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 밖에서 기사 단장 키에프가 병사들에게 소리치며 명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렉터스가 야영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을 포착한 듯 했다.
잠시 후 굳게 닫혀 있던 마차의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빨리 나와서 전투 준비 해!”
병사 하나가 문 밖에서 소리쳤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등지고 있어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상당히 긴장된 모습이었고, 쉴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 하고 있었다.
“쥬드 나가자”
마샬이 말하며 문 밖을 향해 걸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홀로 누워 있는 리안의 모습을 흘깃 바라보고는 그대로 마차 밖으로 훌쩍 뛰어 내렸다. 그리고 그 뒤를 쥬드가 따랐다.
“저 놈은 아직 못 깨어났냐?”
병사가 누워있는 리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영 달가워하지 않음이 묻어나 있었다.
“그대로입니다.”
마샬이 짧게 답하며 문에서 멀리 떨어지려 했다.
“쳇. 어차피 써 먹지도 못할 놈을 뭐 하러 데려 가려는 건지.”
병사는 불만을 쏟아낼 뿐 더 이상의 추궁은 없었다.
“어서 글로드님께 가자.”
그는 명령을 하고는 마차의 문을 열쇠로 잠그려 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렉터스다! 놈들이 북쪽 방향으로 들어온다!”
“길목을 막아! 어서 빨리 방벽을 세워!”
병사들의 급박한 외침들이 들렸다.
“너희도 빨리 움직여!”
병사는 마음이 다급해 졌는지 문을 잠그다 말고, 마샬과 쥬드의 어깨를 잡아 앞으로 밀쳤다. 그는 야영지 중앙에 있는 지휘 천막을 향해 두 사람을 이끌고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뒤 이들이 지휘 천막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는 몇 사람이 서 있었다. 기사 단장 키에프와 세 명의 병사들 그리고 2서클 마법사 글로드와 암흑 사제 제스퍼였다.
“단장님 노예들을 끌고 왔습니다.”
마샬과 쥬드를 끌고 온 병사가 말했다.
“글로드. 녀석들의 마갑주를 장착 시키고 곧바로 전투에 투입 시켜라. 나는 먼저 가서 제스퍼와 함께 렉터스를 막고 있겠다.”
기사 단장은 글로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키는 상당히 컸고 몸도 우람했다. 머리에는 쇠로 된 투구를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몸에는 단단해 보이는 중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갑옷의 겉은 빛을 반사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손질이 잘 되어 있었고 매끈했다.
키에프의 허리띠 왼쪽 부분에는 커다란 장검과 함께 방패가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
“예 키에프님. 곧 뒤따라가서 후방에서 마법으로 지원 하겠습니다.”
글로드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는 회색의 긴 로브를 입고 있었고,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다소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그리고 너희 둘은 글로드 옆에 붙어서 호위 하고 나머지는 따라 와라!”
“예! 단장님!”
키에프의 명령에 병사들이 곧은 자세를 취하면 답했다.
키에프는 왼쪽 허리춤에서 방패를 떼어내어 왼쪽 팔에 걸었다. 그리고 검집에서 장검을 꺼내어 들고는 렉터스가 나타난 방향으로 곧장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암흑 사제 제스퍼가 함께 했다. 그는 암흑 사제 답게 시커먼 색으로 물든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병사들 역시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다. 두 명의 병사는 키에프와 암흑 사제의 뒤를 따랐고 남은 두 병사는 글로드의 양 옆에 섰다.
병사들은 모두 창병이었다. 창 끝은 하늘을 향해 있었고, 그들은 오른손으로 기다란 창의 막대 부분을 꼭 쥐고 있었다. 그들 모두 쇠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키에프가 입은 중 갑옷 보다는 다소 간소 했다.
글로드는 명령에 따라 두 소년의 마갑주의 잠금을 해제 시킬 준비를 했다. 그는 입고 있던 로브의 안쪽에서 한 뼘 정도 되는 길이의 막대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마갑주의 제어장치였다.
