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팤콘 @qkr1066 입니다.
저는 하고싶은 게 많아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지금껏 19가지의 일을 해봤는데요..
한번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마침 제가 사는 마을 가까이에 제법 큰 공단이 있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렇게 힘든 일을 평생하는 사람은 힘들구나. 바닥부터 배워야 하는 일이구나. 계약직과 정규직의 격차가 엄청나구나. 이런 일에 사람들이 돈을 쓰구나.. 등등 ..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느꼈고 직업에 있어 나쁘고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하나 하나 짚어 볼까요..
전단지.
생애 처음 한 아르바이트 입니다. 중학생때 아파트를 돌면서 문앞에 전단지를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경비아저씨 눈을 피해서.. 몰래 몰래.. 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붙이고.. 이틀동안 땀을 뻘뻘 흘리고 일해서 처음 번 돈 3만원. 뭐했는지 기억도 안나네요..ㅎㅎ 그당시엔 정말 큰 돈이라서 너무 기뻤었습니다.
막창집.
막창이란 걸 먹어본적도 없는 제가 수능치자마자 막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돼지의 4번째 위. 굽는 냄새가 얼마나 향기로운지.. 손님 먹고 남은 막창 몰래 몰래 먹었었네요.. 사장님이 그걸 보고 '그라지말고 일끝나고 회식하자' 해서 막창을 배터지게 먹었습니다. 하루에 5시간씩 일해서 한달에 80만원 벌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만해도 알바를 하면 절대 쉬면 안되는 줄 알았죠.. 매일 매일 일했었습니다. 노동환경이 정말 안좋았죠 불과 9년전만해도.. 그 전은 더 안좋았겠지만 제가 일해본적이 없어서 ㅠ..
흙 파기.
말 그대로 흙을 삽으로 팠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친구가 중학교에 빗물이 지나가는 도랑에 흙이 많이 쌓여서 그걸 퍼기만 하면 일인당 30만원씩 받을 수있다고, 하루만에 끝내면 하루에 30만원이라고..
네.. 한여름에 하루에 8시간씩 5일이 걸렸습니다. 시급으로 치면 꽤나 좋았지만.. 그냥 하루 종일 땅만 팠더니 밤마다 몸이 부서지는 근육통에 잠을 못이뤘네요. 일 끝나면 친구들이랑 목욕갔다가 국밥 한그릇 먹고 했더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뻔 했습니다..
게 전골 집.
네. 일했었던 막창집이 꽃게 전골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장님은 같았습니다. 막창집 할 때는 잘 됐는데,, 왜 메뉴를 바꿔서.. 점점 망해가다가 결국엔 저도 그만두고 가게도 없어지고 ..ㅎㅎ
공장바닥 바닥페인트칠
친구가 공장을 창업한다고 공장 바닥을 페인트칠 해야된다고 돈 넉넉히 준다고 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코팅도하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사장이 된 친구랑 둘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 친구는 지금 잘되고있습니다. 기쁩니다. ㅎㅎ
대게
대게 직판장겸 식당에서 일을 했습니다. 우리마을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연매출이 몇억? 몇십억되는.. 매일아침 엄청 큰 트럭이 옵니다. 거기서 대게를 꺼냅니다.. 죽을 맛입니다.. 그리고나선 수족관에 넣습니다.
손님이 오면 그 수족관에 있는 대게를 보여주고 무게를 달아서 팔고 쪄줍니다. 다 찐 대게를 윗층의 식당으로 들고 갑니다. 이걸 12시간 동안 반복합니다. 그렇게 일당 10만원. 옷은 온통 비린내. 직판장은 난방이 안되고 밖에 있어서 너무 추워서 난로앞에 있었더니 입고있던 패딩에 큰 구멍이 생겼습니다. 몇 주하다가 그만뒀는데, 죽은 대게나 다리가 없어 상품성이 없는 대게를 집에가서 먹으라고 쪄줄 때 제일 행복했습니다. 판매가로 20만원치를.. 받아 갈 수 있었죠. 배보다 배꼽이 더컸습니다.
공장 증축 노가다
대기업 공장에서 증축공사를 하는데 여기에 참여를 했습니다. 첫날부터 반장님께 쌍욕을 들었습니다. 작업중에 잠깐 대기 시간이 있었는데 벽에 기댄다고.. 쌍욕을 들으니 눈물이 흐를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일당은 8만원.. 돈 주니까 하자. ( 알고보니 12만원인데 반장이 가로채서 8만원이 된 것이었습니다..)
근데 이게 너무 바쁜 일이라서, 하루에 16시간 씩 일을 했습니다. 죽을뻔 한적도 2번. 피보는건 우습고.. 이때 캐나다를 가기위해 자금을 모을 때였습니다. 비오는 겨울 야간 작업을 하니 밥먹을때 손이 얼어 숟가락을 못들었습니다. 그 손을 보니 내 신세가 처량해 눈물이 나더군요.. 입이 부르트고 터져도 화장실을 못갑니다. 그래서 지금 입술엔 점이 몇개 있습니다. 피가 굳어 점이 되었더군요..
