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다음 영화 <택시운전사>(2017)
Feelroom.5 (film)
<택시운전사>, 미시의 세계로 바라본 거시적 역사
1. 미시의 세계로 바라본 거시적 역사
역사는 때로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심지어 할아버지의 참전 무용담을 직접 듣고 있어도 그것은 ‘그랬구나.’ 정도의 수긍을 불러올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치명적인 역사의 상흔을 마주하고도 감흥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거시(巨視)의 역사, 국가나 국가 간의 협약과 같은 큰 틀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의 시간 속에서, 그 시간을 살던 사람들의 일상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가 배웠던 역사를 실제적 상황으로 어떻게 맞이했는지,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멀다. 지금도 벌어지는 국가 간의 협약이나 정책, 시대의 흐름 같은 것은 대중들의 피부에 와닿는 것은 아니니까. ‘전쟁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겐 유쾌한 일’이라는 에라스무스의 말이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적절히 들어맞는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마주할 때, ‘유쾌한 곳’에서 ‘희극적인 거리’로 지켜볼 따름이다.
진입로 앞의 검문소를 보고 의아해하는 만석 *사진 : 다음 영화 <택시운전사>(2017) 스틸컷
택시운전사 만석(송강호)은 역사를 멀리느끼는 대중들의 전형을 스크린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갑자기 뛰어든 학생 때문에 망가진 차를 보고 격분해 ‘데모나 하려고 대학생이 되었나.’거나, 계엄령이 떨어진 광주의 입구를 삼엄하게 지키는 군인들을 의아하게 보기도 한다. 만석에겐 내 세계가 아닌 바깥에서 어떤 비극이 벌어져도 내 피부로 느끼는 비극, 생계의 고통보다 더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광주의 계엄령은 당장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밀린 월세는 당장 딸에게도, 자신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영화는 만석을 지극히 ‘생계적인 것’으로 역사의 현장으로 끌고 들어간다. 밀린 월세 때문에, 역사의 서막을 알리는 독일 기자를 태우고 항쟁의 중심으로 향하는 택시 운전사. 이렇게 표면적으로 그려진 이야기는 우리에게 거의 주제나 다름없는 사유의 덩어리를 던져준다.
우리가 미시(微視)의 세계에 있다 해도, 함께 전진하고 있는 거시적인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만석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위르겐 힌츠피터(토마스 크레취만)을 태우기로 했던 그 택시기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을 것이고, 그도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 계속해서 대체된다. 그러므로 역사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뿐, 언제든지 내가 그 자리에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가 역사의 현장에 서있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전쟁과 같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역사의 현장도 국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폭압의 역사라면 더더욱 그 역사를 함께 하기 힘들다.
이때 영화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우리는 영화 카메라의 눈을 빌려 비현실을 현실로 재구성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재현된 역사'를 거닐 수 있다. 우리도 일상을 거닐다가 ‘만석’과 같은 태도로 영화관에 발을 들이지만, 만석이 뜻밖의 역사의 현장에 던져졌듯이 영화를 현실로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실제적 상황에 놓여있었던, 우리의 일상을 닮은 민중들의 모습을 포착하면서 그것은 별도의 역사가 아닌, ‘어떤 우리들의’ 역사가 된다.
<택시운전사>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주인공 만석은 미시의 역사를 사는 우리의 표본이며, 그가 광주로 진입하는 과정또한 우리가 영화관에 입장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만약 일상적 세계가 아닌, 항쟁을 주도한 주축 세력이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우리는 또 ‘저 멀리서’ 역사를 바라봤을 것이다. 그러나 만석의 이야기나, 만석이 만난 이들의 모습은 우리와 닮아 있다. 닮음으로 인한 동질감의 획득은 어떤 역사에 대한 서술보다도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개봉당시 전세계인들을 충격에 빠뜨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신 *사진 : 다음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신이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이유도 그에 있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의 용감한 군인들을 봐왔지만, 총에 맞아 내장을 흘려가며 공포에 질린 채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짖는 군인들의 모습은 생각지 못했다. 관객들은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울부짖게 될, 전쟁의 공포를 직접 ‘체험’ 함으로써 비극의 역사를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나아가 그 체험이 우리의 현재가 되지 않도록 각성의 목소리를 낸다.
물론 미시의 시각으로 거시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택시운전사>의 방식 자체가 참신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는 ‘솔직함’ 때문이다.
역사의 참극 속에서도 섣불리 격정의 불길에 휩싸이지 않고 개인의 안위를 챙기는 ‘만석’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보다 현실적인 느낌을 받는다. 너무나 쉽게 정의니 결의니 하는 것에 도달해버리는 ‘영웅’들의 거사에 우리는 질려버렸다. 사실 직접 관련 없는 죽음의 현장 앞에서 오롯이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개인의 사정을 제쳐두고 의기투합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거시의 세계에서 자신의 세계를 놓을 수 없는 만석의 모습으로부터, 그러나 반복되는 참극에 천천히 결의를 향해 발돋움 하는 만석의 고뇌로부터, 우리가 어떤 역사의 현장에 놓여 망설이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죄악은 아님을 위로받는 동시에 그래도 용기낼 수 있음을, 일련의 희망마저도 느끼게 한다.