제어장치는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길게 선이 가 있었다. 중앙에는 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홈이 파여 있었고, 막대 모양의 장치 주위는 룬 문자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글로드가 양 손가락을 막대의 홈에 넣은 채로 바깥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중앙의 일자 홈이 쫙 벌려지면서 제어장치가 갈라졌다. 두개로 나뉜 제어장치의 중앙은 반 투명한 판 같은 것이 채워져 있었다. 그 반투명의 판 위에는 다양한 모양의 인터페이스들이 떠 올라 있었다.
글로드는 왼쪽 팔뚝 위에 펼쳐진 제어판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안에 있는 인터페이스 손을 댔다.
제어판 위에는 갑옷 모양의 이 차원적인 그림이 몇 개가 복사한 것처럼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그림 아래에는 여러 개의 룬 문자와 숫자들이 즐비해 있었다.
글로드의 손이 갑옷 그림 중 진한 녹색 빛을 머금은 그림 두 개를 건드렸다. 그러자 그림 하단에 있던 룬 문자 일부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고, 표시 되는 숫자들도 늘어났다.
“마갑주의 잠금을 풀었다. 어서 호출하도록 해라.”
글로드가 여전히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마샬은 글로드의 말에 자신의 시야를 확인했다. 그는 시야 한쪽 끝에 인터페이스가 활성화 된 것을 확인하고는 마음속으로 시동어를 말했다.
‘시스템 엑세스’
그러자 몇 시간 전 마차 안에서와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 올랐고, 그의 몸 주변에 나타난 빛의 입자 사이에서 흰색의 물체가 공간을 채워나갔다.
옆에 있던 쥬드 역시 작은 목소리로 시동어를 말했고, 그 역시 동일한 현상을 겪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흰색의 마갑주를 착용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너는 이 노예들을 끌고 먼저 가서 키에프님을 돕도록 해라. 내가 뒤에서 마법으로 지원 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너는 내 옆을 지켜라.”
글로드가 병사들을 향해서 명령했다.
“자. 가자!”
명령 받은 병사가 들고 있던 창의 막대 끝 부분으로 마샬과 쥬드의 몸을 툭 하고 밀쳤다.
마샬과 쥬드는 어쩔 수 없이 병사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저 멀리 한쪽에서는 방벽을 뚫고 들어 온 렉터스 한 마리와 전투가 한창이었다. 마샬은 그 곳으로 향하면서 한 차례 뒤를 돌아 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 그들이 타고 있던 수송 마차가 있었다.
‘리안 부탁한다······’
마샬은 마음속으로 리안이 무사히 성공 하기를 빌었다.
리안은 마샬과 쥬드가 끌려 나간 이후 한동안 상황을 살폈다. 병사들은 모두 야영지의 외각 쪽으로 빠져 근처에는 한 명도 없었다.
리안은 조심스레 마갑주를 호출 하고 밖으로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숨어 들었다.
저 멀리 야영지의 서쪽 부근에서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나타난 렉터스는 한 마리인 듯 했다.
리안은 우선 병영이 위치한 장소를 찾아서 발을 옮겼다. 마차와 몇 개의 나무 방벽 사이를 지나자 병영이 보였다.
병영은 몇 개의 커다란 막사로 이뤄져 있는데 리안이 찾는 것은 무기와 갑옷을 보관하고 있는 보급품 막사였다. 그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무기였다.
리안이 보급품 막사로 침입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모든 병사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보초를 서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리안은 안에서 장검 하나를 꺼내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글로드를 찾아내는 것이다. 글로드가 가지고 있는 제어장치를 뺏어 내야만 했다. 그 장치를 차지하지 못하는 이상 이곳에서 빠져 나갈 방법은 없었다.
리안은 어둠과 어둠 사이에 파고들며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로 빠르게 내달렸다.
야영지의 서쪽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렉터스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각성체였다. 아무래도 어제 놓친 그 놈인 듯 했다.
“앞으로 가란 말이야! 뒤로 물러 서지 마!”
