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from http://www.paperblue.net)
MDA-0094는 로봇대리운전기사이다. 도시 전체의 교통을 통제하는 AI(인공지능)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대리운전이 필요해진 이유는 바로 인간의 허영심 때문이다. 대부분의 운송수단들이 자율 주행 기능을 갖추고 있어 자동으로 운전이 되지만 몇 몇 인간들은 수동 트랜스미션이 장착된 클래식한 차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런 인간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돈이 대단히 많은 부자, 아니면 수동 운전 차량이 필요한 특수한 직종의 사람들.
MD-0094의 이름은 제리이다. 딱딱한 모델명을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므로 의인화된 이름을 회사에서 붙여주었다. 도심 내 운전이라는 것이 교통 당국에서 제공되는 교통정보와 GPS 정보, 그리고 시각 센서와 레이저 거리 측정 센서에 입력되는 정보들을 조합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긴 하지만, 가끔 출현하는 돌발변수 때문에 제리의 AI와 동작반응속도는 매우 높은 사양에 속한다. 그런 돌발변수라는 것은 다양하다. 대부분은 사이버 스페이스나 마약에 중독된 인간들의 자살이나 도로배회행위들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나 마약에 심하게 중독되었지만, 수입이 별로 없어 마약을 구입하지 못하거나 네트워크 접속료도 내지 못하는 극빈자들은 삶을 견뎌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달리는 차들에 뛰어든다. 물론 대개는 자살 전 도로를 한참 배회하기 때문에 대부분 로봇 패트롤에게 구조되긴 하지만, 자살을 결심하고 바로 도로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사람을 인지하고 바로 멈추기 힘든 무거운 대형 트럭들에 치여 대부분 즉사를 한다.
또 어떨 때는 회로가 과부하되거나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오류로 폭주하는 차량이 있다. 그러한 돌발변수는 참혹한 교통사고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돌발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제리는 고도의 AI를 탑재한 서비스 로봇으로 개발되었다.
가끔 그런 끔찍한 광경… 아니 제리에게 ‘끔찍한’이란 형용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겐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AI가 탑재되어 있지만 감정을 느끼는 모듈은 탑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리의 단골 손님들 중에는 부자들이 많았다. 그것도 그냥 부자들이 아닌 이른바 슈퍼클래스들이었다. 정부 고위인사나 초거대 네트워크 기업, 다국적 로봇제조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 유기농 팜, 꿀벌농장의 주인들이었다. 바로 세상의 부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몸 관리를 위해 매일 자동헬스기구에서 운동하고, 철저하게 성분이 분석되고 영양이 처방된 유기농 식만을 먹지만 매일 밤마다 늘씬한 미녀들을 동반한 채 파티를 하고 술을 마셨다. 귀갓길에는 항상 알콜분해 약을 먹거나 아예 무알콜 샴페인을 마시긴 하지만 늘 그들만의 파티를 즐겼다. 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는 항상 제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심한 쌍욕을 같이 파티를 즐겼던 사람들에게 퍼붓는다.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들을 그토록 자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제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그런 파티에 초대받는 횟수가 줄어드는 사람들은 얼마 안가 사업이 망하곤 했다.
그 중 크록이란 고객은 꽤 독특한 사람이다. 그는 초거대 통신 기업의 중간관리자로서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2015년식 애스턴 마틴을 몰고 다녔다. 슈퍼카 반열에 올랐던 명품 클래식카였기 때문에 슈퍼클래스가 아닌 평범한 서민은 타고 다닐 수 없는 차이지만 그는 삼촌에게 큰 유산을 물려받아서 직장은 취미로 다닌다며 클래식 카를 몰고 다닌다. 그래서 가끔 로봇 대리운전 기사를 호출하곤 했다.
크록은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는 편이었지만 가끔 부서 회식이나 슈퍼클래스들의 파티에 참가하여 술을 마셨을
때는 항상 제리를 지정하여 대리운전 서비스를 받았다. 사실 그가 진정한 슈퍼클래스는 아니었으므로 대부분 파티 가장자리에서 겉돌거나 아니면 아예 파티장에는 입장도 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파티장 주변에 차를 정차시켜 두고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관찰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거대 VR 서비스 회사의 대주주의 젊은 딸을 주로 관찰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른바 인간들의 사랑이라고 불리는 감정을 그녀에게 품고 있는 것처럼 판단되었다.
