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8:1~11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치기를 권하였더라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냐 하니 여호사밧이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하는지라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 보소서 하더라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하니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는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나쁜 일로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하더라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보좌에 앉았고 여러 선지자들이 그 앞에서 예언을 하는데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여러 선지자들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오늘 본문은 아람에게 빼앗긴 북쪽 길르앗 라못 땅을 되찾기 위해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연합군을 이루어 출정준비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보자는 유다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당시 이스라엘에 있었던 400명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 시드기야 같은 이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보이면서 그것으로 적국을 찔러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유다와 이스라엘의 정략결혼, 아합과 여호사밧의 투합, 여호사밧의 제안, 시드기야의 거짓 예언 등입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의 제안에 유다 왕 여호사밧은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백성은 군사력을 상징함으로 그 전쟁에 기꺼이 참여한다는 찬성의 표시였습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주권을 가진 왕으로서 매우 적절치 못한 발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낮춘 이유가 있습니다. 유다 왕국은 2개 지파이고, 북 왕국 이스라엘은 10개 지파로 여로보암 때보다도 이제 그 국력의 격차가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영토와 인구 수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도 나름대로 복안이 있어서 남 왕국 유다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당시 동쪽의 앗수르가 점점 더 세력이 커지자 이스라엘 측으로서도 그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 남 왕국과 손을 잡아야 했던 것이지요. 원래는 유다와 이스라엘은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적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가 그러했고 더구나 북쪽에서 세력을 키워가는 아람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은 견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선한 왕이지만 이스라엘의 극악한 왕인 아합과의 정략결혼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결과를 갖게 됩니다.
요단 동편 땅에 도피성이 3군데 있었는데 길르앗 라못은 그 중의 하나로, 고원지대이지만 골짜기에 풍부한 물이 있어 포도와 올리브가 잘 생산되는 비옥한 지역입니다. 하지만 외국과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관계로 자주 분쟁이 발생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곳은 아람이 솔로몬으로부터 독립 한 이후로 주요분쟁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길르앗 라못은 아람의 벤하단 1세에게 점령되었습니다. 아합에게 패배한 벤하닷 2세가 아버지가 빼앗은 성읍을 돌려준다고 약속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이 전쟁은 발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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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왕 아합이 전쟁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선지자를 소집했는데 무려 400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명색이 왕의 고문기관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왕비 이세벨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어용선지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대답은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말만 할 뿐입니다. 즉, 가짜 선지자들이지요. 미가야 선지자가 애초부터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도 형식적이나마 여호와 신앙을 유지하는 종교혼합주의가 그 시대 풍조로, 그들의 정체는 왕권강화를 위하여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권력의 시녀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참된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습니다.
어느 시대 이건 가짜는 있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선지자도, 오늘 날의 목사도, 그리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짜의 특징은 그 수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에 비해 진짜는 정말 적은 숫자이지요. 하나님은 진짜를 알고 그분의 도구로 쓰십니다. 수많은 가짜들이 있지만 아주 극소수의 진짜 선지자, 목사,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숫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엘리야처럼 450:1 일지라도, 미가야처럼 400:1 일지라도, 그 한 명이 400~450명을 누르고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진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 선지자, 진실된 목사, 진짜 성도입니다. 그것은 열매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속일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는 것이지 가시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가 철로 뿔을 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가짜입니다. 하지만 미가야의 예언이 아무리 혹독했을지라도 그것은 진짜입니다. 선지자라고 다 같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교인이 아니듯이 성경을 조금 안다고 다 성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지 진짜 그리스도인이죠.
어떤 경우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입으론 거룩을 외치면서 손과 발은 정결치 못하면 어쩌면 우리는 가짜일 수 있습니다. 진실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우리의 겉 사람은 쇠약해 갈지라도 우리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변함 없이 진짜로 살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 생각과 사고를 통치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우리가 평생 정직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라고 봅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진짜 같은 가짜가 있고 가짜 같은 진짜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