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팤콘 @qkr1066 입니다.
스팀잇에서 최근 다툼도 있었고.. 정부형아들의 무리수에.. 여러모로 글쓰면 묻히기 십상인 것 같아,
제 나름의 공들여 쓰기가 겁이 나서 조금 쉬었습니다.. 하락장에 의지도 없었구요..ㅎㅎ
어두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간 이유는.. 공익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죠. 일단 단순히 얘기하면 그런데..
아래의 사진은 캐나다 재스퍼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현역이아니라 공익 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때 갑자기 숨이 안쉬어져서 병원가니 기흉이라고 수술을 하자더군요.
기흉은 보통 키 크고 마른 사람한테 잘 발생하는데 폐가 터져서 흉곽안에 공기가 들어와서 폐가 쪼글아드는..(자세히는 모릅니다만.._) 그런 병?입니다.
그렇게 폐에 빵꾸난놈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는데 그 빵꾸가 3번인가 나서 빵꾸가 잘나는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수술이 2번인가를 해야 4급판정을 받고 공익이 되는건데..
저는 1번을 했기때문에 신검때 별 생각 없이 나도 이제 군대가는구나.. 하고 검사를 받았습죠.
하나하나 받아나가다가, 눈검사를 하는 곳에서 "눈 좋으시면 그냥 넘어가세요~" 하길래 .. 그 찰나의 순간에
'어.. 내가 눈이 좀 안좋았던 거 같은데' 하면서 온김에 검사나 받아볼까 했습니다.
의사분이신가요? 제눈을 검사하시다가 갑자기 ..음 잠깐 기다리세요. 하셨어요.
읭? 뭐지?
좀 기다린 후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 한쪽 눈이 약시가 심해서 4급이 나올 수가 있다는 것...
눈 검사를 안받아도 됐는데, 진짜 0.1초 찰나의 순간에 아, 한번 받아 볼까 했는데... 군대를 안갈 상황에 처했습니다.
저는 이 순간이 저에게 있어서 9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 하게 기억 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가면 지옥이라는 그 군대를 안가게 되었으니까요.
중학교때부터 인생을 알게되죠.. 수능이 있고.. 그 벽을 넘으면 군대가 있다.. 저는 수능도 겁났고 군대는 더 겁났습니다.
개념없던 대학교 1학년, 복학한 행님들은 전부, 군대가면 다 알게 될기라.. 라고 해서.. 군대가 겁이 났는데..
갑자기 약시라니.. 현역분들에겐 제가 죽일놈인거 알지만 속으로 정말 기뻤습니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3학년 때 눈높이 교재를 풀던 중에 (워낙 집중력이 없는 시기라 ) 한 쪽 눈 씩 가려 가며 풀었는데 오른쪽 눈이 아예 안보이는거에요.. 그래서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장난인줄 알고 그냥 대수롭게 넘기시고,, 4학년이 되서야 우리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신체검사를 시작해서, 시력 검사를 하는데 당연히 오른 쪽 눈이 안보여서.. 안보인다고 하니 선생님께 혼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진짜 안보인다고 3학년 때 부터 안보였다고 !! 하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를 했죠.
그 때부터 대학병원에 가서.. 약시라서 아직까지 고칠 수있다고. 잘보이는 왼쪽 눈을 막고 오른쪽 눈으로만 보게 하면 아직 어려서 신경이 돌아온다고 .. 자주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좀 치료를 하다보니 시력이 좀 돌아왔는데, 어린 마음에 안경쓰기도 싫고, 해적도 아니고 눈 가리고 다니는게 싫어서 치료를 그만 둬버려서 눈은 여전히 잘 안보이는 상태인데.. 어릴 때부터 계속 불편한(타인에게는 불편하지만 저에겐 익숙한) 상황이라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진단서를 떼가니 신검하는 곳에 계시는 의사선생님이 3.5급이라는 겁니다.
군대를 가는 3급 .. 과 군대를 안가는 4급 그 사이라서 애매하다고..
그래서 저에게 " 군대 가고싶습니까 안가고싶습니까? " 하길래 반사적으로 안가고싶습니다 !! 라고 했습니다.
그래요 4급 !
... 군대가 무서웠던 저는 운좋게 4급이 되었죠. 오른 쪽 눈이 관리를 못하면 실명이 될 확률이 높은건.. 타고난 운명인데 그걸로 군대는 안가게 되었으니.. 일단은..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188cm에 60kg로 멸치 찌끄래기 였던 저는 74kg 가 되었고..