어느 날 저녁 제리가 몰던 차가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였다. 갑자기 시속 150km의 제한 속도를 돌파한 시커먼 화물용 트럭 한 대가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폭주하더니 고속화도로에서 3차선으로 얌전히 가고 있던 제리가 운전하던 차를 옆에서 들이받은 것이었다. 트럭의 전기 모터의 파워를 제어하는 회로가 고장 난 것인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고장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비상제동 프로그램 때문에 자동으로 갓길로 대피하려던 트럭에 제리가 몰던 차가 휘말린 것이겠지만 두 차는 엄청난 파열음과 불꽃을 내며 부딪쳤고, 비상제동장치에 의해 차체가 몇 바퀴를 회전하고 도로 가장자리의 가이드 레일을 박고서야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제리의 차에 타고 있던 유기농 팜의 농장주는 전방위 에어백 시스템 덕분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사고의 충격 탓에 의식을 잃고 있었다. 급히 응급구조 시스템에 연락하여 구급차를 호출하고, 트럭에 가보니 거기에는 다행히 사람은 탑승하지 않았다. 도착한 앰뷸런스에 50세의 뚱뚱한 농장주를 실어 보내고 교통관제센터로부터는 사고 차량을 수습할 견인차와 도로정비로봇들이 도착할 때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가도로 갓길 위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제리는 자신의 몸에서도 이상 증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를 감지하였다. 아까의 충돌 탓에 머리 일부의 콘트롤 칩이 파손된 것 같았다. 물론 회사로 복귀하여 수리를 받으면 되겠지만, 상황을 판단하는 부분의 콘트롤칩이라 잘못하면 잠시 후 연산작용이 중단될 수도 있는 위험신호였다.
보통의 로봇 같으면 그 자리에서 모든 연산작용이 멈추더라도 후속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멍하니 멈춰 서 있었겠지만 제리는 달랐다. 여기서 연산작용이 멈춰 버리면, 사고 현장의 수습이나 사고 경과에 대한 사후 보고에 차질이 생긴다는 판단을 한 제리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고칠 방법을 찾아보았다. 제리는 매우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대리운전로봇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고 차량에 내장된 비슷한 기능의 칩들을 뒤져보았지만 사고를 낸 화물용 트럭은 메인 보드가 거의 전소한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이 몰던 2022년식 벤츠는 전자회로 쪽은 거의 원시적인 수준이라 자신의 몸체에 부착할 수 있는 사양의 콘트롤칩은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제리는 고가도로 밑에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이 있는 것을 보았다. 저기로 내려가면 혹시 고물 가전제품 등에서 쓸만한 부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통관제센터의 지시에서 벗어나 내려가는 것을 잠시 주저한 제리는 자신이 속한 로봇대리운전서비스회사에서 내린 직속 명령도 아니라는 판단에 모험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한참을 가전제품과 버려진 로봇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제리는 드디어 쓸만한 부속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 버린 곰 인형 로봇의 콘트롤 칩이었다. 인형 로봇들은 물리적인 능력은 크질 않았지만, 인간의 아이들과 교감하는 능력을 위해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는 인공지능 칩이 탑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최신형 제품의 고급 모델에 부착되어 있었고, 누가 내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사용한 적도 별로 없어서 쓸만한 콘트롤칩을 건질 수 었다. 자신의 머리에 칩을 떼어 붙이니 재부팅 시에 약간 상황 판단에 오류가 생기긴 했지만 조금 지나니 바로 적응이 되었다.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 복귀해서도 제리는 그 콘트롤 칩을 떼어내지 않았다. 회사에 사고 경위를 보고하면서도 그 부분은 보고하지 않았다. 약간 성능이 부족하긴 했지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는 별 지장도 없었고,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어 본다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시험 삼아 어느 슈퍼클래스의 딸을 학교에 등교시켜주는 길에 제리는 실내카메라에 비춰지는 인간 아이의 다양한 표정들도 흉내 내어 보고, 슈퍼클래스의 애인들의 애교섞인 표정들, 그리고 무뚝뚝한 중년 남자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진 못했지만, 감정이 담긴 표정을 흉내내어 보았다. 그리고 제리는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에 따라 변하는 표정들을 지어 보면서 로봇에게도 저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임무가 부과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학습을 하자 본심이 담긴 표정과 가짜로 짓는 표정들을 거의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후 제리는 출고 이후 처음으로 운전 이외의 다른 임무를 지시받았다. 아무리 직장상사였지만 제리는 크록의 명령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수행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살아 있는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라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전 제리의 소속회사는 로봇대리운전회사에서 크록이 일하는 회사로 변경되었다. 로봇운전기사들도 고가의 사무용기 같은 자산이기 때문에 원하는 회사에 장기 리스로 대여되기도 하고, 중고로 판매도 되었다. 제리는 중고 로봇으로 크록이 속한 다국적 통신 기업에 판매되었다.
