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여름방학을 맞이해 봉사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투철한 봉사 정신의 소유자라 그런 건 아니고, 학교에서 정해준 봉사 활동 점수를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에 봉사 활동 제도가 도입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처리가 허술했다. 공무원 가족이 있는 아이들 중 몇은 봉사를 하러 가지 않고 확인증만 받아서 내는 잔꾀를 부렸다. 그 애들은 자기 것만이 아니라 자기랑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것까지 확인증을 받아다 줬다.
솔직히 나도 그 애들과 친했다면 확인증을 부탁했을 것이다. 봉사 활동을 어디서 해야 하는지 막막했고 느려터진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애들과 친하지 않아 그런 부탁은 할 수 없었다.
내가 친하게 지냈던 애들은 가족 중에 공무원이 없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참, 초등학생 땐 늘 친구가 없던 내가 중학교에 올라와선 친구가 여럿 생겼다. 굉장히 뿌듯하면서도 슬픈 사연이 있는데 이건 다음에 써야겠다. 또 글을 너무 길게 적고 싶지 않다ㅜㅜ
아무튼 나는 본의 아니게 정직하게 봉사 활동을 하려고 학교 근처의 한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 유치원은 우리 중학교에서 봉사 활동 장소로 인기가 높았기에, 무턱대고 가면 인원이 다 차서 그냥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유치원이 인기가 좋았던 이유는 학교와 가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무척 친절해서였다.
선생님들은 봉사하러 온 중학생들을 유치원생들만큼이나 귀여워해줬다. 아이들 방석 정리하기, 장난감 정리하기 같은 편한 일만 시키고 쉬는 시간도 꼬박 꼬박 줬다. 게다가 아이들 나눠주고 남은 간식까지 마음껏 먹게 해줬다. 땡볕 아래에서 허리 한 번 못 펴고 4시간을 꽉 채워 쓰레기만 줍게 하는 다른 기관과 비교하면 천국이었다.
그런 천국이니만큼 봉사할 시간을 예약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거절당할까봐 말을 더듬거리면서 봉사 활동 얘기를 꺼냈다.
다행히 선생님은 반색하며 며칠 뒤에 오라고 바로 약속을 잡아줬다. 그러면서 시간을 내어 도와주러 온다니 참 고맙다는 말씀까지 덧붙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들 입장에선 중학생이 도움은커녕 방해나 안 되면 다행이었을 텐데, 어쩜 그렇게 친절하실 수 있었는지 대단하게 느껴진다. 일의 강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아이 돌보기가 전문인 분들이라 남들보다 참을성이 배는 많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흘러 유치원에 가기로 한 날이 됐다.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실제로 몹시 긴장이 됐다) 집을 나섰다. 가는 동안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타난 나를 보고 선생님들은 깜짝 놀랐다. 집이 먼 데 있냐면서 찬물부터 주셨다.
유치원엔 나 말고도 먼저 온 중학생이 두 명 있었다. 둘 다 우리 중학교, 나와 같은 학년이라는데 처음 본 애들이었다. 아마도 2층에 있는 반이라(우리 반은 1층이었다) 마주친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셋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선생님을 따라갔다. 과연, 소문대로 일은 쉬웠다.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꽂아둔 동화책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인형을 차례대로 세워놓는 정도였다. 그나마 힘든 일이 아이들 낮잠 잘 때 덮는 이불을 햇볕에 널어두는 거였다. 물론 4시간 동안 공원을 배회하며 쓰레기 줍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이런 힘든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며 쉬는 시간을 넉넉하게 주셨다. 우리가 일을 하며 움직인 시간보다 가만히 앉아 논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덕분에 첫 봉사 활동 시간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렇다고 곤란한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인형을 보기 좋게 세워두면 몇몇 개구쟁이들이 와서 우아아아 소리를 지르면서 발로 차서 인형을 다시 쓰러뜨렸다. 누난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우리 형이랑 싸우면 이길 수 있어? 등등 나를 따라다니면서 계속 질문을 해대는 애도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무척 양호한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뭘 잘못해서 아이들을 울리기라도 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때문에 바짝 긴장했던 내 마음이 차츰 편안해졌다. 낮잠을 쿨쿨 자는 아이들 곁에서 동화책을 읽는 여유도 부렸다.
어느덧 봉사 활동이 끝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임무를 맡겼다. 바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과자와 요구르트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우리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애들 뒤를 쫓아다니며 간식을 하나씩 건넸다. 대체로 좋아라 하며 간식을 받아 먹었는데, 유독 나를 피하는 아이가 있었다. 머리를 양갈래로 귀엽게 묶은 여자애였다.