이처럼 <택시운전사>는 그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들도 우리의 일상과 머지않은 것으로 직조했지만, 주인공이 결의에 다다르는 과정 또한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게 될 과정을 표현해냈기에 그 결의에 진정성을 더해주게 된다.
<택시운전사>는 거창하게 역사를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택시를 타듯 영화관에 들어와 만석의 택시를 타고 그날의 광주로 향할 뿐이다. 만석이 힌츠피터에게 끝내 이름을 남기지 않듯이, 택시에 동승했던 관객들도 이름을 남기지 않고 현실로 되돌아온다. 다만 힌츠피터의 마지막 독백처럼 기억될 뿐이다. 우리도 그날에 함께 했었음을, 어딘가의 일상 속에서 말이다.
<택시운전사>의 이미지는 '길'과 '택시' 그리고 '헨즈피터의 카메라'의 비중이 크다. *사진 : 다음 영화 <택시운전사>(2017) 스틸컷
2. 영화 <택시운전사>의 이미지, 그리고
<택시운전사>의 내러티브는 지극히 전형적이다. 허나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단지 해학의 힘을 빌렸기 때문은 아니다. 이 작품은 해학도 해학이지만, 영화 속을 지배하는 이미지를 읽는 맛도 상당하다.
<택시운전사>에서 줄곧 등장하는 이미지의 핵심은 ‘택시’와 ‘길’, 그리고 ‘카메라’인데, 이 각자의 대표되는 이미지는 이 작품의 철학을 담뿍 담아내고 있다.
먼저 '길'. 미시의 세계로 대변되던 서울의 길은 만석의 택시를 따라 광주로 이어지고, 광주의 무수한 길을 겪으며 ‘서울택시’였던 만석의 정체성은 변화를 겪는다. 만석이 중대한 변화를 겪는 지점은 항상 길 위인데, 광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는 시점, 참극을 목도하는 시점, 결의를 다지고 ‘U턴’하는 시점 모두 ‘길’ 위에서 이뤄진다. 이처럼 수많은 ‘길’을 겪은 만석의 여정은 최초의 집 앞 골목에서 끝나고, 결국 이 길들의 궤적, 연결은 거시적 세계와 미시적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석이 답습한 '역사의 길'은 만석이라는 한 개인의 길과 이어지고, 나아가 만석의 택시의 동승한 관객들의 길에도 이어진다.
그리고 '택시'. 만석은 극의 초반부엔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택시를 아낀다. 택시의 종류조차 '개인'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 개인택시다. 이는 미시의 세계에 놓인,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는 만석의 세계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만석은 광주에 들어가 역사의 현장에 놓이면서 자신의 택시가 부서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되는데, 이후 택시가 총탄에 망가지고, 또 함께한 이들과 고통을 공유하며 치유도 받으면서 ‘서울택시’였던 그의 택시는 ‘전남택시’로 번호판마저 바꾸게 된다. 여기서 '길'이라는 이미지가 큰틀에서 '개인과 역사는 무관하지 않다'는 영화의 세계관을 드러냈다면, '택시'의 이미지는 한 개인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역사 속에 놓인 개인은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개인차원의 세밀한 주제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카메라'. 만석의 택시에 동승한 헨츠피터의 '카메라'는 영화의 핵심동력이면서 극중 인물들에게 각각의 이유로 지대한 관심을 받는다. 극중 '카메라'는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만 그와 동시에 군부 세력에게 추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위험한' 물건이다. 그런데 때마침 객석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 역시 그 영화를 기록하는 하나의 ‘필름’이기도 하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은 촬영 카메라의 눈을 빌려 보는 것이며, 헨츠피터의 카메라가 이미지를 필름에 저장하듯이, 우리는 영화에서 얻은 이미지를 잠자코 뇌 속에 저장한다. 따라서 영화를 관람한 우리의 존재 자체는 헨츠피터가 카메라를 통해 얻은 '필름'과 같으며,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카메라를 대하는 것과 같은 중요도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이 카메라를 대한 방식대로, 이 역사를 감추고 싶은 자들에게 <택시운전사>의 관객들은 ‘없애고 싶은’ 치부가 될 것이고, 이 역사를 간직하고 싶은 자들에게는 주먹밥이라도 나누고 싶은 ‘응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이미 이미지의 모습으로부터 곧바로 주제의식과 직결된다. 어떤 역사의 길도 우리의 골목길 같은, 일상과 동떨어져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으며, 거시의 세계, 역사의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개인택시’만을 아끼게 되진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역사를 기록한 우리 개개인은 ‘하나같이 중요한 필름’이 될 것이라고.
<택시운전사>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 서사는 영화 속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가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길'이며, 우리는 각자의 길 위로 버스든, 택시든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힌츠페터가 무사히 필름을 회수해냈듯이, 우리 모두는 극장에서 <택시운전사>가 그려낸 한 역사의 모습을 기록한 하나의 필름으로 사회 속에서 이 작품을 회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광주 항쟁의 시간을 넘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겪는 새로운 역사를 멀리서 외면하지는 않으리라고, 언제든 각자의 '택시'를 타고 '길'을 이어 역사의 산증인이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