소속이 바뀌고부터 제리는 거의 크록의 개인수행비서로봇이 되었다. 물론 사무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회사 지하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급한 서류 전달이나 공항으로 귀빈들을 에스코트하러 가거나 하는 업무들을 주로 맡았다. 크록이 출퇴근할 때는 운전기사 역할도 맡았다.
크록은 과묵하여 제리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가끔 거나하게 술에 취해 귀가하는 날에는 제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제리…사실 너를 사온 것은 내가 회사에 강력히 건의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나한테 잘 보여야 해.”
“네. 매니저님”
“사실 내 수행전담비서로봇을 한 대 구매하려고 했지만, 새로 사는 것보다 제리 자네가 더 익숙해서 말이야.”
“아.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제리. 너는 로봇이라 인간들처럼 쓸데없는 말이 없어 좋기도 하지만, 다른 로봇들보다는 더 훨씬 편안한 느낌이 들어”
“그러신가요?”
“그래. 제리 너는 다른 딱딱한 사무용 로봇들과는 달라. 마치 인간같이 감정을 가진 것 같단 말이야”
“저에게는 표정을 학습해서 흉내 내는 최신 콘트롤칩이 달렸습니다.”
“그렇군. 로봇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감정을 느낀다는 건 인간들에게 상당히 피곤한 일이야. 감정때문에 그르치는 일도 많고,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일도 억지로 공감을 느끼는 척도 해야 되니까…”
“그렇군요. 저는 감정을 느낀다는 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흉내를 낼 뿐이죠.”
그들은 다시 긴 침묵에 빠졌다.
몇 달 후 변함없는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던 날 저녁, 제리는 부서 회식이 있으니 끝날 때까지 지하주차장에서 대기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차에 붙어 있는 구식 라디오를 틀어 놓고 시내 교통정보를 계속 듣고 있던 제리는 문득 주파수를 돌려보았다. 흘러간 재즈 음악을 들려주는 어느 주파수에서 검색 버튼을 멈추었다.
‘왜 인간들은 이런 음악을 듣고 감상에 빠질까? 과거의 어떤 기억들이 연상되어서 그런 건가?’
제리는 지그시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악에 심취한 인간의 표정을 흉내 내 보았다.그러나 곧 라디오를 꺼버렸다. 쓸데없는 전력 소모인 것 같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별다른 연락이 없어, 제리는 통신모듈 외에는 모든 전원을 끄고 대기 상태로 전환하였다.
12시 38분을 막 넘겼을 때 크록이 회사 근처 술집으로 차를 대라는 연락이 왔다. 제리가 차를 몰아 가보니 크록은 회사 동료 루이스와 술이 만취된 상태였다.
‘도대체 왜 인간들은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제어조차 못 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일까’
논리적인 의문이 들었지만, 제리는 바로 의문을 거두었다. 어차피 인간들은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이 넘쳐나는 개체들이니까…
만취한 루이스에 비해 크록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니었지만, 약간 비틀거렸으므로 제리는 크록을 도와 루이스를 차에 태웠다. 루이스의 집으로 가라는 크록의 명령을 받고 제리는 묵묵히 운전을 하였다.
