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8화 모조리 도륙하겠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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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 가는 길.png
고춘기가 바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다섯 몽고기병들의 내력을 빼앗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북명신공의 첫 피해자인 우간바타르의 내력을 빼앗는 시간정도가 소요될 뿐이었다.
실신한 다섯 명의 몽고 기병을 무릎 꿇려놓은 고춘기는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화살을 날리면 한 명의 목을 치겠다! 그 뒤에 다시 화살을 날리면 두 개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고춘기는 말을 공격하는 것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마갑의 부재가 약점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몽고 기병들이 굳이 위험을 자초하면서 투창하러 다가와 차례로 붙잡힐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고춘기의 귀를 화살로 꿰뚫은 몽고기병 보르후는 고춘기의 말을 듣자 알탄을 바라봤다.
알탄은 나이는 이중에서 제일 어리지만, 그의 말을 따르면 후회하는 일이 드물었다.
몇 번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이들 중 누구도 그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알탄은 티무르부카의 말을 잊지 않았다.
고려출신 내시들 중 항상 1인자는 아니지만, 그 언저리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사건사고를 많이 일으켰지만 항상 유력인사로 손꼽히는 티무르부카는 많은 제자를 거두었다.
이들 몽고기병 대부분이 티무르부카의 가르침을 받았다.

'몽고인은 한인에 비해 그 수가 턱 없이 적다.
허나 그들보다 재원고려인은 더 적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피해를 감수하려고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마라.'

보르후의 눈치를 살핀 알탄은 좌중을 훑어보며 무언의 의사를 물었다.
말 위에 있는 모두가 그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탄은 모두를 대표해 천천히 말을 몰아 적들에게 다가갔다.
적대의사를 보이지 않고 접근하느라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알탄은 더 침착해졌다.
알탄의 이런 점이 어디서든 그를 더 돋보이게 하곤 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면서 적들의 행색을 면밀히 살폈다.
불퉁하게 생긴 녀석은 비단장포를 걸쳤고 풍채 또한 당당한 것을 보면 이름 없는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바로 자신들의 자존심에 칼바람을 낸 장본인이었다.
고작해야 이십대 초반정도?
자기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외형은 방금 목장에서 말똥이나 치우는 촌놈처럼 볼품없었으나 그의 무공은 실로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알탄은 생전 저렇게 빠른 사람은 처음 봤다.
다른 한 사람은 아직 앳된 소년이었다.
젖살도 덜 빠진 모양이 열댓 살이나 먹음직 해보였다.
키는 비단장포 사내와 비슷했으나 얼굴은 햇볕 한 번 못 받아본 사람처럼 뽀얗다.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힘은 장사였다.
한 손으로 장정 둘을 화살받이용으로 들고서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상체는 여러 대의 화살이 적중하는 바람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찢어지고 구멍 난 상의 사이로 괴이한 물건이 보였다.
그것은 상체 전체와 손목까지 가리는 검은 갑옷이었다.
자세히 보니 뾰족한 가시가 촘촘하게 자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처음엔 어수룩한 행동으로 스스로 화살에 몸을 맡겨 애송이로만 보였다.
곧 쓰러질 줄 알았는데, 잘 버텼을 뿐만 아니라 전장의 흐름을 읽고 능동적으로 협상을 끌어냈다.
알탄은 소년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마지막 하나는 그야말로 구구(驅口:노예)같은 놈이다.
다른 둘은 주루에서도 별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저놈은 자신에게 오리고기를 가져온 점소이 놈이었다.
처음 볼 때부터 왠지 낯이 눈에 익다고 생각해서 유심히 바라보니 제 놈도 그런 눈치를 알았는지 얼굴을 숨기던 수상한 인물이었다.
능력도 배짱도 없이 유리한 기회만 노리다 불리하면 제 몸을 제일 먼저 숨기는 쥐새끼 같은 놈.
저런 놈에게 당한 형제들은 그 치욕을 잊지 않으리라.
알탄은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나를 주인으로 모시겠다면 이전의 잘못은 묻지 않겠다."
소년은 이내 고개를 돌려 불퉁하게 생긴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전백광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길은 하나다.
이대로 밀어붙여 화해를 이끌어 내거나…….
그러지 못한다면 다 같이 죽자.
"난 한 번도 사람을 베어본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 매우 두렵다."
말 위에서 나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몽고기병의 입가에 비웃음이 맺혔다.
그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지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람을 목을 베고 일이 풀리지 않으면 내 목도 날아갈 것이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무릎 꿇은 몽고기병의 목에 댄 현철중검이 끊임없이 떨렸다.
"내 칼은 무겁기 만하지 날을 세우지 않았다. 게다가 내 칼질까지 서투르니, 목을 하나 베는데 한 번의 칼질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몽고기병의 안색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적으면 서너 번, 많으면 열댓 번은 내리쳐야 겨우 하나를 자를 수 있겠지?"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장에서의 죽음은 명예로울 것이다."
"아니, 그들은 전투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포로가 되어 잔인하게 그리고 치욕적으로 돼지처럼 도살당하는 것이다."
십여 미터나 떨어져있음에도 몽고기병의 온몸이 분노로 떨리는 것이 보였다.
"과거 툴루이께서는 전투에서 자기 매제가 화살에 맞아 전사한 것을 복수하기 위해 백수십만 명의 목을 베었다."
현재 이란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 니샤푸르를 점령한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 툴루이는 매제의 복수를 위해 주민 174만 7천 명 중 대부분을 학살했다.
잘린 목은 아이, 여자, 남자로 나누어 세 개의 피라미드를 쌓았다고 전해진다.
"만약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죽인다면 네놈들의 목을 잘라들고 네 부모형제에게 보여준 뒤 모조리 도륙하겠다."
몽고기병의 말을 듣자 고춘기의 머릿속에선 마치 자신의 눈앞에서 그런 사건이 벌어진 것처럼 그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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