이렇게 힘든 고생을 해서 얻은건 정말 많았습니다. 열심히 일했더니 정직원으로 일하라고 권유도 받고, 내가 하루에 16시간씩 일해도 안죽는구나..하고 스스로가 강하다고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그리고, 하청 업체 노동자이던 우리는 대기업 정직원들이 다니는 길로 다니지말라고 주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벌써부터 계급이 느껴졌습니다. 이게 차별이구나.. 임원들이 자기 눈에 하청업체 노가다꾼들이 보이는게 싫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일했던 경험들을 면접에서 얘기하면 언제나 면접관들의 눈이 초롱거립니다. 저는 이 경험을 잘 이용해서 면접에도 좋은 인상을 남기고, 지금도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찜질방
캐나다 워킹홀리에 왔습니다. 한인 찜질방. 첫날 하루종일 일을 했더니, 오늘은 배우는 날이라서 일당은 없다. 라고 .. 얘기를 들었을 때 이게 그무섭다는 동족 등쳐먹는 인간이구나. 첫날 일하고 그다음날 출근 안했습니다. 외국나가면 무서운건 같은나라 사람이라는 말이 뭔지 알았습니다.
체리
추억을 팝니다. 에서도 얘기했지만. 저에게 자유를 느끼게해준 일입니다. 과수원을 옮겨다니면서 영어도 많이 늘 수 있는 기회였고,자연과 함께하고 편하게 느긋하게 산다는게 뭔지 알 수있었습니다.
마트
체리픽킹으로 번 돈을 라스베가스에서 전부 써버려서, 다시 마트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토론토 영하의 날씨에 저는 마트의 냉동식품 파트라서 냉동창고에서 일을 했습니다. 덕분에 토론토의 날씨가 그렇게 춥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마트에서 번 돈으로 뉴욕, 퀘벡, 몬트리올, 옐로나이프(오로라로 유명한 곳)을 여행 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봤던 최저온도는 -45도입니다.
컨테이너까대기
한국으로 돌아와서 미천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받던 시급 만원. 이제 꿈도 못꿉니다. 물류창고에서 컨테이너에서 물품을 꺼내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에 두개만 하고 가라더니, 빨리 하니까 하나 더 하랍니다. 역시 한국에선 일해서 벌어먹기 쉽지않네요.
공장이사
사장이던 친구가 이사를 한다고 도와달라고 합니다. 소고기 사준다고. 이틀간 도와주고 나니 돼지고기를 사줍니다. 그 때 부터 이 친구의 공장일은 안 도와줍니다.
공장
처음으로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정직원들은 진짜 일을 안합니다. 왠만해선 짤릴 일이 없으니까요. 핸드폰으로 게임하면서 일합니다. 대단합니다. 계약직은 항상 슬퍼 보입니다. 큰 벽을 느낄 수있었습니다.
과외
아는 자가 돈을 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투잡으로 뛴 일인데. 공장에선 뛰어다니면서 9시간을 일해도 과외와서 앉아서 초등학생 수학 조금 가르쳐주면 공장 일당의 절반을 받습니다.
과외의 비용이 고평가 되어있는지, 노동이 저평가 되어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식당
과외하고 공장에서 번돈으로 호주에 왔습니다. 호주에선 한식당에서 일했습니다. 김치와 쌀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밥도 매일 매일 공짜로 두끼씩 먹었습니다. 번돈으로 매주 여행을 갔습니다. 비빔밥을 먹는 외국인들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청소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청소로 바꿔봤습니다. 호주에선 청소만 해도 먹고 살만 했습니다. 정말 직업의 귀천이 없는 천국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목표는 호주 이민이었습니다.
막노동
가끔씩 인력소에 갔었지만, 이번엔 길게 했습니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일본에 사는 일본인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눈앞에서 부러진 다리를 보고 더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노가다야 말로 정말 많은 걸 보여줬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천한 직업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도 그렇기 때문에 숨기는 사람도 많고, 식당아줌마도 안전화신고 흙먼지 묻은 옷으로 주문을 하면 뭔가 쌀쌀맞습니다.
야간 조선소
학교 선배님이 중소 조선소에 일하고 계셔서 작업자로 야간에 일을 도와줬습니다. 일당 14만원. 조선소는 확실히 일당이 쎕니다.그동안의 경험으로 열심히 일을 했더니 같이 계속 일하자고 제의도 해주셨습니다만, 여자친구가 있는 일본으로 가야해서 거절했습니다.
주/야 자동차공장
계약직은 언제나 서럽습니다. 월급도 적고, 수습기간도 있고, 보너스도 적고 일은 젤 많이 합니다. 매일 밤 일하고 돌아오면 손이 저렸습니다. 결국 경영악화로 반정도는 짤렸습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전불감증은 대기업 자동차공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가락이 기계에 찍히는 사람이 꽤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업자가 실수를 하고 그대로 물건을 넘기면 재검사 없이 그대로 자동차에 부품으로 들어가는.. 그런 공정이 몇개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나사를 하나 안박고 넘기면 그냥 그대로 차에 부착 되는 겁니다. 비단 이 공장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 구입에 뽑기가 있고 왜 리콜이 많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야간 피시방
지금 하고 있습니다. 담배 냄새때문에 천식이 올 것 같습니다.흡연자가 없다면 정말 천국 처럼 일 할 수있는 곳입니다.
중간 중간 몇일 안하고 그만 둔 일도 있지만, 이것 저것 해보면서 하나 자신 있는건, '아 이 일은 내가 지금 받는 돈에 비해 쉽다. 어렵다. 를 구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직업을 갖고있어도 무시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인생에 큰 거름이 될 경험들인것같습니다.
너무 길게 썼네요.. ㅎㅎ 길게 쓰니까 렉이 걸리네요... 이제 자야겠습니다. 야간 알바는 지금 자야합니다 ㅎㅎ
혹시라도 읽어주신 분 계시면 ,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