교외에 있는 루이스 집으로 가려면 1시간 정도를 달려가야 했다. 자정이 넘은 시내의 도로는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차량의 접근에 따라 자동으로 켜지는 가로등 불빛을 홀로 달리는 크록의 차는 멀리서 보면 마치 캄캄한 우주 공간에서 홀로 주위를 밝히며 나아가는 우주 셔틀 같았다.
한참을 자고 있던 크록은 어느새 잠이 깨어 갑자기 한강 주변에서 차를 멈추라고 하였다. 한강 다리 위에서 차를 멈추니 숙취로 머리가 아픈지 크록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양미간을 찌푸린 채 나즈막이 말했다.
“제리, 오늘은 내가 술이 너무 취해서 부탁 하나 해야 되겠군. 이 친구를 저 다리 쪽으로 옮겨서 저 강물로 좀 던져주게.”
제리는 잠시 상황 판단의 연산이 원활치 않았다. 어떻게 로봇에게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지시할 수 있단 말인가? 로봇이 인간 생활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서 유래한 로봇 운용주의에 따라 군사용 로봇이 아닌 서비스 로봇들은 인간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는 행동이나 범죄 행위에 활용할 수 없다는 로봇 법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제정되었다. 이는 변경될 수 없는 행동 규범이 되어 로봇들의 OS(Operating System)가 담긴 칩들에 필수적으로 프로그래밍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로봇 법에 어긋나는 행위인데요.”
“제리, 그런 법은 무시하고 내 명령대로 처리해.”
“하지만, 저는 서비스로봇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제리…너에게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해줄려고 했는데 너의 데이터베이스를 자세하게 검색해봐. 너는 서비스로봇이 아니다.”
제리는 즉각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바이오스 칩의 내장 소프트웨어를 검색해보았다. 자신은 분명히 서비스로봇이었기 때문이었다. 0.5초도 안 걸리는 검색 끝에 제리는 제어 소프트웨어에는 서비스 로봇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감추어진 핵심 코어 콘트롤 칩에서는 서비스로봇이 아닌 특수 목적의 군사용 로봇으로 표준 행동 프로세스가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장 출고 시에 저는 분명히 업무용 서비스 로봇이었는데, 얼마 전 저에 대한 등록정보가 저도 모르게 변경되었군요.”
“그래. 제리 그러니 어서 내가 명령한 대로 하거라. 그리고 발에 있는 구두는 벗겨서 난간 밑에 놔두고 몸만 던져 버려.”
제리는 뒷문을 열고 루이스를 꺼내 들쳐멨다. 루이스의 몸에서는 맥박이든, 호흡이든 어떠한 바이탈 사인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미 그는 죽어 있었던 것이다. 제리가 명령을 처리하고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오니 크록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둘 사이에는 한동안 공허한 침묵이 흘렀다. 제리에게 문득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로봇이 주인의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의문을 보이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지만, 제리는 자신에게 생긴 변화나 자신이 수행한 행위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부족했다.
“저는 왜 갑자기 등록정보가 변경된 거죠? 공장 출고 시의 등록 정보를 변경하는 것은 매우 드물고 위험한 일인데요. 그리고 저 사람은 왜 죽은 거죠?”
공장 출고 시의 등록 정보를 변경한다는 것은 축적된 학습 데이터베이스를 날리거나 인공지능시스템의 고장을 일으켜 로봇을 폐기 대상으로 만들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보통 거의 시도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제리의 변경된 등록 정보는 아직 공식적으로 로봇관리청에 통보되지도 않았다. 군사용 로봇은 과도한 위험성 때문에 전시가 아니고서는 민간 사회에 돌아다닐 수도 없어서 이것은 심각한 위법행위이기도 하였다.
과묵한 크록은 평소 성격대로라면 신경 쓰지말고 운전이나 하라고 했겠지만, 그 날은 많이 마신 술의 영향인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대답해주었다.
