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이 조금 힘들었어서, 오늘은 오랜만에 종종 들르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와 '종종'의 조합은 사실 살짝 이상하지만, 최근에는 앞에서 지나다니기만 했을 뿐 직접 들러서 먹은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적었다. (회사 식당 같은게 아닌 이상) 우리가 항상 자로 재듯이 주기적으로 들르는 것도 이상하고 어떤 식당이 정말로 모든 종류의 음식을 파는 것은 아니니까, 뭔가 어떠한 종류의 음식이 끌릴 때가 있는 것이다. 백반 같은 것을 파는 집은 아니었다.
가게 앞에 노란 현수막이 걸려있을 때부터 불안했다. 크게 적혀있는 '임대문의' 안내와 부동산 번호는 가게 앞에 들어서기 전부터 불안케했고, 가게 문 앞에 조그맣고 짤막하게 '영업 안함', 그리고 문을 흔들면 보안 경비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문구는, 영업을 진짜 하지 않는 것인지 묻고 싶고 싶은 것을 누군가 행동으로 보여주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던 길을 되돌아와 근처의 다른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주어진 가격을 지불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식당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을까 걱정이 드는 곳이었다. 사실 1월달의 메뉴 중 정말로 괜찮았던 음식이 2월달에 빠지기 시작하더니, 3월을 못넘기고 결국 폐업을 하고 말았다. 음식에 있어서는 이른바 장인 정신이 느껴지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인사도 없이 사라지다니 상당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었다는 것은 온전히 나의 관점일 뿐, 사실 가게를 유지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내어놓고 서비스하는 입장에서, 손님에게 손해를 보는 기분을 들지 않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음식을 이렇게 팔아도 되는지 걱정이 될만큼 충분한 퀄리티로 내놓았다는 것은 분명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거나, 원가와 소비자가에 대한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건물주여서, 그냥 취미로 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갑자기 요리에 흥미가 떨어져서 그만두었다고 하기에는, 메뉴 변경의 고뇌가 느껴졌기에 논외로 하고 싶다.)
가치와 가격은 늘 이런 식이다. 가치는 어떠한 가격을 정당화해주고 실제로 팔리게끔 하는 데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언제나 가치와 가격의 불일치가 일어난다. 가치는 가격을 설명하는 일부분일 뿐이고, 가격은 가치 이외에도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은 것이다. 수요와 공급, 가치, 임대료와 원가와 같은 비용, 노동의 품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서야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 계산을 잘못해서 결국 문을 닫아버린 한 가게를 봤다.
어쩌면 자본과 노동이 뒤섞인 공간에서, 오로지 즐거움의 주문을 요구하는 것은 기만적인 일이 될 것이다. 각자 공간에 부여한 의미가 잠시 놀거나 즐길 뿐 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노동과 전투, 생업과 연관된 공간에서, 당신은 왜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묻는 것은 실례일지도 모른다.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치열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잘 가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고 해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가게를 운영하시지 그랬냐는 말을 건네면 안되는 것이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겨두고 그동안 자주 들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 그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싶다.
나는 가격을 결정하는 무수한 요인들을 본다. 가치는 가격을 결정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애초에 가치에 가격을 붙여 파는 가게가, 감당할 수 없는 외적 요인들로 인해 결국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고 떠나간다면 가게 주인 뿐만 아니라 건물주도, 거리도 모두 아무런 가치를 생산하지 못할 것이다. 특색 있는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의해, 기존 특색있는 가치를 생산하던 가게들은 모두 떠나가고 획일화된 프랜차이즈만 들어오다가 결국 거리의 고유 빛깔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보기도 한다. 프랜차이즈만 가득한 거리의 상점들에서는 서비스에 맞춘 가격들이 잘 설계되어 있겠지만, 내가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방문하고 싶지는 않다.
놀랍게도 이러한 현실들은 어찌나 닮아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