키에프가 검을 빼 들고 병사들을 향해 고함치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과 함께 측면 공격을 주도 하고 있었다. 이미 병사 세 명이 부상을 당해 상황은 매우 급박했다.
키에프와 병사들은 검과 창으로 렉터스의 약한 부분을 노리며 베거나 찔러댔다. 하지만 각성체가 된 놈의 피부는 돌처럼 단단해 웬만한 공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놈이 앞발을 치켜 들고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빼내야 했다. 부상으로 빠진 병사들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다들 여유가 없었다.
“크아아악!”
렉터스가 괴성을 지르더니 오른손을 크게 휘 저었다. 놈의 공격은 정면에 있던 마샬을 향했다.
마샬은 놈의 공격을 예의 주시하면서 몸을 뒤로 살짝 날렸다. 렉터스의 날카로운 손톱이 간발의 차이로 그가 서있던 곳을 훑고 지났다. 조금만 동작이 늦었더라면 갑옷이 찢길 뻔했다. 하지만 마샬과 쥬드의 몸 동작은 보통의 소년들과는 달랐다.
소년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날랬고 휘두르는 검의 힘은 강했다. 이것은 바로 마갑주의 힘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 전사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렉터스의 공격이 있은 후 빈 공간이 생기자 쥬드가 그 사이로 뛰어 들었다. 쥬드의 몸은 상당히 작았지만 그 역시 마갑주의 힘 덕분에 빠르게 찌르고 들어 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최대한 놈의 주의를 끌며, 치고 빠지는 공격을 계속 반복했다. 이들의 역할은 미끼였다. 그 동안 키에프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놈을 쓰러트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전투는 소모전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렉터스에게 제대로 타격을 먹이지는 못했고, 인간 쪽은 조금씩 지쳐갔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장중하면서도 격렬한 선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흑 사제 제스퍼가 전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노래 소리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암흑신의 권능이 곧바로 펼쳐졌다.
‘제스퍼인가······’
키에프는 제스퍼의 신성력이 발동 했음을 알았다.
그의 기도 덕분에 몸에 활력이 차오르고 고양 감이 솟구치고 있었다. 다른 병사들 힘의 발동 덕분에 지쳤던 몸과 마음이 빠르게 회복 되었다. 그리고 신성력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지자 더욱 대담하게 돌진하며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치료를 받은 부상병 두 명이 다시 전투 대열에 합류했다.
“놈의 다리를 공격해! 쉴 틈을 주지마!”
키에프가 소리치며 렉터스에게 달려 들었다.
마법사 글로드 역시 제스퍼 옆에서 마법을 퍼붓고 있었다. 그는 주로 전격과 화염구를 날렸다. 하지만 암흑 사제와 마법사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렉터스의 저항은 만만치가 않았다.
렉터스는 몸에 상처가 늘 때마다 더 맹렬하게 움직이면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놈의 꼬리가 크게 휘어지고 또 다시 두 명의 병사가 부상을 입었다.
“다친 병사들을 제스퍼 곁으로 옮겨라!”
키에프가 소리쳤다.
병사 하나가 다친 병사들을 제스퍼에게 옮겼다. 병사들의 빈 공백 때문에 상황은 점점 악화 되는 듯 했으나, 마법사와 사제의 지원은 확실한 힘이 되었다.
렉터스는 마법 공격을 받은 부위가 찢겨지거나 터져 있었다. 키에프와 병사들은 그곳을 집중적으로 노렸고 렉터스의 움직임은 점차 둔해졌다.
결국 렉터스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고 키에프는 그 순간을 노리고 놈의 심장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다들 지친 와중에 이제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캬아아아악!”
그런데 그때였다. 숲 속에서 괴성이 들리더니, 어둠을 뚫고 또 한 머리의 렉터스가 달려들고 있었다.
“크, 큰일이다!”
키에프가 놀란 나머지 찌르던 검을 멈추고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새로 등장한 렉터스는 곧바로 글로드와 제스퍼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