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인터페이스가 열려 있어?”
마샬이 확인 하듯 물었다. 그의 눈빛에 약간의 기대감 마저 담겨 있었다.
“있어······ 확실해. 마갑주를 한번 호출해 볼까?”
리안은 말하면서 상의를 주섬주섬 입었다. 그 역시 설마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어서 빨리 확인 하고 싶었다.
상처가 아문 자리는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고 고통은 여전했다. 옷을 입는 동안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리안은 참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마갑주의 확인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마샬이 조급해 하는 리안을 제지 하며 일어섰다.
“밖에 보초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들키지 않도록 조심 해야해.”
마샬은 벽면 근처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마차의 벽면에는 가로로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직사각형의 구멍이 나 있었다. 그것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몇 군데나 뚫려 있었다. 마샬은 그 구멍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밖을 살폈다. 밖에서 안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멍이었다.
저 멀리 야영지의 중심에 커다란 모닥불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와 마차 사이 사이에 몇 개의 횃불들이 세워져 있었다.
병사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고 보초를 서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몇 개의 조가 가끔씩 이동 하면서 주변을 경계 하고 있었다.
마샬은 보초병들이 마차에서 상당히 떨어진 거리로 이동 할 때까지 기다렸다.
“됐어. 놈들이 멀리 떨어 졌어.”
마샬은 말을 끝내고 리안을 바라 보았다.
리안은 이미 일어서서 마갑주를 호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스템 엑세스.”
리안이 눈을 감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명령과 함께 시야 구석에 있던 작은 인터페이스가 밝게 빛나며 활성화 되었다. 순식간에 그의 시야 안에 여러 개의 인터페이스들이 나타났다. 이 인터페이스들은 물론 리안에게만 보였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인터페이스 들만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리안은 화면 중앙에 있는 육각형 모양의 상징물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상징물 중앙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푸른 빛이 일렁이더니 시야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이후 리안의 몸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중력을 잃은 것처럼 공중으로 살짝 떠 올랐다. 그리고 그의 몸 주변에서 작은 빛의 입자들이 나타나더니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얼굴, 몸통, 팔과 다리 등 곳곳에 나타난 입자들은 신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몸을 감싼 빛 줄기 사이에 반투명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 형상들은 리안의 몸 전체를 덮고 있었다. 조금씩 색상은 진해졌고 빛 줄기가 잦아 들면서 그 형체를 현실화 시켰다. 그리고 빛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그 곳에는 검은 갑옷으로 무장한 리안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의 몸은 다시 중력을 되찾으면서 바닥으로 천천히 착지 했다.
“돼, 됐어.”
리안이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자신의 손과 팔 그리고 몸을 일일이 살폈다. 확실히 검은색의 마갑주가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마갑주의 모습은 기사들의 갑옷과 상당히 닮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달랐다. 갑옷과 같은 외형을 지녔지만 재질의 느낌은 금속 보다는 곤충의 단단한 껍질과 비슷했다. 얼굴 역시 투구 같은 것을 쓰고 있었지만 눈과 코, 입 어느 부분도 뚫려 있는 곳이 없었다. 눈 부위는 깊이 파여 있었지만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은 곤충의 눈처럼 생긴 막이 덮여 있었다. 각 관절 역시 일반 갑옷과는 다르게 연결 부위가 얇은 막으로 덮여 있었어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어때?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아?”
마샬이 물었다.
리안은 시야에 떠 있는 인터페이스 정보에 집중해서 상태 창을 열었다. 화면 중앙에 갑옷을 정면에서 바라본 것과 같은 평면적인 그림이 떴다. 투구, 몸통, 팔, 어깨 등 각각의 부위는 일정한 모양의 선이 연결되어 있고 그 끝에는 현재의 상태를 알려주는 수치들이 나타나 있었다.
“몸체의 상태가 60% 정도야. 어제 당했던 게 아직 복구가 안된 것 같아. 다른 곳은 다 정상이야. 움직이는데 아무 문제는 없을 거 같아.”
리안은 고개를 숙여 어제 당했던 가슴 부분을 바라 보았다. 갑주의 찢겨졌던 부분은 이미 원형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단지 기능이 조금 떨어졌을 뿐이었다.
리안은 몸도 살짝 움직여 봤는데 더 이상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갑주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쩌지?”
리안이 물었다.
마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갑주를 사용 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었지만 탈출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우선 쥬드부터 깨우자.”
