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책방무사가 어딨지? 분명 여긴데...?"
하마터면 그냥 지나쳐버릴 뻔했다.
분명 지도앱이 알려준대로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한적하기 그지없는 마을의 모습뿐이었던 것이다.
이 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부랴부랴 찾아본 후에야
내가 서 있는 삼거리 모퉁이의, "아름상회"라는 글자가 남아 있는 간판이 달린 낮은 건물이
책방무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방무사는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가수 요조(yozoh)가 운영하는 책방이다.
"불현듯 책방을 운영하고 싶어졌"고, "죽기 전에 해야지!" 라고 결심했다는 그의 인터뷰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처음 서울의 북촌에 문을 연 책방무사는 시간이 흘러 성산읍 작은 마을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이 책방무사임을 알려주는 거라곤 창 너머 보이는 책과 창문에 붙어 있는 "OPEN" 이라는 안내판과
건물 앞에 세워져 있는, 나무로 만든 간판에 붙은 이름이 전부다.
그나마도 너무 작아서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이 곳은 책방입니다." 라는 정보전달에 이렇게 무심할 수 있나, 싶을 정도다.
조심히 문을 열고 책방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아주 새롭다거나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책방의 모습이 펼쳐졌음에도
어떤 낯섦이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라디오방송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맑고 경쾌한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멘트를 하는 여성 사회자의 목소리.
간간이 등장하는 효과음.
흥겨운 음악까지.
스피커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기를 담은 책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득 눈앞에 바다-그것도 여름바다-가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원한 파도소리,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눈부신 햇살, 상쾌한 바람, 그런 것들.
언젠가 인터뷰에서 요조는 일본 쇼난 지역의 라디오방송을 좋아해 즐겨 듣는다는 이야길 했었다.
구글로 쇼난을 검색했더니 아니나다를까, 해안에 위치한 지역이라고 한다.
이국의 한가로운 바닷가 마을에 둘러싸인 듯한 기분이 들어 새삼 기분이 들떴다.
책방무사를 운영하는 요조의 취향과 안목이 고스란히 반영된 책과 소품들이
오후의 햇살를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요조라는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직접 만난 적도 없지만 이 곳에 머무는 시간 동안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것을 추구하고, 또 어떤 것들을 지켜나가고 싶어 하는지를.
책방 안의 문에는 "책을 구매하거나 음료 주문 시 열어주세요." 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아마도 그 문너머에 요조가, 혹은 요조 대신 책방을 보는 이가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왜 저렇게까지 이 곳을 방문하는 이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가
이 공간이 품은 모든 것들-공간, 공기, 소리, 책, 소품, 등등-이 요조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람이 부재(不在)하지만 되려 그의 존재를 생생히 느끼게끔 하는 공간, 책방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