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잘 준비를 마치고 누워서 휴대폰으로 내 블로그를 대충 훑어본 뒤 마지막으로 이오스 시세를 확인했다. 내 행운의 여신이 알려줄 오늘의 운세가 궁금해서다.
예전엔 매일 타로 카드 어플에 들어가 타로점으로 하루의 운세를 점쳤다. 늘 집에만 있고 맨날 똑같이 글이나 쓰다 말다 하니 특별한 일이 생길 게 없어도 습관처럼 확인했다.
하지만 이오스를 산 후로 타로 카드 어플을 열지 않게 됐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이오스 시세를 보며 오늘의 운세를 점치게 된 것이다.
이오스가 오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마치 행운의 여신이 내게 미소지어 주는 것 같다. 어쩐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며 노래를 흥얼대면서 설거지를 시작한다(빠 빠 빨간 맛! 궁금해 허니~)
그러나 이오스가 떨어지고 있으면 긴장이 된다. 행운의 여신이 새빨간 눈을 번뜩이며 경고를 해주고 있다. 감기에 걸리지 않게 귤이라도 먹어야겠다, 설거지할 때 컵을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고양이 모래 화장실 치우는 걸 깜빡해서 고양이가 바닥에 똥을 싸버리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치워야겠다 등의 다짐을 하면서 잠든다.
누가 보면 내가 이오스에 전 재산이라도 털어넣은 줄 알겠다. 이 블로그를 자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 보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또 쓴다. 나는 암호 화폐 문외한이며 이오스는 그저 이름이 그리스 여신처럼 아름다워서 충동적으로 샀다. 그것도 아주 조금, 6.3이오스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 오신 분들에게 설명을 했으니 지금부터는 전부터 방문해주시던 분들에게 변명을 할 차례다. 뭐야? 그저께는 2.997이오스였는데 왜 그새 늘었어? 라고 의아해하셨을 테니까.
그렇다. 나는 또 이오스를 사고 말았다. 스팀잇 분들이 뉴비를 어여삐 여겨 십시일반으로 보팅해주신 덕분에 받은 소중한 스팀 달러를 또다시 써버리고 만 것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자기 변호를 해보자면 2.997이라는 숫자가 자꾸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 조금만 더 사서 숫자를 보기 좋게 맞추고 싶었는데 바이낸스는 최소 0.02이더리움 거래만 가능하고, 그래서 최소 거래량에 맞추려다 보니까, 또 수수료로 빠질 걸 감안하다 보니 그만... 더 사버렸다... 죄송합니다...ㅜㅜ
앞으로는 정말, 무조건 스팀 달러를 스팀 파워로 전환하는 데에 올인하려고 한다. 뉴비가 얼른 커서 다른 뉴비를 돕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원해준 분들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따금, 치킨을 시켜먹는 사치를 부리고 싶을 때 야금야금 빼서 쓰긴 하겠지만.
아무튼 오늘 새벽엔 행운의 여신이 미소짓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활짝! 그걸 보는 내 입가에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고였다.
이제 진짜 자야지, 하고 휴대폰을 머리 위에 놓고 자려고 눈을 감지만, 마음의 눈은 여전히 이오스 시세를 보고 있다. 그럼 자연스럽게 행복한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마치 이솝 우화에 나오는 목장 소녀처럼. 소녀가 우유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면서 앞날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듯이.
소녀는 우유를 팔아서 그걸로 달걀을 많이 사 병아리들을 부화시킨 다음 닭으로 키워 팔아 드레스를 사려 한다. 나는 내 6.3 이오스의 시세가 점점 올라 언젠가 1이오스가 1비트코인처럼 비싸지면 그걸 팔아 결혼하는 상상을 한다. 보증금 300에 월세 30만원짜리 낡고 작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오붓한 전세집에서 남편과 오손도손 사는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 고양이들이 살아 있다면 가난한 주인을 만나 못 누렸던 호강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 천장까지 닿는 으리으리한 캣타워도 사주고 애완동물용 전기 방석도 사주고 캔도 하루에 하나씩 따줘야지.
