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히트하면서 이름을 얻었던 26세부터 10년간 바이마르 공국에서 관료로서 입지를 굳힌다. 출세한 관료로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그였지만 정신적 허기를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서른일곱 생일을 막 지난 어느 새벽, 괴테는 짐을 꾸려 도망하듯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평생 동경해 온 이탈리아의 로마.
1786년부터 1788년까지 1년 8개월간의 여행과 그 과정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풍광과 예술 작품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괴테는 또 다른 의미의 구원을 경험했다. 괴테는 베니스와 로마,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편지를 썼고, 이후 이 편지를 토대로『이탈리아 기행』을 완성했다.
괴테가 독일의 지인들에게 보낸 서한과 일기, 메모와 보고를 통해 우리는 괴테가 어떻게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고, 이후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는지 느낄 수 있다. 괴테는 로마에 도착한 날을 '제2의 생일'이라고 표현할 만큼 이탈리아라는 고전적 토양에 관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등 옛 거장들의 예술 작품에 깊은 관심을 갖고 감상하고, 또 화가로서 수업도 쌓았다. 틈틈이 그림과 글을 섞어 자기 생각과 느낌을 여행의 기록으로 남겼다. 이렇듯 한 나라를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는 열정, 겸손한 여행자의 자세, 예술과 문화에 대한 경외심은 『이탈리아 기행』을 통해 우리가 대문호로부터 전수받아야 할 유산일지 모른다.
‘이제부터 소식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더라도 벗들의 너그러운 양해가 있길 바란다. 여행 중에는 누구든지 가능한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움켜쥔다. 날마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판단하는 일로 바쁘다. 그러나 로마에 오니까 마치 아주 커다란 학교에 온 것 같아서, 하루 중에 본 것이 어찌나 많은지 그것에 대해 감히 이야기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니 몇 해 동안 이곳에 체류한다 하더라도 피타고라스 식의 침묵을 지키며 지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11월 7일) - 로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