 뱃속의 시원함이 머릿속으로 전해져 불안한 앞날에 대한 고민까지 시원하게 내려가는 듯 했다.
교수님과 헤어지자 곧 저녁 시간이 되어 11년만에 그곳을 찾았다. 허름한 분식집의 아주머니와 메뉴가 그대로 나를 맞았다. 익숙하게 떡볶이와 냉면을 시켰다. 한겨레 다니면서 힘들 때면 이 분식집을 다시 찾아 꼭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우고 돌아가리라고 마음 먹었는데 너무 바빠서 지금껏 와보지를 못했었다. 그런데 11년이 지나 한겨레에서 해고된 뒤에나 찾아와서 음식을 시켜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래. 한겨레에서 해고는 됐지만 난 여전히 취재를 하고 있고, 취재 인맥도 많이 무너지지 않았다. 난 여전히 현직 기자다. 나를 수사한 검사는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제 멋대로 조서에 내 직업을 ‘전직 기자’라고 표현했지만, 난 현직 기자다. 당당해지자. 힘을 내자. 난 죗값을 다 치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나.
회사 후배가 뜬금없이 카카오톡으로 ‘선배님. 일기 잘 보고 있습니다, 응원합니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난 아직 스팀잇을 제외하곤 일기를 어디에 공개 안했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고 묻자 ‘이미 여기저기 소문이 다 났다’고 알려주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일기를 공개하기엔 내가 여전히 두려운데. 덜컥 겁이 났다. 아직은 내가 수많은 악플을 견디기엔 마음 상태가 허약하다.
포탈사이트에 내 이름 ‘허재현’을 검색해보았다. 지금까지는 차마 무서워서 잘 못했던 검색이었다. 세상에. 꽤 많은 사람들이 내 일기를 돌려보고 커뮤니티 등에 퍼나른게 보였다. ‘소울드레서’라는 카페에도 내 글이 올라와 있고 40여명의 누리꾼이 비판글을 달고 있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댓글 하나하나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뭐가 그리 당당하냐’, ‘누가 보면 국가가 강제로 마약 투약한줄 알겠네’, ‘좀 있으면 책도 내겠네’ 등등의 악플이 달려 있는게 보인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런다. 심호흡을 한 삼십여분간 하며 진정시켰다.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악플이 정말 많네. 힘들지만 악플에 익숙해지련다. 어차피 세상에 말걸기로 한 거니까. 내가 견뎌야지. 나를 싫어하면 할수록 더욱 다가가서 머리 굽히고 사과하지 뭐. 지겹다고 할 때까지 사과하지 뭐. 내가 당당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당당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지 않냐고 설명하지 뭐.”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마약 중독자가 정신 건강을 되찾고 사회적으로 잘 복귀하기 위해선 그저 조용히 죽은 사람처럼 사는게 최선이다. 하지만 난 최선의 길을 걷지 않기로 했다. 내 건강을 좀 헤치더라도, 마약중독자가 우리 사회와 함께 건강을 되찾는 길을 찾을 거다. 좀 시끄럽더라도, 난 떠들거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다.
내 마약 범죄는 소울드레서 동호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도 내게 돌을 던져라. 한명 한명에게 끝까지 다가가 사과하고 설명하겠다. 죽을 수 없으니, 함께 살자고 애원하겠다.
이 글을 쓰고 퇴근하려는데, 사무실 동료가 "웬 한숨을 그렇게 쉬냐"고 한다.
그랬구나. 내가 계속 한숨 쉬고 있었구나. 난 심호흡만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좀 악플이 많은 기자예요"하고 애써 웃음 지었다.
이거 외에 달리 뭘 더 설명할 수가 없다. 마약 전과라는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