그 아이는 내가 다가가면 다른 데로 도망치고, 플라스틱 장난감 집속에 들어가 숨고, 식탁을 빙그르르 돌아 피하곤 했다. 얘야, 이리 와서 간식 먹어, 하고 불러도 고개를 도리질하면서 계속 도망쳤다. 왜 간식을 안 먹으려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선생님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 뒤로 쪼르르 달려가 숨었다.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에게 저 애가 간식을 안 먹으려고 한다고 일러바쳤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더니 어머나, 우리 예쁜 ㅇㅇ가 왜 간식을 안 먹을까아? 하고 구연동화 하듯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말없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만 도리질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목소리를 한 톤 더 높여서, 우리 예쁜 ㅇㅇ가 좋아하는 간식인데 진짜 안 먹을 거예요? 하고 물었다.
그쯤 되면 대답을 해줄 법도 한데, 아이는 그래도 고집스럽게 고개만 저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 손을 끌어 아이 앞으로 데려갔다. 그러면서 예쁜 언니가 ㅇㅇ이 먹으라고 간식 가져왔는데 안 먹으면 슬퍼할 거예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가 갑자기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순식간에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쳐서 방울방울 막 떨어졌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눈물을 쏟아내는 애는 처음 봤다.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나 때문인지, 선생님 때문인지 알쏭달쏭했지만 어쨌든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결국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잔뜩 당황한 나와 달리 아이 돌보기 전문가인 선생님은 침착했다. 아이를 끌어안고 능숙하게 어르면서 왜 우냐고 상냥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울음을 잠시 그친 애가 코를 훌쩍거리면서 나를 손가락질했다. 이 언니는 하나도 안 예쁘다고, 너무 못생겼다면서 또 엉엉 목놓아 울었다.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뜻이지?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내가 못생겨서 간식을 안 받았다는 소린가? 지금 내가 너무 못생겨서 우는 거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마음에 선생님을 봤더니 내내 침착하던 선생님의 표정이 좀 안 침착해져 있었다. 선생님도 당황한 눈치였다.
그래도 선생님은 끝까지 차분하게 아이를 달래면서 나한테 잠깐 다른 애들을 보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른 아이들에게 갔다. 나무 블럭을 발로 차는 애들을 피해서 블럭을 하나하나 줍는데 문득 서글퍼졌다.
나는 내가 못생긴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유치원에 다녔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못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무난하게 못생긴 편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아이를 울릴 위력이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못생겼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내가 애가 보고 울 정도로 못생겼다니... 그렇게까지 못생겼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쓰라렸다. 이제는 내가 울고 싶어졌다.
게다가 그 아이가 이 언니 너무 못생겼다고 말했을 때 하필 같은 중학교 애들도 근처에 있었다. 틀림없이 그 말을 들었을 거고 어쩌면 학교에 소문을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슬펐다.
유치원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우리는 원장 선생님에게 봉사 활동 확인증을 받았다. 종이를 접어 들고 나오려는데 아까 울던 아이를 달랬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왜 부르시나 해서 갔더니 선생님이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가끔 그렇게 짓궂은 말을 할 때가 있다고, 특히 울 때는 감정이 격해져서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온다는 거다. 그러니까 아까 있었던 일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진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네, 알겠습니다, 하고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러나 선생님 눈엔 내 속마음이 보였나 보다. 선생님은 유치원생 대하듯 내 두 손을 꼭 잡아쥐었다. 정말로 정말로 신경 쓸 필요 없다면서 한층 상냥하게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다. 하지만 대단히 정직한 분이시기도 했다. 선생님은 온갖 다정한 말로 나를 위로해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학생은 예쁘니까 자신감을 가지라는 거짓말만큼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은 절대로 그럴 의도가 아니셨겠지만, 나는 확인사살을 당한 기분으로 터벅터벅 유치원을 나섰다.
쓰고 나니 나한테는 정말 슬픈 이야기인데 다른 분들이 보시기엔 어떨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저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좀 슬픈 기분이 든다ㅜㅜ
이 슬픈 추억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별 거 없다. 자고 일어나서 거울을 봤더니 새벽에 라면을 먹고 자서인지, 끔찍스러운 추위 탓인지 얼굴이 탱탱 부어서 오늘따라 유독 못생겨 보이길래 아앗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번개같이 기억이 떠올랐다.
...근데 그냥 모른 척하고 다시 덮어놀 걸 그랬다. 이렇게 또 스팀잇에다 영영 지워지지 않을 나의 흑역사를 하나 더 쌓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