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신발에 구멍이 났다. ‘드디어’라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그동안 워낙 많이도 걸어다녔기에,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다. 나와 함께 걸어준 신발을 보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신기하게 이번 신발은 뒤 발바닥 부분에 살짝 구멍이 났다. 양쪽 모두 그렇다. (그런데 신발이 이렇게 깨진 것은, 평생 처음이다. 중력을 너무 디디고 걸었나.) 이렇게 되면 평상시에는 발이 좀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통풍이 잘 된다고 믿는다. (너무 긍정 마인드인가.) 하지만 비가 올 때에는 난감하다. 땅에 고여있는 물을 피해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웅덩이를 밟는 순간, 바로 신발 내부로 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신발들을 신고 놓아두다 버리게 될 지를 상상한다. 사람의 생애의 길이가 바로 와닿지 않는다면, 바로 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집 안에서 신발을 잘 신지는 않으니까, 몇 개의 신발을 마주하고 떠나 보내는 가에 대한 문제는 얼마나 열심히 바깥의 세계를 마주하며 걷고 뛰어다녔는지를 반영할거다. 특히나 남의 노고를 빌지 않고 오롯이 나의 힘으로 디디고 다닌 경험을 말이다.
신발 하나를 정리할 때면, 삶의 매듭 하나를 짓는 느낌이 든다. 삶의 순간들을 신발로 정의하고 있다니 좀 우습지 않는가.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의 활동에 맞추어 신발도 달라진다. 구두를 신을 때와 운동화를 신을 때와 슬리퍼를 신을 때, 일상은 달라진다. 신발의 종류는 결국 삶의 어떠한 맥락 안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우리들은 여러 종류의 신발들을 갖추어 놓고 살지만, 결국 삶의 특정 시기마다 다른 신발보다 더 빨리 닳는 신발도 있는 법이다. 삶의 궤적을 더듬어나가는 작업은 결국 이렇게 되돌아보며 진행되곤 한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려면, 일상이 어떻게 면면이 구성되고 있는지 보려면,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을 보라. 어떤 신발이 가장 빨리 닳고 있는지를 보라. 우연히 깨달은 “부모님의 낡은 신발”이라는 클리셰가 허투루 나오는 것은 아닐테니.
이제, 그 다음 떠나 보내야 할 신발은 어떤 것이 될지, 그리고 새롭게 맞이할 신발은 어떤 것일지 궁금한 날이다. 정들었던 지난 신발이 어떠한 형태로든 새로운 삶을 얻기를 바라며.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