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쯤 일제 강점기 일제가 우리 민족의 말살정책을 연구하는 2분의 답사일정에 잠시 동행한적이 있습니다.
한분은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수라고 하는데 주로 종교를 통한 민족말살 정책같은 것을 연구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저와는 잘 안맞는 분야라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이 분들과 방문한 곳은 전북 정읍시 입암면에 있는 보천교 중앙본소입니다.
보천교는 100여년전 김제 모악산 아래서일명 차천자(車天子)라고 불리는 월곡 차경석(車京石)이 증산도의 창시자인 강일순(姜一淳)을 만나면서 세운 신흥종교입니다
보천교는 증산도 교주 강일순 사후 보천교, 태을도, 훔치교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게 됩니다.
이 보천교도 증산도의 일파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보천교는 1919년경 조선 인구 2,000만명 중 600만명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었고 간부만 55만명이 넘는 신흥 대형종교였습니다.
민족주의 색채가 강해서 자금과 인력을 결합해 독립운동에도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보천교 본소의 규모는 대지 2만평에 건축물이 45채 부속건물 10여채에 달한다고 합니다. 당시 15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해 4년에 걸친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했다고 합니다.
정문을 들어가서 나오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에 달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이곳 주민들은 보천교 신도였고 이들을 위해 새로 기차역이 생길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규모가 짐작이 됩니다.
위 사진은 1931년경 보천교 본소 모습입니다. (출처: 불교포커스)
주 전각인 십일전은 경복궁의 근정전을 본따서 만들었고 여기 건물들을 짓는 나무는 만주에서 군산항을 통해 들여왔다고 합니다. 후에 십일전 건물은 해체해서 현재의 서울 조계사 대웅전으로 복원하게됩니다.
2층이었던 보천교의 정문인 보화문은 해체 후 2층만 정읍 내장사 대웅전으로 사용하다 화재로 소실됩니다.
화재가 나기전 내장사 대웅전 모습입니다. (출처: 불교포커스)
일제는 보천교의 세력이 커지고 독립운동 자금의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유사종교 철폐령을 내려 보천교 해산작업에 들어 갑니다. 이 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보천교 간부들은 살아남으려 친일활동을 하게되고 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분파해 현재는 신파와 구파로 나뉘어 신파는 종교활동을 하지만 구파는 현재 이름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일제에 의해 보천교는 망하게 되고 모든 재산은 경매로 넘어가게 됩니다.
구파의 본소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합니다.
내부에는 10여채의 한옥이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낡은 가옥입니다.
일부 쓸만한 집같아 보이지만 스레트 지붕과 함석 기와라고 하는 철재기와 그리고 시멘트 기와로 비만 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붕괴직전의 건물도 있습니다. 거의 손쓸만한 여력도 없어 보입니다.
옛 기와들만 남아 당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문의 뒷모습입니다. 거의 붕괴직전입니다. 시급히 수리하지 않으면 곧 무너지게 될 겁니다.
보천교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인과응보라는 생각입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오래된 불교, 신흥종교인 천주교, 개신교도 살아남았지만 보천교가 몰락하게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혹세무민입니다. 교주가 천자를 자처하고 스스로 옥황상제같은 지위로 사람들을 현혹했기 때문에 몰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해방 후 다시 조직되어 신파와 구파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지만 그 교세는 미미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