마샬이 대답하고는 잠들어 있는 쥬드에게 다가갔다.
“쥬드, 일어나 쥬드.”
마샬이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로 쥬드를 흔들었다.
“으응······ 졸려······”
쥬드가 미간을 찡그리며 답했다.
그는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마샬이 그의 어깨를 잡고 상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왜 그래. 좀더 자고 싶단 말이야······”
쥬드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며 투정 댔다.
“쥬드 정신차려. 리안이 깨어 났어.”
“어?”
쥬드가 마샬의 얘기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무거운 눈꺼플을 억지로 비비면서 리안이 누워있던 자리를 바라 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쥬드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다가 마샬의 뒤에 누군가 서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상대를 올려다 보았다.
“리안의 마갑주잖아······”
쥬드가 웅얼대 듯 무심결에 말했다.
검은색을 띠는 마갑주는 리안의 것이 유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피곤에 절어 있어 아직까지 현실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사고는 아직도 꿈과 현실의 중간에 놓여 있었다.
“쥬드. 빨리 정신 차리고 일어나. 마샬과 난 오늘 밤 여길 탈출할 생각이야.”
리안이 마샬의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말을 건넸다.
“리, 리안? 어, 어째서 마갑주를 입고 있는 거야?”
쥬드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는 잠이 확 달아나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리안을 바라 보았다.
“우리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분명히 글로드가 마갑주를 회수했는데 어째서인지 리안의 인터페이스가 열려 있었어. 쥬드 혹시 네 인터페이스는 어때?”
마샬이 쥬드를 향해 말했다.
“당연히 없어······”
쥬드가 잠시 자신의 시야를 확인하고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괜찮아 쥬드. 리안의 마갑주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니까.”
“그런데 벌써 이렇게 움직여도 되는 거야? 네가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알아?”
쥬드의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난 정말 네가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사제 놈도 죽을 거라고 했단 말이야······”
쥬드가 어제의 일이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쥬드. 난 괜찮아.”
리안이 쥬드의 어깨를 다독였다.
“시나크하고 베이토스······ 그리고 프란츠하고 밸란 모두 죽었어······”
쥬드는 쓸쓸한 눈길로 마차 안을 둘러 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들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세 사람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 앉았다. 이들 모두 동료들의 죽음에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눈물은 메말라 있었고 괴로운 마음은 잠시 내려 앉았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그 일은 그만 생각 하도록 하자. 우선은 어떻게 탈출 할 지부터 생각 해야해”
마샬은 두 사람을 현실로 불러 들였다.
“오늘 정말 탈출할 생각이야? 글로드가 있는데 어떻게······”
쥬드가 물었다.
그의 낯빛은 어두웠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떻게든 해야지. 오늘밤에 우린 모든 것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어. 또 다시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 갈 수는 없잖아.”
“으응······”
마샬의 얘기에 쥬드가 힘없이 답했다.
“마샬.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글로드의 제어장치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꼼짝없이 잡혀 버릴 거야.”
리안 역시 걱정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게 생각이 있어. 놈들은 아직 네가 깨어난 것을 모르고 있어. 그걸 이용하면 될 거야. 한 시간 전쯤에 왔을 때도 너한테 의식이 없다는 것을 암흑 사제가 확인하고 갔으니까.”
리안과 쥬드는 바짝 붙어서 마샬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렉터스가 습격해 오면 놈들은 나와 쥬드를 전투에 투입 시키려 할거야. 우리가 나간 후에 너는 기회를 봐서 마갑주를 착용하고 조용히 빠져 나가. 글로드를 찾아내서 놈이 가지고 있는 제어장치를 뺏어 내기만 하면 돼.”
“그 후에는 어쩌지?”
리안이 물었다.
“동쪽으로 도망치자. 제어 장치만 없다면 놈들은 우리를 찾지 못할 거야.”
마샬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리안과 쥬드는 별다른 반론은 하지 않았다. 당장 그의 계획 외에는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 사람은 그 시간이 찾아 올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렸다. 리안은 마샬의 지시에 따라 마갑주를 해제 시켰다. 그는 원래 자리에 그대로 누워 모포를 완전히 뒤집어 썼다. 쥬드 역시 긴장된 마음을 진정 시키기 위해 그의 옆에 누웠고 마샬 만이 밖의 동태를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병사들의 고함 소리와 말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며 커다란 소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