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diary] 직할시의 시대

qrwerq(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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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018, Nexus 5x.


이제는 찾아가보기 어렵게 된 문방구에서 업어온 물건 중 하나는 한반도를 담고 있는 지도다. "직할시"라는 명칭만 봐도 딱 감이 온다. 이 녀석은 상당히 오래된 녀석이다.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었을 이 지도는 아마도 91년과 95년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러시아연방은 91년도에 출범했으며, 직할시가 광역시로 바뀐 것은 95년도이기 때문이다. 7-80년대 표기했을만한 폰트도 눈에 띠는데, 특히 바다와 섬을 기술한 부분이 그렇다.

그림 종이만 있으면 사실 조금 섭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도 셋트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자도 같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신기하게 한반도를 관통하거나 조형을 해놓은 산맥들의 이름이 병기되어 있다. 지리 혹은 사회 시간에 많이도 외우고 배웠던 것 같은데, 대부분의 이름은 이미 과거 저 멀리로 날아간지 오래다. 그래서 그런지 더 반가웠다. 학창시절 사회 교과서 대신 사회과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던 생각을 하면, 지도에 표시된 저 작은 땅덩이 안에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다는 것이 어릴 적에는 참 신기하게 느껴졌었나보다.


Sep. 2018, Nexus 5x.


하지만 우리나라만 지도로 보기에는 조금 아쉬웠던지 역시 이 셋트에는 세계 지도도 포함되어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색칠 공부(?) 가 가능한, 밑그림 지도인데 제목 마저 빈 칸인 것이 특징이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나라들을 구분하는 경계들을 보며, 이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얼마나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인지 학생 시절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한 나라에 한달씩 산다고 해도 세계에 있는 모든 나라에 한번씩 살기 위해서는 결국 15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기에, 으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Sep. 2018, Nexus 5x.


명칭이 변하면 사람들의 인식도 변한다. 직할시가 낡고 고루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그 당시의 딱딱하고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같이 전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직할시가 광역시로 변할 때 쯤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산층을 꿈꿨고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마이카 시대에 따라 희망에 부풀었으며 오렌지족과 같은 경제호황기를 반영하는 여러 지칭어들이 만개하는 시기였기에 어쩌면 그 황금 빛깔의 시대가 참 아련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지만, 모나지 않고 집단의 나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미덕 또한 강조되던 시기였기에, 나에게는 조금 더 "직할시"의 발음처럼 카랑카랑하고 에누리 없게 기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도가 창고에 잠자고 있는 동안, 세계는 제 갈길을 무척 열심히 갔다. 과거의 흔적 같은 것이라 더이상 유통되지 않는 물품이 세상의 공기를 다시 마주하게 될 때면, 마음 속 어린아이가 다시 기지개를 펴고 지금의 나를 부르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이 때 나는 그 당시의 어른들을 동시에 회상한다. 그 때의 어른들이 바로 그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나도 시선을 서둘러 쫓아간다. 이제는 조금씩 어른들의 마음을 - 부모님과 선생님의 마음을 - 슬며시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