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답답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앞뒤 문장에 논리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기도 하죠. 그런 경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서평을 참조하기도 하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번역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원문을 보면서 서로 비교해는 사람이 아니기에 번역이 진짜 문제인지 판단하지는 못합니다. 가끔 나오는 의학 용어 번역이 어색할 경우,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만^^;
저는 번역이 좋지 못한 경우 두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줄거리, 내용이 바뀔 수 있다. 둘째는 내용 습득이 어려워 오히려 원문을 보는 것만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 때 물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영어 교과서와 번역본인 한글 교과서 두 책을 갖고 있었는데 저는 번역본을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한자용어와 줄줄이 나열하는 만연체 문장에 비해 영어 교과서는 쉬운 영어로 간략하게 설명을 했기 때문이죠. 대학에서 전공 공부를 하셨던 분이라면 한글 교과서가 더 복잡한 이런 느낌 많이들 느껴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번역을 때려치고, 그냥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번역청을 설립하라》의 저자 박상익은 이런 것들은 모두 번역이 소외되고 경시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비판하면서 국문 번역이 중요한 이유와 학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설명합니다.
전반적인 글의 내용에 동의하지만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바는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 의학 논문을 접할때 영어가 편하다고 느낍니다. 지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하루에도 수십편의 영어 논문이 나오는 상황에서 일일이 국문으로 번역되길 기다리긴 어렵습니다. 국가적으로 번역 수준이 올라가면 빠르게 국문 번역본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것도 수준의 한계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전과 기초 학문의 경우 알기쉬운 한글 번역은 굉장히 중요할 테지요. 번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 양질의 번역본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여담으로 이 책에 김재인 박사님()이 언급됩니다. 10년동안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번역하셨다고 하는군요. 인세는 330만원. 10년동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번역한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보상이라는 생각입니다. 학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