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好喪)은 없습니다.

qkr1066(57)
Published in
#kr
Words
616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안녕하세요. 박작가입니다.

처음있는 일이라 생각이 정리도 안되고..
오늘 하루는 포스팅을 쉴려고했는데, 쓰다보면 생각이 정리라도 되고.. 먼훗날, 수많은 죽음을 마주했을 때 이 글을 보고 뭘 느낄까. 하는 마음에 적어보겠습니다.

엊그제 큰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에게, 할머니가 아프시니 잠시 보러가자고.

그러다 오늘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의사선생님께서 마음에 준비하시고,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내드리기 위해서 올 수 있는 가족들이 있으면 전부 부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온가족이 모이게되었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본 할머니는 말라있었고, 가족을 잘 못알아본다고 했습니다.
예전부터 아프시고 치매끼가 있었지만 너무 수척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아빠가 10살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후로 혼자서 시장에서 생선을 팔 오남매를 키우신 할머닌데, 허리 한번 못펴시고 일했는지 제 어릴적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려져서 서도 땅을 보고 있는 지금 모습 그대로입니다.

오남매를 키우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 노력에 비해 지금 모습을 보니, 오남매들은 효도로써 지난날의 보답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늘 가까이서 보는 아빠도 아들인 자기가 가서 손한번 잡아주지 않고, 엄마에게 늘 맛있는거 하나 해서 갖드드리라고 효도를 떠넘겼습니다.

장남인 큰큰아버지는 일로 바빠서 그의 딸이 대신해서 할머니를 매일 옆에서 돌봤습니다. 할머니가 행여 넘어지기라도 해서 다치는 경우가 있으면 자신이 찾아뵙지 못한 죄는 모르고 할머니 넘어질때 왜 보살피지 않았냐며 화살을 조카 딸에게 돌립니다.

저의 고모, 큰아버지, 아버지지만 참 한심스러웠습니다.

표현력이 부족한 경남사람들이라서그런걸까요..
도박과 방탄한 삶에 빠져 사회적으로 실패만 하고 사는 인생이 부끄러워 어머니에 그 낯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가까이 살아서 자주 할머니집에 들려 인사를 하는 저보다 아들 딸인 오남매는 잘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이해가지않는 한가지는, 왜 설날에 아빠의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하는 건데 며느리들만 와서 일을 해야하는건지.. 아들들은 잠이나자고 고스톱이나 치고있고 우리 엄마와 큰엄마는 아픈허리 잡아가면서 튀김을 하고있고 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X같은 가부장적인 사회가 여자를 힘들게 하는거구나. 내가 가장이 되면 제사를 안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모두 한걸음에 달려온걸 보니 소중한 것이 사라질 때서야 소중함을 깨달았는지 와서 슬픈 얼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들 보다 더 할머니를 많이 보살피고 챙겨준 엄마와 큰엄마는 예전 시집살이 할때 그래도 따뜻하게 대해주신 할머니가 고마운지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끼는데, 그제서야 고모는 이 사람은 우리엄마야 ! 하는 식으로 큰 소리로 생색을 내며 억지 울음을 짜냈습니다.

저는 야간 알바를 끝나고 잠을 자는데 급히 전화를 받고 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무덤덤 했습니다.
내가 할머니와 무슨 추억이 있었나.. 할머니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나.. 생각을 해볼려고해도 별 생각이 안났습니다.
저도 저대로 불효자이죠. 자주 찾아봬라고 해서 찾아봽고, 나의 학교가 바빠서, 나의 인생이 힘들어서 사실 할머니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 떠오르지 않은 추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소식을 듣고 슬픈 감정은 크게 없었습니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는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눈동자에 생기도 없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미리 와있던 아빠의 말로는 가족들 아무도 못알아본다고 .. 수척한 모습을 보고있자니 참.. 오남매를 키우며 이렇게 고생하셨는데, 이런 모습으로 최후를 맞으시는구나... 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간호사에게 가서 어떤 상태인지 묻고 왔습니다.

그리고 발치에 서서 할머니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할머니가 저를 보고 제이름을 부르시고 손을 내미셨습니다. 아들 딸 기억 못해도 제이름을 불러주시는 할머니 모습에 눈물이 왕창 쏟아질것만 같았는데 주변 가족들 보기에 부끄러워서 필사적으로 참았습니다.

그제서야, 묻혀있던 할머니와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일본에 간다고 인사드리러 갔을 때 펑펑 우시던 기억. 매일
없는 돈 모아서 이불밑에 숨겨둔 돈 얼마씩 쥐어주시던 모습.. 구부러진 허리로 손자 먹이겠다고 끓인 불은 라면이 얼마나 먹기 싫었는지.. 이제 생각하면 모든게 사랑이었네요.

저는 알바하러 갈 시간이 되서 집에 왔습니다. 오는 길에 의사가 이정도 나이면 호상이니까.. 그냥 마음 편히 보내드리라고..
그말을 듣던 큰아버지도 그래 ..호상이니까.. 이제 가실 때도 됐잖아..하시면서 자신의 슬픈마음을 합리화 하고 위로하는 거 같아보였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호상일 수가 없지않습니까..
그렇게 과거에 마음 하나 맞는 구석이 없어 삐걱거리던 오남매가 이제서야 못다한 효도를 하려는지, 내가 내일은 계속 있을테니 니는 쉬다가 천천히 나오라며 배려를 하고, 토닥여줍니다.

다들 장례식장에서 얼마나 후회 섞인 울음을 터트릴지..지난 세월 왜 좀 더 손잡아 주지 못하고 이제서야 이렇게 다들 찾아 봽는지.. 후회스럽고 슬픈 하룹니다.

저는 가까운 가족이 이렇게 임종을 앞두고 있는게 처음이라.. 뭐가 어떻게 왜 ..이런일이 있는지.. 내 주변에서 죽음이 있는게.. 참 믿기지가않습니다. 겁도 납니다.

못난 자식 손자 두셔서 평생을 몸과 마음이 고단한 삶을 사셨을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사셔서 못받은 자식과 손자들의 사랑을 받고...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네요..

호상(好喪)은 없습니다.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