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잡썰] 찰스의 일대기 (출처 알수없음)
2019년 6월 13일(목)
그냥 재미로 읽으세요. ㅎ 찰스 험담은 아니니 올려도 괜찮을 겁니다.
찰스 출생과 지금까지의 역사가 꽤 재밌네요~
하와이의 마우이 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의사고 어머니는 전업 주부였고.
학교 없이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고 14살 정도에 고등학교 정도의 과정을 마침.
그리고 친할머니가 살고 있는 미국 콜로라도로 이사하여..
14살부터 Thrift Stores라는 가게에서 판매할 컴퓨터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일을 시작.
원래 의사가 되려고 했으므로 의료 보조원으로 일한 적도 있었고
하지만 의료 보조원으로 직접 의료 현실을 체험해 본 결과 자신은 의학에 그렇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대요.
계속 관심이 있었던 수학과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고 수학 교수라 되려고 콜로라도 대학에 진학.
동시에 경제나 금융에도 관심이 있던 시기.
덴버의 메르트로폴리탄 주립 대학과 콜로라도 대학을 오간 걸로 추정되는데
07년 당시 Ron Paul이라는 연방 하원의원의 정치 운동에 참여한 시절이 있어
그동안 공부했던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에는 볼수 없었던 월스트리트식 경제를 배울 수 있었다고.
찰스가 이른 나이에 정치 참여와 경제 활동을 맛보고 생각한 것은..
정치의 힘만으로는 이미 공개적으로 망가져 버린 구조는 바꿀 수 없다.
세상의 구조를 변경하려면 시장의 자유경쟁이 필요하다.
자유 경쟁은 빈곤한 국가를 풍부한 국가로 만들 수 있다.
라며 시장의 자유경쟁의 예로 한국전쟁을 예로 들..
여튼 그런 인식을 갖고 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2011년에 찰스가 처음으로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비트코인을 처음 듣고 접했을 때 이것은 굉장히 이론적이다 생각했다고..
당시 비트코인의 인식이야 당연히 자금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커뮤니티 자체도 매우 작았고.
11년 당시 비트코인 Meetup을 가졌는데
정모 장소에.. 자기 혼자밖에 안왔다고..
3명이 참가했는데
2명이 런하고,,
당시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으니 비트코인에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고..
물론 이것은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결국 가치를 인정하게 되면서 1세대라는 발판을 만들었죠.
이것은 찰스가 3세대 블록체인을 설명할때 첫 운을 떼면서 말하는 것으로 찰스는 '집단적 망상'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고 가치가 있다는 망상으로 인해 비트코인에 가치가 부여되었고 결국 가치가 되어 1세대가 되었죠~
그리고 계속 그렇게 소강상태였다가..
2013년에 비트코인이 25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시가총액도 처음으로 10억 이상을 달성.
지폐 이상으로 올라온 비트코인의 가치 때문에 많은 거래소들이 생겨났고 점점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알아가게 되었죠..
이 시기에 찰스는 원래 수학자나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이 암호화폐라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흐름을 타고 비트코인에 관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Bitcoin Education Project 인데요..
이 에듀케이션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비트코인이 무엇인가, 거래소나 지갑 마이닝 등을 교육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어용.
원래 찰스 자신이 생각하기에 한 백명정도 모일까 했는데 7만명이 모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비탈릭 부테린 다니엘 라리머 제레미 우드 등등 곧 역사인물에 기록될 사람들을 만나죠..
그리고 13년 6월에.. “당신에게 투자할테니 비트코인 주소를 당장 내놓으세요.”
라는 메일에 찰스한테 옵니다.
당시 비트코인 폭등 6개월 전.
이 메일을 보낸 사람은 중국의 큰손으로..
음 그냥 보낸메일명 이니까 뭐..
리 샤오 리우 라는데요..
하여튼 찰스는 그 메일 처음 받고 스캠인가? 생각했지만..
당시 50만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찰스에게 송금합니다.
그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많은 비트코인을 소유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암호화폐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략작으로 투자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마운트곡스 이후의 찰스.
그당시 찰스는 비트코인 에듀케이션의 학생들에게,
“돈을 얼마나 잃어도 상관 없으니까, 암호화폐 회사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거버넌스를 가진 회사가 베스트인가?”
라고 조언을 구한 찰스.
꽤 많은 답이 나왔지만 그 중에 '분산형 거래소', '가격 변동이 적은 코인'.
왜 분산형 거래소라는 개념이 나왔냐면 당시 거래소는 지금보다 더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적은 코인은 당시에도 역시 변동이 엄청 컸기 때문이죠.
비트코인 포럼이었던 Bitcointalk에서..
아이디어를 모았을 때 가장 먼저 답장을 준 사람이 바로 어..
댄라리머.
찰스는 당시 그가 매우 똑똑하고 재능있는 개발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금새 친해진 둘은 Invictus Innovation이라는 회사를 미국 버지니아 주에 설립합니다.
여튼 이런 새로운 생활 속에서 여러가지 토론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DAO(비 중앙 집권 조직)이라는 개념이 태어납니다.
지금 카르다노에서 말하는 탈중앙화에 가깝죠.
하지만 이후 댄라리머와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찰스가 말하길 그는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에는 절대로 틀렸다고 말하면서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
확고하게 가진 확신은 져버리지 않는 성격이라는것이죠.
