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 올해 충무로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주52시간 근무제다. 지난해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영화 노동 환경이 변화됐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영화 산업이 근로 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이다. 국회는 특례업종이 연장근로의 한도를 적용받지 않고 있어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 공중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으니 기존의 특례업종 26개에서 21개를 대폭 제외하기로 했고, 그 배경에서 영화 산업도 21개의 특례 제외업종에 포함됐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영화 스탭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모든 근로자는 하루 8시간, 주 5일 동안 노동한다. 휴일근로를 포함한 연장근로가 최대 12시간 주어진다. 주중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합쳐 주 52시간이다. 1주에 최대 68시간 동안 노동을 시킬 수 있었던 기존의 노동 환경에 비하면 무려 16시간이나 단축됐다. 휴일근로 할증률 또한 명확하게 기재됐다.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한 경우, 1일 8시간 이내의 휴일근로는 통상 임금의 50% 이상을, 8시간을 초과할 경우에는 통상임금의 10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추가수당과 휴게시간을 조건으로 한 연장근무가 가능하다. 이점에서 촬영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할리우드와 다르다.
“제작비가 ‘따블’이다.” 제작자 A씨의 말대로 현장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은 거세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촬영 회차가 늘었고, 그에 따른 촬영 장비 대여비를 포함한 식비, 장소 섭외비 등 프로덕션 진행비가 덩달아 올라갔다. 제작비 규모와 장르마다 각각 다르지만, 제작비가 최소 10%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올해 최저임금제도가 지난해 대비 10.9% 인상(시급 8,350원)되면서 스탭 임금도 덩달아 상승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로듀서 B씨는 “특히 최저임금제도가 인상되면서 막내 스탭 임금이 올라갔고, 그러면서 막내 윗선의 스탭들 또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바람에 전체 스탭 인건비가 약20% 이상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개별 스탭의 인건비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한 대형 투자·배급사 C 상무는 “탄력제 근로가 불가능해지면서 하루 8시간 이상 노동을 할 수 없게 되니 스탭들은 추가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스탭들이 주 52시간 근무제 이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개런티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배급사 입장에선 스탭을 해고 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거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 위주로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제작자 A씨는 “그렇게 되면 개런티가 높은, 실력 좋은 스탭들이 대우가 좋은 드라마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인력 유출을 우려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2017년 2월 노·사·정 단체협약을 통해 마련한 표준계약서가 수정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2017년 영화계 각 단체가 협상했을 당시 노사는 1주일 48시간 노동에 대한 통상주급액을 보장하고 8시간 이상 노동할 경우 추가 임금 50%를, 12시간 이상 노동하면 다시 추가 임금 50%를 지급하는 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표준근로계약서 수정 협의를 위해 영화노조와 단체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제작사는 덱스터픽쳐스, 비단길, 용필름 등 15여개에 이른다. 노사 간에 탄력근로제 적용 여부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단체 교섭이 처음인데다가 여러 제작사와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까닭에 표준계약서 수정안을 내놓는데 시간이 다소 걸리고 있다. 분명한 건 주52시간 근무제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영화 제작 현장과 달리 영화제의 노동 환경은 꽤 심각하다. 얼마 전,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영등포구갑)은 부산국제영화제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한해 동안 기간제 노동자 176명에게 5억여원의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 1월16일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따르면, 부산·전주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 국내 6대 국제영화제의 노동법 위반 사항이 다수 적발됐다. 영화제 스탭 541명에 대한 체불임금 금액이 무려 5억9713만원에 이르고, 영화제의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했으며,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지 않은데다가 근로조건의 서면명시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제 노동법 위반사항 시정 조치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6대 영화제 및 지방자치단체는 체불액 중 3억7천만원에 대해 지급을 즉시 완료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의 임금 체불 문제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뒤 영화제에 참여했던 스탭들이 트위터에 자신이 겪은 불합리한 처우들을 하나둘씩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그러면서 영화제 스탭 처우 논란이 트위터 같은 SNS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영화제 스탭 노동실태제보센터를 운영했던 청년유니온은 시간외수당 미지급 현황을 분석했고, 10월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영화제 스탭 근로계약 292개를 입수해 전수 분석한 결과 부산국제영화제 체불임금은 1억2400만원에 달한다. 이 금액은 같은 기간 영화제 내부 VIP를 초대하는 리셉션에 1억87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한 것과 대비된다.
영화제 노동법 위반사항 시정 조치와 더불어 국내 영화제들은 영화제 스탭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불합리한 처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차례로 내놓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사회는 지난해 11월16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미지급된 ‘시간외근로수당’에 대해 부산시와 재원 확보 방안을 논의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시정조치하도록 노력”하고,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다른 국제영화제들과 함께 스탭들의 근로환경 개선과 적정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 논의 과정을 모색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부산시 또한 긴급 예산 편성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전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해 12월 27일 단기 스탭을 포함한 근로자 대표 3명을 선출해 연장근로 임금 지급 방식 논의를 포함한 노사합의를 진행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지난해 12월 31일 노동조합 설립 총회를 열고 1월7일 부천시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아 6대 국제영화제 최초로 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지난 3월26일 국회에서 열린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김영주 의원은 “부산·부천·전주 등 국내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국제영화제에서 심각한 임금 체불 문제가 드러났다. 임금 체불과 관련한 부분은 고용노동부관할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를 관리·감독하는 건 문체부 소관이니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를 잘 살펴달라”고 당부했다. 박양우 장관은 당시 김 의원의 질의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영화제 스탭들의 처우 문제가 공론화되고, 노동 환경이 조금씩 개선되는 움직임은 반갑다.
*이 글은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간하는 <영화천국> 67호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