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가치'보다 '활동의 가격' 글 타래
1부: 서두
2부: 활동의 가치와 폴라니
3부: 생각의 가격:어쩌면 정말로 흔한 것
4부: 상전이
저번글에 이어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칼 폴라니가 주장하는 대안적 경제의 특성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사실 스팀잇에서 아담 스미스나 케인즈 같은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리곤 하지만, 사회경제학에서 (주류는 아니지만) 나름 대안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는 폴라니의 이야기는 별로 보이지 않아서 간략히 소개를 해보도록 한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폴라니가 이야기하는 경제활동의 형태는, 사실 스팀잇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설명하기에 괜찮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폴라니가 제시한 경제활동의 형태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경제란, 시장 안에서의 화폐를 바탕으로하는 자원의 교환(exchange)만을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사회의 맥락을 고려하는 관점에서는 이러한 교환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 폴라니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 이외에도 세 가지의 방식을 제안했는데, 이는 상호성/호혜, 재분배, 교환이다. (여기서의 교환은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이 아닌, 말 그대로 필요에 의한 교환을 의미한다.) 시장 경제 주의자들은 사람들이 (금전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동기가 있어야 경제활동을 한다고 보지만, 폴라니는 그렇지 않다. 문화/사회적 맥락에 따라 개인 간의 "상호 유대감"과, 집단 내부의 결속과 단합이 사실은 경제 활동의 일부를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시장'이다.)
상호성/호혜 (reciprocity): 시장에서의 교환과 달리, 등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선물과 답례의 형식을 통한 비등가적인 교환을 의미한다. 항상 동시적인 주고 받음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두고 일어날 수 있다. 이를 통해 상호 간에 유대감과 교류를 증진시킨다.
재분배(redistribution): 지도자를 통해, 사회에서 거둬들인 다양한 재화를 다시 구성원들에게 분배한다. 자원을 환원한다는 의미가 크며, 이를 통해 분배자는 자신의 권력을 키우고, 피분배자들은 분배받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집단 내의 결속감을 가진다.
교환(exchange): 이러한 교환은 시장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시장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에서 일어나지 않는 교환의 경우에는, 국소적 성격을 가지며, 필요에 의한 교환을 의미한다. 경쟁이 배제된 교환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시장에서의 교환은 우리가 잘아는 바로 수요와 공급의 방식이다.)
스팀잇 안에서의 활동에 대한 폴라니의 시사점
앞선 글에서, 스팀잇에서 주장하는 모토인 '생각의 가치'에서의 '생각'이, 우리가 스팀잇에서 하는 '활동'을 대체로 '창작'에 고착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스팀잇을 통해 글을 쓰는 행위는 (여기서 글을 쓴다는 행위는 자신의 창작물을 전시한다는 행위를 포함한다.) 오롯이 자신의 창작을 드러내는 데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스팀잇에서 하는 활동을 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에 글을 쓰고 나서,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자신의 글을 알리기 위한 가장 은근한 방법이 바로 '소통'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애초에 자신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알려지지 않는다면, 상대방으로부터 가치나 가격을 평가받을 여지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라니 관점에서 살펴보는 경제활동을 스팀잇에 대입해보면, 세 가지의 경제활동이 모두 일어나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사실 현대의 자본주의에서는 시장에 의한 교환만을 강조하지, 다른 형태의 경제 활동을 강조하진 않는다. 하지만 보라.
나에게 댓글을 달고 vote를 한 사람과 소통하고, 시간이 되면 상대의 글을 읽고 또한 댓글을 달고 좋은 글에 대해 vote를 한다. (상호성/호혜)
높은 스팀파워를 보유한 사람들은 집단의 생태계를 위해 자신의 스팀파워를 임대하거나, 큐레이션하거나 vote를 통해 직접적인 지원을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명성을 쌓음과 동시에,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가지는 스팀잇에 대한 애정과
결속력을 증대시킨다. (재분배)스팀이나 스팀달러를 통해, 괜찮은 컨텐츠를 구매하거나 노고에 따른 보상을 준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가는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고, 오로지 각자의 필요에 의해 교환한다. 이러한 행위는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UI/UX가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대체로 국소적으로 이루어진다. (교환)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아직까지 스팀잇의 내부 경제를 설명하면서, 폴라니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상당히 의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존재 방식에 대한 인정 척도
스팀잇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생산(노고를 통한 창작)과 투자는 반대의 성향을 띠는 것처럼 일컬어진다. 하지만 역시 이전 글에서 "창작이든 투자든 자신의 존재 방식을 인정받는 활동"이라고 언급을 했다.
이러한 존재 방식을 인정 받는 활동 중에서, 자신이 자신의 창작물에 관해 자신 스스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인정의 한 갈래라면, 또 다른 한 갈래는 자신의 활동이 집단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에 달려있다. 이러한 집단의 개념은 사실 모호하므로, 우리가 소통하는 커뮤니티 정도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결국 존재방식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해당 커뮤니티에 어떻게 기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의 '활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한 척도는, "각자의 활동이 자신이 속한 생태계에 얼마나 기여하는가"가 될 것이다. 폴라니가 제시한 경제활동의 목적 - 개인 상호간의 유대감의 고양과 집단의 결속을 생각해보면, 스팀잇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가치는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소결
이러한 의미에서, 어떠한 글이 보상이 많이 받는다면, 이는 집단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의 척도의 측면에서, 단순한 창작이 아닌 "활동"에 대한 가치를 나타내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글 자체에서는 이러한 점이 명징하기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창작"과 "집단에 대한 활동" 중에서, 우리가 흔히들 떠올리는 "생각의 가치"라는 모토는 후자에 대한 인식을 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SNS와 비교하였을 때에, 스팀잇이 가지는 차별점이기도 하다. 유명 블로거들이 처음 스팀잇에 진입했다가 적응을 못하고 나가떨어지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체로 "커뮤니티"라는 개념을 떠올리면서 시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는 생각의 "가격"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한다.
'생각의 가치'보다 '활동의 가격' 글 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