그게 올바르든 잘못되든을 떠나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방향으로 가고는 성격.
찰스가 말하길 댄라리머의 가장 장점이자 가장 큰 약점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겁나 싸웠다고 합니다 ㅎㅅㅎ;
그와 함께 어울리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겪던 찰스는..
결국 Invictus에서 나와버립니다.
후에 암호화폐에서 꽤 네임드(?)였던 찰스는 계속 할 거리를 찾아다니다가..
제레미 우드 등 당시 이더리움 공동개발자들과
비탈릭 부테린하고 이더리움을 시작하게 돼요.
댄은 혼자서 Bitshare 했고..
그게 곧 스팀 이오스로 되는 발판이 되었지만 ㅎㅅㅎ
이더리움 프로젝트.
찰스가 말하길 이더리움은 Invictus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받았다고,,
이더리움은 일단 비탈릭이 쓴 백서에서부터 출발했었습니다.
주고받고, 백서는 2012년에 작성을 시작했고..
주고받고, 18세에 이더리움을 백서를 작성한 비탈릭.
비탈릭이 쓴 백서의 핵심인 컨센서스 프로토콜 알고리즘을 수학식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었죠
그 역할을 찰스가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설립자는 최초 7명이었습니다
비탈릭을 포함한 기술개발 이사진 3명
찰스를 포함한 영업이사직 4명
주고받고, 영업이사직엔 현 IOHK 공동창업자인 제레미 우드가 있습니다.
찰스가 그 안에서 맡은 역할은 개발진과 영업직간의 간극을 메꾸고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중간다리였어요
찰스는 기술부문에 잇어서도 이해도가 있었으니까
이더리움이 거의 완성된 시점에 이 결과물의 라이센스를 두고 편이 갈리게 됩니다
기술이사진은 이더리움을 파이어폭스 재단(비영리 오픈소스잳단)의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초안을 만들길 원했고
영업이사진은 구글의 라이센스(기본적으로는 오픈소스지만 기업 등을 대상으로엔터프라이즈 유료서비스)를 바탕으로 초안을 만들길 원했습니다
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아서 당시 100명 가까운 인원이 재직중이던 내부에 분열이 일어났고 결국 투표를 하게 됩니다.
투표 결과는 아시다시피, 비탈릭을 필두로한 개발진의 승.
나머지 영업이사진은 이더리움을 나가서 각자 자기 갈길 갔습니다.
나머지 3명 이사들도 자기 사업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더리움을 나가서 각자 자기 갈길 갔을 당시
Invictus, Ethereum에 휘둘렸던 찰스는
이번에는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회사를 경영하기로 결심한 듯
수십만 달러를 투자해 암호화 및 분산시스템 연구 개발 회사인 IOHK를 설립하는데
이더리움 나왔던 제레미 우드를 꼬드겨 공동창업합니다.
그때가 15년 3월.
근데 15년 3월과 10월 사이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아요.
15년 10월은 에이다 ICO를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다른 알트들 연구하고 백서를 쓰고 있었을 시기입니다.
당시 시점 기준으로 1000개 가량 알트들을 다 디벼보고 나서 백서로 정리했을 시간이
하루이틀로 가능하진 않았었을거니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합의프로토콜을 연구하는 기간이기도 했을테죠
백서가 나왔을땐 이미 합의프로토콜에 대한 기본안은 정립이 되었으니까
15년 7월 23일 당시 카르다노 소개 PDF를 찾았ㅜㄱ요
우와앙, PDF에 당시 코인마켓캡 사진도 있네요.
이 문서에서는 대놓고 온라인게임
카지노를 염두에 두고있었네요
아, 이더리움이 안 보이는 이유는 출범시기가 15년 7월이기 때문입니다.
이더리움은 막 코인 발매 하는 시기에 에이다는 ICO를 진행~.
어찌됐든 최초엔 연간 150조원에 달하는 온 라인카지노시장의 생태계를 점령하려고 만든것이라 볼수있고,
일반 사용자와, 개발자, 카지노 딜러 모두 수익을 가질 수있는 투명한 구조의 온라인 카지노게임을 목표로
스마트컨트랙트로서 그 투명성을 증명하려고 했다는것을 알 수있네요
당시 댄과 함께한 Invictus의 개념이 좀 남아있네요..
Emurgo의 원래 이름은 Cardano Gaming Group 이었으니
그..걸 기반으로 만든 듯합니다.
이제 좀 명확해지네요
초기 파트너는 아테인 코퍼레이션이었네
얘네들 도산하는 바람에 화이트리스트에도 못들어가고
역할 이어받을 애로 에마고가 생긴거네
최근 찰스가 말하길, 현재 암호화폐 업계는 텅 빈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앙꼬없는 찐빵 이라는 의미인데..
무슨 의미냐면, 초기에는 암호화폐 개발에 대해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자! 라는 거창하고 고상한 이상을 모두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원초적인 열정은 사라지고..
뭐 다들 알다시피 ICO의 범람 등..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사업가로 인해 썩었습니다.
IOHK. 즉 카르다노가 이 암호화폐 업계에서 하는 것은..
제 3자 없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세계가 새로운 방법으로 연동되고, 신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엄청난 금융구조를 취할 수 있는데 최근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을 보면 이런 발상 같은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벌어들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 헛된 노력을 합니다.
애증의 찰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길.. 당신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