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향교 답사기입니다.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각 지방에 향교라는 학교를 세우고 그 안에 대성전을 두어 유학을 장려한 일종의 교육기관입니다.
김제는 조선시대 정치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지도 않았고 비중있는 인물이 배출되지도 않았는데 이같은 큰 향교를 세웠다는 것은 군지역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음을 알수 있습니다.
김제 향교의 정문격인 만화루의 모습입니다. 만화루만 보고서도 김제향교의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일요학교등을 운영하는 현대식 건축물을 안에 지어 정문인 만화루가 조금 비껴서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의 모습입니다. 좌우의 작은 당우는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른쪽이 보이는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이 흉물처럼 느껴집니다.
명륜당에서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입니다. 오른쪽이 입구 왼쪽이 출구인점을 보아 당시에는 우측통행이 보통이었던것으로 추정됩니다.
공자의 위패와 진영을 모신 대성전입니다. 이외 중국의 여러성현과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셔두고 있습니다. 좌우로는 동무 서무를 두어 조선의 유학자를 모셔두고 있습니다.
특이하게 정면은 흙벽이 아닌 판자로 벽을 마감처리해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김제 향교는 임진왜란 후인 정유재란때 모두 불탄것을 다시 지은 것입니다. 대성전을 제외한 건물은 일제 강점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들입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이곳 대성전에서는 '석전대제'라는 매우 큰 제사를 지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좌우로 작은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에 조선의 유학자 위패를 모셨다고 하는데 잠겨있어 열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대성전에서 내려다본 유생들의 기숙시설인 동재 서재 모습입니다.
동재의 모습입니다. 자연 모습 그대로의 목재를 사용한것이 재미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한옥의 창문양식인 들창문도 그대로 입니다.
정문 옆 만화루에 세워져 있는 각종 공덕비와 김제 군수들의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제일 끝에 김제 시의회의장의 비도 서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