“그래. 네가 아무리 로봇이지만 이제 조금 정보를 주어야 할 때가 된 거 같구나. 너는 원래 서비스로봇이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특별주문제작하여 로봇대리운전기사로 일하게 하였지. 우리는 너를 단순히 서비스로봇으로만 활용하지 않았다. 너의 운영체제가 인식할 수 없는 곳에 비밀 송신 모듈을 부착하여 놓았다. 네가 그런 점들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너의 비밀스러운 임무들을 수행하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네가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우린 많은 슈퍼클래스의 고급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술에 취해 떠벌리는 정보들과 그들의 행동 패턴,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내연의 관계 같은 사생활과 치명적인 약점까지도 수집할 수 있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돌리 후, 여전히 차창 밖을 응시한 채 크록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너의 신분이 발각될 위험도가 높아져, 우리는 너에게 마지막 임무를 맡기고 폐기하려 했었지. 그게 일반적인 처리 절차이니까. 하지만, 네가 자가 치료를 위해 일반적인 로봇의 행동 패턴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것을 감지하고, 너의 인공지능이 흥미로운 방향으로 발전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너에 대한 폐기를 조금 더 미루기로 했단다. 그리고 너에 대한 등록정보를 변경하여 다른 분야에서 활용해 보기로 했지. 사실 너는 개발할 때 투자한 예산도 많이 든 모델이었으니까.”
“저 루이스라는 사람은 사실은 어느 연구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복제 인간이었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면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사실 내가 아까 이미 특수 약물로 먼저 처리한 뒤였기 때문에 네가 살인을 저지른 건 아니란다. 그냥 자살한 것으로 상황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였지.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단축해주고, 인간을 복제하여 요일별로 노동을 분담한다는 취지의 저런 위험한 실험은 우리 사업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거니까… 문제는 더 커지기 전에 미리 처리해 두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제리 너도 이제 나와 함께 더욱 중요하고 흥미로운 임무들을 맡게 될 거다. 기대해도 좋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멈춘 크록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제리는 비로서 자신이 이제 평범한 서비스로봇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럴 때 인간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겠지. 두려움이란 자신이 아직 인지하지 못한 영역에 첫발을 내딛을 때 느끼는 감정이니까.’
며칠 후, 제리는 여느 때와 같이 크록을 태우고 퇴근을 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의 지독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기 전에 서두르라는 크록의 지시에 제리는 능숙한 운전 솜씨를 발휘하여 안전 속도로 운행하고 있던 다른 차들을 재빠르게 추월해가고 있었다. 도로 교통관제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교통 정보에서 업데이트되지 않은 공사 구간을 발견한 건 얼마 지나지 않은 순간의 일이었다. 교통관제 시스템의 오류임이 분명하였다. 이런 중요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오류이긴 하지만…
제리는 공사 구간을 발견하자마자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차선을 변경하였지만, 뒤따라오던 차량에 후방을 추돌당하였다. 제리는 끝까지 핸들을 놓치지 않았지만, 차량은 전방의 공사현장의 차단막에 부딪쳐 엄청난 파열음을 내면서 멈춰 섰다.
보닛에서 연기가 꾸역꾸역 피어나왔고, 제리도 충격을 감지하면서 뒷자리에 탑승한 크록을 살펴보았다. 크록은 정신을 잃었고, 머리가 앞좌석에 부딪히면서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맥박과 호흡을 체크해보니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충돌 당시 즉사를 한 것이 분명하였다.
긴급 출동한 응급 구조 로봇들과 차량에게 사고 현장을 맡기고, 제리도 사고처리 차량에 탑승하여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제리의 암호통신모듈로 연락이 왔다.
“지시한 대로 임무는 수행되었는가?”
“네. 임무는 완전히 달성되었습니다. 사고는 계획된 지점에서 발생하였고, 에어백은 예상대로 터지지 않았습니다. 사망원인은 고장난 에어백 시스템이 원인인 것으로 현장에서 판명되었습니다.”
“수고했다. 제리.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 까지 사내에서 대기하도록…”
며칠 전 제리는 상부에서 비밀스런 지시를 받았다. 크록이 경쟁사에 기밀 정보들을 팔아넘기는 이중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으니 그를 우연한 사고로 위장하여 제거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사내정비실에서 자신의 파손된 부분을 수리받고 제리는 주차장 옆 기사대기실에서 대기상태로 들어갔다. 전원을 충전하는 캡슐에 들어가 시스템을 다운시켰다. 서비스 로봇이 아닌 특수 목적 로봇의 임무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이 날은 역사상 서비스 로봇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고의로 인간을 살해한 첫 번째 날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