공익을 하면서 중학교 동창인데 안 친했던 친구랑 가까운 근무지에 배속 받아 쉬는 날 마다 자주 놀러를 가게 되었습니다.
여름만 되면 헌팅 천국이 되는 해운대에 공익 이름 달고 해운대를 어슬렁 거렸지만, 월급 20만원에 마른 멸치는 여자분들과 놀 수가없죠.. 그렇게 돗자리 펴고 해운대 별을 보면서 친구랑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나는 중학교 떄 지하철 처음 타봤다고.. 고등학교 때 야자하느라 갖혀살면서 세상을 정말 몰랐다고. 기회가 되면 여행이나 가고싶다..고 속마음을 터놓으니, 친구가 가면되지? 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엄청 단순한 저는, 그래 가자!! 하고 그다음주에 휴가내고 그 친구랑 내일로(그당시 만 25세 이하는 일주일동안 5-6만원 선에서 무궁화호 새마을호 전부 공짜)를 떠났습니다. (다음엔 내일로 여행기도 써봐야겠네요... 재밌는 소재가 많은데 ㅋㅋㅋㅋ)
일주일간 베낭여행이라...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매일 갖혀서 산다는 느낌만 받았던 저라서.. 고등학교때는 야자때문에 8시 등교 10시 하교.. 대학교땐 술만 마셔.. 공익되니까 출근만 하고...
엄청난 자극이 되어서 이 여행으로 많은 걸 배우고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지금의 저는 대단하진 않지만, 제 스스로가 느낄 땐 대견스럽네요 ㅎㅎ)
그 다음 년도에도 친구와 내일로를 더 업그레이드 해서 떠나고,,(일명 헌팅 내일로... 서해 동해 남해의 유명한 헌팅 장소를 돌면서... 헌팅을 한다... 뭐 그런 취지였죠) ㅋㅋㅋㅋㅋ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이, 가보기 전에 죽지마라 라는 책으로 자전거를 타고 7년동안? 세계여행을 한 이야기인데요... 어떤 남미에 있는 나라에 가서 빵을 먹는데 개미가 나왔다.. 사막을 지나다가 총맞아 죽었다.. 여행에 맛들린 직후라서.. 나도 해보고싶다.. 라는 마음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소집해제를 4개월 남겨놓고 정보를 끌어 모았습니다.
돈도 없고, 돈도 없던 저는 돈이 없었습니다. 해외여행은 커녕.. 집앞에 나가기도 힘들었죠.
그래서 알아보다가 알게된게.. 워킹홀리데이. 처음에 자리 잡을 돈만 있으면, 가서 일을 하고 살 수 있다.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유학원에 가서 상담을 했더니, 돈이 오백만원은 있어야한다..영어도 못하고 돈도없는 니가 지금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겠단 말이냐 부모님한테 얘기해서 천만원 땡겨서 그냥 어학원 등록하고, 영어 공부 해서 일을 하는 길로 가라...
저를 무시하는 듯한.. 유학원 직원의 발언. 그게 저를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죠.
그 때부터 대게 직판장에서 일하고, 노가다판에 뛰어들어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2달만에 딱 4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모았습니다. 유학원 직원분한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현실을 직시하게 해줬거든요..
노가다 할때의 사진입니다.. 안전모 끝에 빗물이 보이시나요. ㅠㅠ 겨울비를 맞으며 야외작업...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는 그때 당시에 우체국에서 시각증명을 해서 서류를 보내는걸로 선착순 접수를 했습니다.
우체국이 문여는 시간인 9:00분에 시각증명으로 서류를 보내게 되면 서류에 부족한 사항이없다면 무조건 통과..라고 생각해도 되었죠.
저는 시골이라도 방심하지말자고 새벽 5시에 우체국앞에서 한겨울에 돗자리 깔고 있었습니다. 노력이 무색하게 아무도 안오더군요.. ㅎㅎ 그렇게 9:00에 시각증명으로 서류를 보내고 합격을 했고, 무난히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만,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환승하는 거였는데, 비행기가 캔슬이 되서.. 나리타에서 하루 묵었습니다.
이때부터 캐나다에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될거란 걸 눈치 챘어야하는데.. ㅎㅎ
캐나다 워킹홀리는 정말 많은 요소들이 쌓이고 쌓여서 궁극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인것 같습니다.
공익이 아니었다면, 같이 여행가준 친구를 못 만났다면, 자전거 여행하는 책을 못 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캐나다 갔다 온 것 보다 큰 영향을 끼칠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늘이 보내줬다고 생각 할 만큼 감사한 일입니다. ㅎㅎ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혹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 계신다면 너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45도 옐로우 나이프에 가기전 공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