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군산에서 열린 제 1회 역사문화제의 일환으로 군산 동국사에 설치된 설치미술 금강 역사영화제 - 군산 동국사 설치미술에 대해서 포스팅 했었습니다.
이 설치미술에 대해 홍보책자에는 군산 동국사에 세워져 있는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이 일본정부와 일본 조동종의 일관성 없는 태도로 인해 진정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씌여져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표현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수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없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생각에 제 생각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군산 동국사에 세워진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은 1992년 당시 일본 조동종 총무원장 오다케 야키히코(大竹明彦) 명의로 발표된 장문의 문장입니다. (참사문 전문은 포스팅 말미에 게재합니다)
이후 일본 진종 대곡파는 1995년 '부전결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평화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그후 일본 조동종 소속의 아이모리 현 무상사주지 이치노헤 쇼코스님이 이끄는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 (이하 동지회라 부릅니다)이 군산 동국사에 이 참사문의 일부를 적은 참사문비를 세웁니다.
그후 일본 조동종은 이 참사문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이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저작권료 운운하며 자신들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천명하고 나서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일본 극우파의 협박과 일본 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것은 참사문 자체가 자신들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일본 조동종 홈페이지에도 공식적으로 게재됐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본내에도 일본 제국주의 자들이 자행한 침략과 전쟁 부분에 대해 진실을 알리는 한편 일본군의 만행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동지회입니다. 이들은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승려, 인권변호사, 학자 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후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참사문을 세운것도 그들이 비용을 부담하고 세웠고 군산시민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려고 모금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1천만원이라는 거금을 성금으로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이치노헤 쇼코 스님은 당시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조선침략 참회기'라는 책을 발간해서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모금운동을 할때는 발우를 들고 탁발에 나서면서 한사람의 일본인에게라도 진실을 알리려 동참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성금 모금과정에서 뺨을 맞기도 했고 극우주의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 스님은 외출할 때면 개인 경호원과 함께 나서야 할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이치노헤 스님과는 오랜시간 이야기도 나누었고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 동지회는 일회성의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으로 진실을 알리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치노혜스님과 동지회는 일제의 조선 침략과 관련한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서 한국으로 보내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이기 때문에 없어질 것을 우려해 한국에 보낸다고 합니다.
작은 엽서에서 부터 당시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영상, 사진 자료들과 문서가 수천점에 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본이 위안부 존재자체를 부인할 때는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콘돔과 위안소 깃발아래 줄지어 서있는 일본군의 사진을 보내와 일본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청도에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위안소 사진입니다.
조동종의 참사문에는 '사죄 또는 죄'라는 용어가 9번, '잘못'은 8번, '전쟁책임 혹은 책임'이라는 용어가 7번, '참회 및 반성'은 4번, '맹세'라는 단어는 2번이 나옵니다.
내용도 과거 종단이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무시했던 행태와 조동종출신 스님이 자행한 잘못은 종단의 책임임을 분명히 했고, 참회 방식으로 잘못 기록된 역사서를 모두 수거 폐기하겠다는 내용, 이러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과 이후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어떠한 사상이나 세력에도 참여하지 않고 단호히 거부할 것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이 ‘참사문’을 기초한 분은 당시 50대 중반이었고 지금은 작고한 '아리마 지츠조 (有馬 実成)스님으로조동종에서 약 1년여에 토론을 거쳐 발표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을 때까지 일본의 잘못을 일깨우는 작업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세계평화을 위해서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가 진정성있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진실을 알리려는 이들의 노력이나 진정성이 훼손되고 폄하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칫 또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지회를 비롯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까 우려됩니다.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 전문과 일본어 원문이 일본 조동종에 게시되었지만 지금은 삭제된 홈페이지 주소를 블록체인에 영구박제하려 합니다.
꼼꼼히 한편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http://www.sotozen-net.or.jp/wp/wp-content/uploads/2011/01/sanjyamon.pdf
우리 조동종은 메이지 정권 이후 태평양전쟁의 종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에서 해외 개교(開敎)라는 미명하에 당시 정치권력의 아시아 지배 야망에 가담, 영합하여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해 왔습니다.
또한 탈아입구(脫亞入歐)하에, 아시아인들과 그들의 문화를 멸시하고 일본의 국체와 불교에 대한 우월감으로 일본의 문화를 강요하고, 민족의 긍지와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해왔습니다. 게다가 불교의 교리에도 어긋나는 행위를 석가모니 세존과 삼국전등(三國傳燈)의 역대 조사의 이름으로 행해 왔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 해외전도(海外傳道)의 역사 위에 저질러 온 중대한 죄(過ち : 잘못,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아시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心からなる) 사죄(謝罪)를 행하고 참회(懺悔)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껏 해외전도를 종사해 온 사람들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일본의 해외 침략에 갈채를 보내고, 그것을 정당화해 온 종문(宗門)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이 조동종이 1980년에 출판한 책인 <조동종 해외개교 전도의 역사(曹洞宗 海外開敎 傳道史)>가 과거의 죄에 대해 반성이 결여된 상태로 발간되었고, 게다가 책의 본문에는 과거의 잘못을 긍정할 뿐 아니라 때로는 미화하거나 찬탄하며, 피해를 당한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도 배려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를 말한 것, 게다가 과거의 망령과 같은, 그리고 근대 일본의 오욕이라고 해야 할 황국사관을 긍정하는 듯한 시각으로 집필 출판되었던 것을 수치로 생각합니다.
