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캐나다에 에밀리 머피(Emily Murphy, 1868.3.14~1933.10.17)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1916년 캐나다 여성 최초의 치안판사로 활약했고, 이후 정치판으로 옮겨서 하원의원으로도 활약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캐나다 헌법에는 "상원의원(Senator)는 'Qualified Person'만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상원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Qualified Person이라는 건 '남자'를 의미한다는 묵시적인 해석을 하고 있었답니다.
에밀리 머피을 포함한 다섯분의 여성은 이 Qualified Person 조항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 분들은 ‘유명한 다섯(Famous Five)’, 혹은 ‘용감한 다섯(Valiant Five)’이라고 불렸었죠. 이걸 공론화하면서 여성의 정치 진출의 발판을 닦았다고 평가 받으니 말이죠.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받는데도 쉬운 길이 아니었는데 출마하겠다는데 그게 쉬울리가 있나요. 꽤나 험난한 길을 걷습니다. 계속 지거든요.
마지막으로 캐나다 연방대법원에서도 패했던 이들은 이걸 영연방 추밀원으로 끌구 갑니다. 그리고... 추밀원은 Qualified Person은 '자격있는 사람일 뿐 성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헌법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유일한 가치라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물을 주고 거름을 줘서 인간의 행복에 기여를 해야 하는 존재"라고 하면서 말이죠. 당시 추밀원 의장이 아편전쟁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던 디즈데일리인가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거 하도 오래전에 봤던 내용이라 단어 등의 문제는 있을 수 있습니다만. 암튼.
하지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한 공로를 가져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 다섯명중에 어느 누구도 여성 상원의원이 되지는 못하죠. 하지만 Cairine Wilson이 판결 직후 최초의 캐나다 여성 상원의원이 되면서 일단 사건은 종료됩니다.
이 분입니다. Cairine Wilson
이른바 person's case로 유명해진 이 사건으로 에밀리와 그의 동료들은 여성 참정권을 쟁취하는데 선두에 섰던 이들로 캐나다 역사에 남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캐나다 신권 지폐의 인물 후보가 됩니다. 그런데 이때 '사회적 논란'이 벌어집니다.
거의 8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남자'들이 시비를 걸었냐구요? 아닙니다. 문제 제기를 했던 곳은 캐나다의 인권단체들이었습니다.
캐나다 인권단체들이 이들의 지폐 인물후보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이유는 이 다섯 분들이 그 당시에 대단히 공격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북미 대륙의 철도는 중국인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과 땀과 뼈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뭐 지금은 아름답게만 보이는 SF의 금문교만 하더라도 그거 만들다가 죽은 중국인 노동자들, 장난 아닙니다. 일 시키기 위해 이들을 불러모았지만, 일이 끝나니까 이들에게 시민권을 줄 것인가 말것인가 가지고 아주 시끄러운 논쟁이 벌어진 것이죠.
유명한 칼럼니스트기도 했던 에밀리 머피는 본인이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이던 바로 그 즈음에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시민권을 줘선 안된다는, 그것도 대단히 인종차별적인 주장으로 가득찬 글들을 토해냅니다.
인권단체들이 머리 띠 두른거 이해가 되죠?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그들을 캐나다 지폐의 주인공으로 추천했던 이들의 '변'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성과를 남기면서 그 만큼의 숙제와 쓰레기를 남긴다."
사실 모든 인간은 시대적, 문화적 한계를 갖습니다.
예를 들자면 간디는 비폭력 불복종운동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던 인도 독립의 아버지이지만, 힌두교적 세계관으로 세상 만사를 판단했던 분입니다. 불가촉천민은 '그들이 전생에 죄가 많아 그렇게 태어난 것이니 사랑으로 안으면 된다'고 하시던 분이에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인도 헌법을 만든 암베드카르 입장에서 보자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던 거죠.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산업발전 없이는 진짜 독립이 아니다'라고 했던 잠셋지 타타의 후예들에게 간디는 넘어가야 했던 한계입니다. 브라만이 당연히 지주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간디와 달리 간디의 제자였던 비노바 바베는 브라만의 토지 헌납운동으로 스승이 무시했었던 문제를 해결하러 나섭니다.
후대는 무엇을 하든 선대를 넘어서야 합니다. 공과 과를 나눠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긴 그들의 '공'을 따먹고 '과'를 덮어서 어떤 편익을 취하려는 이들이 가장 애용하는 말이지요. 선대의 공은 우리가 지금 서 있을 수 있는 기반이라고 한다면 선대의 과는 우리가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입니다. 그 사람의 공이 그 사람의 과를 가려야 할 이유도 아니고 그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