목장 소녀는 상상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시늉을 하다가 우유통을 바닥에 엎고 만다. 우유를 팔아 꿈을 이룰 기회가 날아가버린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장 내일 라면 살 돈이 없어 굶어야 해도 6.3이오스를 팔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행복한 상상을 끝냈다. 그러고는 이만 잠들려 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던 물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계속 들리고 있었는데 신나게 행복회로를 돌리느라 정신이 팔려 못 듣고 있었던 것이다. 물소리의 출처는 무척 잘 알고 있다. 화장실 변기 문제다.
3년 전인가 4년 전인가부터 변기 뒤에서 물이 또로롱 또로롱 흐르는 소리가 났다. 이거 설마 변기가 고장난 건가, 수도세 폭탄을 맞는 건가, 겁을 냈는데 수도세는 지난 달과 똑같았다. 그 다음 달에도 비슷했다. 물이 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물소리가 거슬리긴 했지만, 화장실 문을 닫으면 거의 안 들려서 나는 무시하고 쭉 살았다. 이 정도 일로 변기를 수리하려니까 돈도 아깝고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변기 물소리가 부쩍 커졌다고 느꼈다. 또로롱대는 소리가 나는 간격도 빨라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몇 달 전부터 수도세가 점점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한 달 수도세가 4만원이 넘게 나오고 말았다.
혼자 사는 데다 세탁기도 잘 돌리지 않는데 한 달에 25t이나 물을 썼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야말로 물을 물쓰듯이 써도 그 정도는 안 나올 것 같다. 범인은 아마도 변기가 아닐까. 이제야말로 사람을 불러 고치거나 아예 뜯어내고 새 걸로 바꿔야 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역시 돈이 아깝고 낯선 사람이 싫다. 나는 변기를 고치는 대신, 평소에는 물 공급하는 밸브를 잠가두고 내가 변기를 사용할 때만 열기로 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쪼그려 앉아 변기 아래 밸브를 열고 잠그는 게 귀찮긴 했지만, 한 달쯤 되니까 익숙해져서 습관이 됐다.
그러나 가끔은 밸브 잠그기를 까먹고 자려고 누울 때가 있다. 예전보다 물소리가 커졌기 때문에 조용한 새벽엔 유난히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잠이 오려다가도 그 소리가 신경 쓰여서 잠이 달아나 버린다.
일어나서 밸브를 잠그고 자면 되는데, 그 잠깐 일어나는 게 너무나도 귀찮다. 뜨뜻한 전기장판에서 푹신한 이불속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고양이들이 이미 내 근처에 자리를 잡고 누운 상태다. 내가 일어나면 고양이들도 따라 일어나서 또 한바탕 자기들끼리 싸우고 울고 괜히 집안을 돌아다니며 비닐을 씹어대고 책상 위의 물병을 쳐서 떨어뜨리는 식으로 소란을 피울 게 뻔했다.
나는 물소리를 무시하고 자기로 결심했다. 몇 시간쯤 밸브를 잠그지 않았다고 수도세가 많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꾸 잠들라치면 또 물소리가 신경 쓰이고, 빨리 가서 밸브를 잠가야 할 것 같고, 그런데 또 일어나기는 싫고의 반복이었다.
두 시간이 넘게 이불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고민하다가 결국 이대로는 못 자겠다 싶어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밸브를 잠그고 나오는데 새삼스럽게 내가 한심해졌다.
어차피 이렇게 잠그게 될 거, 진작 일어났으면 지금쯤 푹 잠들어 있을 텐데 왜 꾸물거렸는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때로는 남보다 나를 더 이해하기 어렵다. 남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내가 제일 이해하기 힘든 상대다.
지금도 무슨 이야길 하려다가 이렇게 흘러왔는지 모르겠다. 제목은 또 왜 저렇게 비장하게 붙였을까. 이 모든 의문을 그냥이라는 말로 게으르게 넘겨버리고 이만 아침 먹을 준비를 해야겠다(나는 아침 먹기도 귀찮아서 이 시간까지 미루고 있었다. 어이구 한심한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