또한 동시에 이러한 서적이 태평양전쟁 후 35년이 경과한 뒤에 출판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문이 메이지 시대 이후, 어떤 때는 국가에 아첨, 영합하고,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국가 정책(國策)에 가담하여 전쟁에 협력하면서 아시아 민중에게 도탄과 고통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없었고, 그 책임조차도 느끼지 못해 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카 (E. 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으나, 유감스럽게 우리 종문은 이러한 대화 노력을 게을리 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를 묻고,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면서 자신의 좌표축을 규명하려는 자세를 갖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1945년 패전 직후에 당연히 이루어졌어야 할 ‘전쟁 책임’에 대한 자기 비판을 게을리 한 것입니다.
조동종이 늦었다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그 태만함을 사죄하고 전쟁 협력의 사실을 인정하며 사죄합니다.
우리는 ‘전쟁 책임’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아시아 사람들의 고통 위에 서서 1985년 2월 이후 <조동종 해외개교 전도역사> 책의 문구 하나하나에 대해 철저한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 곳곳에 ‘민족 차별에 의한 차별적 표현’, ‘국책인 황민화 정책에 가담한 사실에 반성이 없는 표현’이 보이고, 이 책이 역사의 기록으로서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집필된 것일 뿐 아니라, 억압받은 사람들의 인권의 관점이 결여되었으며, 인권옹호를 추진하려는 우리 종문의 입장과 서로 모순되는 것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이 책을 회수하여 폐기처분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책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차별적 표현을 지적했지만, 그 지적은 이 책의 오류를 지탄(指彈)하는 것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반성을 게을리 하고, 전쟁책임을 회피해 온 우리 종문과 전 종문 사람들에게 향해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불교는 모든 인간이 불제자(佛子)로서 평등하며 어떠한 이유로도 타인에게 훼손(毁損)을 당해서는 안 되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석존의 법맥을 지켜나가는 것(嗣受)을 신앙의 귀추(歸趨)로 하는 우리 종문이, 아시아의 다른 민족을 침략하는 전쟁을 성전으로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특히 조선·한반도에서 일본은 황후 암살이라는 폭거(暴挙)를 저지르고, 조선을 속국화하여 결국 한일합방으로 한 국가와 민족을 말살(抹殺)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조선민족의 일본 동화를 도모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할 때,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이 어딘가 귀속되기를 원합니다. 가족, 언어, 민족, 국가, 국토, 문화, 신앙 등 자신이 귀속되는 곳의 정체성이 보장될 때, 사람은 안식을 느끼게 됩니다. 정체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황민화 정책은 조선 민족의 국가를 빼앗고, 언어를 빼앗고, 창씨개명이라는 민족문화에 뿌리를 둔 개인의 이름까지도 빼앗아 버렸습니다. 조동종을 비롯한 일본의 종교는 그 만행을 종교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종문은 중국 등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민중의 선무공작(宣撫工作)을 담당하고, 그 중에는 솔선하여 특무기관에 접촉, 스파이 활동을 벌인 승려도 있었습니다. 불교를 국가 정책이라는 세속법에 예속시키고, 더욱이 다른 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빼앗아 버리는 이중의 잘못을 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맹세합니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을.
사람은 누구라도 타인에 의해 침해당하거나 박해받는 일은 용인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둘도 없는 존재로서 이 땅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민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사람과 민족도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로서 타인의 침해를 거부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개별적으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과 국가도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통신과 교통기술이 진보하고 지구는 좁아져 정치와 경제가 국제화된 오늘, 지구는 하나의 공동체임이 분명해졌습니다. 불교가 말한 모든 존재가 ‘연기’된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도, 국가도, 민족도, 그것이 ‘연기’적 존재로서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 존재한다면, 타인을 침해하는 것은, 곧 자기 존재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다른 존재와의 공생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타인과의 공존이야말로 자신이 생존하는 근거인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다스리며,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고, 타인과 더불어 함께 배우며 사는 삶이야말로 불교의 평화사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이러한 관점을 놓치고, 불교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의 사상, 어느 하나의 신앙이, 비록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비록 어느 정도 완벽한 이론으로 무장하여 등장한다고 해도, 그것이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타인과의 공생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상을 거부하는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의 존엄성은, 그것들을 넘어 훨씬 더 엄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맹세합니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을. 그리고 과거 일본의 압정(壓政)에 시달렸던 아시아인들에게 깊이 사죄하며, 권력에 가담하여 가해자의 편에 서서 개교(開敎)에 임했던 조동종의 해외 전도의 잘못을 마음 깊이 사죄합니다.
1992년 11월 20일
曹洞宗 宗務總長
大竹明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