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시절에는
낭만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들 꿈과 사랑을 외쳤고
나는 어딘지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 같았다.
내가 이 나날들 동안 배운게 있다면
포근함 대신 외로움을
설렘 대신 그리움을
그리고 그들을 잘 견디어 내는 방법.
그동안 난 무얼 찾고 있었을까.
마음에 지독하게 스며드는 상실감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새겨놓지 않은 채 스쳐보낸 어떤 존재가 있었나 보다.
기다림을 뒤로한 채 눈을 감아버린 어떤 때가 있었나 보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걸까.
오래전에 적었던 글 하나를 들추어보았다. 지금 다시 보기에는 사실 좀 부끄러운 글이지만, 나는 그 당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그렇게 밝게 생활했던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그 나이대의 어설픔과 풋풋함도 물론 지니고 있었겠지만 (정말 그랬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잿빛 같았던 이방인의 삶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나는 기형도 선생님의 시(詩) 중에서 대학시절 이라는 시를 참 좋아한다. 기형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무릇 질투는 나의 힘이나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에서의 유명한 문구가 떠오르는 것이 당연할테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선생님의 시 "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기형도 선생님의 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중에서
이렇게 강렬한 문구들이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신 것이 무척 안타까운 선생님이기도 하다.
여하튼, 나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형도 선생님의 시를 말하라 하면, 단연코 대학시절을 이야기할 것이다. 80년대의 사회상이 지금의 사회상과는 다를지라도, 버려진 책들이 가득한 숲 속에서 플라톤을 읽을 때마다 총성이 울곤 했다는 문구에, 은백양의 숲은 사실 잿빛 숲이었고 눈 앞에서 실체화되지 않았지만 나를 에워싼 총성은 무릇 사회와 현실의 무게로부터 오는 파열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그 것이 파열음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나의 이십대 초반의 기억은 마치 박제된 스무살과 같은 것이어서, 막막함과 먹먹함 사이쯤 마음이 치달았었다. 햇살이 가득한 4월, 학교 식당 한 구석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으면서, 그래도 사람이니 배고프면 밥은 넘어가는구나 하며 숨을 죽이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학교 캠퍼스에 들러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밝은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쳐진 어깨나, 눈 앞에 보이는 그들을 넘어서서 투명 인간과 같이 잘 드러나지 않는 다른 친구들의 존재를 상상하고 떠올리곤 한다. 내가 상상하는 그들을 대학에서 볼 수 있든 그렇지 못하든 말이다.
이제 나이를 조금 먹은 지금에 있어서는, 그 때의 그 시절들을 드디어 웃으면서 떠올리며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지만, 답답한 허공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십대의 생채기를 기억하며, 지독하게 치열한 통과의례를 겪고 있을 수많은 이십대 - 과거의 나 자신을 포함하여 -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기형도 선생님의 빈집의 문구를 인용하며, 이 두서없는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오늘따라 잿빛 하늘과 함께 비가 오기에 그냥 한번 적어보고 싶었다. 어딘지 침잠하는 기분이 흡사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 대학시절과 이십대는 뗄레야 뗄수가 없었기에.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기형도 선생님의 시, 빈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