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듯 산 지 꽤 된 것 같다. 나는 항상 무수한 죽음이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의 삶의 뒤를 쫓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언제나 영원히 살 것 처럼 - 지금 이 순간에 박제될 것처럼 미래를 잊어버리면서 살곤 하지만 오히려 그 고요에 대해 불안해질 때가 있다. 확정되지 않음이 불안을 증폭시키고 위험의 경계를 넓히게끔 - 넓히도록 상상하게끔 한다.
그래서 나는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고 비싸다는 마음을 항상 갖곤 한다. 특히나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여럿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의 교집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의외로 시간과 공간의 교집합을 가진채 마주할 수 있는 인연이 그리 많지 않다. 짧고 작으며 적다. 내가 몸을 불살라가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이러한 쫓김과 불안을 매달아둔 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삶을 마감하면 흙으로 돌아갈 인생이라지만, 나는 그 흙이 누구나 언제나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고운 흙이었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무에서 무로 돌아갈 삶의 숙명이 억울하다면, 무언가 하나 쯤은 남기고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마음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은 남을 테지만, 흔적의 빛깔이 강하게 고왔으면 좋겠다. 아마도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될 바람일 것이다.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것도 좋고, 영원을 순간처럼 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순간이든 영원이든 내게 허락된 것은 순간도 영원도 아닌, 흐름 - 그 것도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제약 조건 하에서의 교집합을 따라 흐르는 제한된 흐름 - 일 뿐이며, 흐름의 키를 내가 맡아야 할지, 아니면 나를 흐름에 맡겨야할 지를 고심한다. 일부러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안될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죽음이 목덜미를 낚아채는 순간까지 영원한 불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