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올 봄도 지나는 듯 하더니 어제는 느닷없이 우박에다 태풍에 버금가는 바람으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하루였던 것 같다.
장애를 가진 @hearing님의 글을 차분히 읽고 있다가 문득 어릴 적 동무녀석이 불현듯 생각난다.
그 친구는 동무랄 것도 없이 특별히 가까이 지내적도 없고 그저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것과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랐지만 여러 가지 환경이 달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친구였다.
시력에 큰 장애를 가진 친구였고 지능도 조금 모자란 친구여서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지만 늘 웃음으로 답하는 심성 고운 친구였다.
이 친구는 다른 것은 못해도 조용필의 노래들만은 기가 막히게 불렀다. 한창 유행하는 최신 가요를 불러보라 해도 언제나 조용필의 노래만 불렀고 아는 노래도 그 것밖에 없다고 했다.
늘 하모니카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불어대곤 했는데 가끔 동네 어른들의 술상 옆을 지나다 붙들려 노래를 한 곡조 하고 과자 한 봉지를 노래값으로 받아오기도 했었다.
어느 날 동네 어른 생일잔치에서 가장 잘하는 노래를 한 곡 부르라 하니 뜻밖에도 조용필의 노래가 아닌 ‘봄날은 간다’라는 오래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조용필의 노래가 아닌 것도 의외지만 하모니카로 전주를 연주하고 3절까지 부르는 ‘봄날은 간다’가 얼마나 구성지고 애절한지 손뼉치고 따라부르다 눈물을 훔치던 동네 아주머니를 본 기억도 난다.
나중에 그 친구가 전국노래자랑에 나온 것을 TV로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보지도 못했고 그 후의 소식도 아직까지 알지 못하고 있다.
하얀 목련으로 시작해 벚꽃 철쭉으로 끝난 봄의 향연을 아쉬워하면서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려 본다.
이 노래는 백설희 선생이 처음 발표한 후 배호 조용필 심수봉 장사익 한영애 최백호 등 다른 가수들에 의해 다른 느낌으로 불려졌는데 개인적으로 최백호가 부른 ‘봄날은 간다’를 제일 좋아한다. 어릴 적 내 동무가 불렀던 그 때의 느낌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녀석이 최백호만큼 노래를 잘 부른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