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신화미술관이 강원도 문막읍 산골 마을에 있다. 100제곱미터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우리 신화를 아홉 가지 주제로 나눠 조소 작품과 판화 작품 등 약 150여 종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어릴 적 방학을 맞아 할머니 댁에 가면 떡을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할머니는 떡을 담아 놓은 접시를 제일 먼저 찬장 위에 정성스럽게 올려놓곤 하셨는데, 그게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께 올리는 재물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이야 조왕신이니, 철륭신이니 하며 따로 재물을 올리는 이들은 거의 없겠지만, 아직도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가면 고사를 지내고 떡을 돌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풍습이 한국의 전통 신화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신화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리스로마신화로 한정되는 까닭이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화하면 그리스로마신화를 떠올리게 될까? 옥황상제나 강림도령보다는 제우스나 헤라클레스의 이름이 더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우리 신화들에게 내어 준 자리가 너무 옹색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군신화나 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 등 소위 건국신화만을 신화로 대접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신화들을 무속신앙과 동일화시켜 미신의 영역에 가두어 버렸었다. 신화와 관련된 유물과 상징체계는 박물관에서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고, 발간되는 신화 서적은 그리스로마신화 아니면 그 해설서뿐이었으니 문전박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신화와 관련된 자료를 보면, 대부분이 학술 자료들로 일반인이 쉽게 다가가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들이다. 그런데 신화미술관이 눈에 띤다. 한국의 신화를 소재로 작품들을 전시한 미술관이란다. 국내 유일의 신화미술관이라는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찾아 나선 곳은 강원도 문막읍 취병2리 835번지. 미술관이 거처로 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주소이다. 번듯한 도회지도, 이름난 관광지도 아닌 강원도 산골. 전국을 휩쓴 구제역 탓에 몇 번의 방역을 거쳐 들어선 마을의 축사들은 텅 비어있다. 며칠 전 마을의 소들이 매몰 처리 됐기 때문이란다. 공교롭게도 매몰된 소들과 잊혀 가는 우리 신화가 겹치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마을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은 100여 제곱미터 남짓의 작은 공간이다. 우리 신화를 아홉 가지 주제로 나눠 조소 작품과 판화 작품 등 약 150여 종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여신과 관련된 작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를 신화미술관 관장 김봉준 화백은 이렇게 설명했다.
“인류사에서 남신의 역사는 고작 2,000년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 이전은 여신의 역사였지요. 남신의 문명이 전쟁과 폭력, 생산력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나타나는 반면, 여신의 문명은 생태주의적이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 공존하고 배려하는 문명이기에 여신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만 여기고 있던 여신들은 사실 창조와 조화의 신으로 우리 신화 속의 마고할멈이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너무 외진 곳에 있는 미술관의 위치에 대해 질문하자 “원형을 찾기 위한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화라고 하는 것이 원형에 천착해 들어가는 것인데, 농경민족이었던 우리 신화는 본질적으로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입니다. 더구나 우리 신화의 많은 부분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나타났기에 신화미술관이 산 속 마을에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거지요.”라고 답한다. 김봉준 관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산속 마을에 미술관이 자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족과 언어와 문화가 있어 왔다. 하지만 서구 문화의 급속한 세계화, 일반화의 추세 속에 다양한 신화까지 일반화 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신화들이 각 지역들의 생태 지리적 특성에 따라 형성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신화의 일반화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리적, 지역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신화가 일반화된다면 이것은 곧 신화의 죽음과 다름 아니며, 신화의 죽음은 특정 문화와 종족의 소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종과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본다면 신화의 다양성은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둘러보니, 신화가 지닌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함의를 굳이 논의하지 않더라도 우리 신화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