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oscarpark 입니다.
오랜만에 포스팅하게 되는데요, 삼월 첫 주에 그간 심사받던 논문 세 편이 연달아 채택되면서 최종 원고 전송, galley proof 몇 차례 그리고 copyright transfer에 서명하며 보냈더니 벌써 이번 달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biba1029 님이 올린 금일 포스트 박상기, 한국의 임칙서를 꿈구다?를 읽고서 드는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무 근거 없는 사견입니다.
관련 당사자들이 아니라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아마도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과연 그 발언이 박상기 장관의 소신 혹은 오로지 정부 당국의 국정 철학에서만 나온 것일까요? 그를 위한 변명도 아니고 저도 그 발언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는 일도 모릅니다. 다만 그 일에 영향을 끼쳤던 다른 힘이 있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위 취득 이전 학교 실험실을 떠나 암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집단에서 밥 벌이를 시작했었기 때문에, 공학 박사를 취득하고서 별 고민없이 지속하고 있고 운이 좋아서 아직도 학계에서 연구밥을 먹고 있습니다. 학위 취득 후 학계에서 연구분야를 지속하는 경우 그냥 연구(박사), 산업체로 가서 밥벌이 하는 경우 산업(박사), 국책 연구단이나 연구소에서 연구 지원 업무를 하는 경우 행정(박사) 뭐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그리고 또 정책입안과 관련한 쪽으로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책(박사)라고 합니다. 요즘 머학원 (대학원) 이후 진로 때문에 말이 많은 뭉과 (문과; 뭉게졌다고 뭉과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저도 고등학교에선 문과를 다녔다가 교차지원으로 공대갔고 부전공이 영어영문학인데... 막상 글에 써보니 뭉과란말 참 가슴 아픕니다.) 출신들만 행정이나 정책으로 가는게 아니라 전분야 막론하고 그렇게들 자리를 찾아들어갑니다.
'지네끼리 뭘 그렇게 나누냐? 놀구있네'랄 수 있겠지만, 저같이 가난한 연구는 산업에게 밥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고, 행정에게 연구계의 하청이랄 수 있는 수탁도 받을 수 있고, 정책에게 차년도 국책 연구비 테마도 주워 들을 수 있는데다 가끔 하청도 받곤합니다. 정책 제안 보고서 같은 것. 잘 보여야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에서 계에 자리잡은 연구 나부랑이가 산업, 행정, 정책에게 "최근 어떤 내용으로 출판하셨나?", "제가 요번에 어디 출판했어요." 이딴 소리했다간... 저는 계입니다. 계.
용돈 벌이로 정책 제안 보고서를 쓰곤했는데요 (요즘은 의뢰가 뜸하네요), 주제가 주어지면 '자유롭게 일필휘지로 태산과도 같은 내 고고함으로 현황을 적확하게 파헤쳐 주겠어' 따위는 단연코 없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써줄 것을 요구하곤 하죠. 그렇게 작성된 것이 다시 취합되어 정제됩니다. 원하는 워딩으로.
같은 말의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읽는 사람에게 문제점을 거래소로도 거래자로도 얼마든지 돌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핫하고 섹시한 워딩을 살짝 끼워 넣고, 거래소 계좌로 유입되는 금액부터해서 몇 가지 수치를 잘 설계된 (수치 조작이 아니라 차트 종류와 스케일을 달리해서 읽는 이에게 다른 반응을 유도하도록 설계 할 수 있습니다.) 차트를 집어넣으면 응급조치에 가까운 기초적인 규제 이후 차근 차근 규제안을 마련해서 대응해야할 문제도 극약 처방외에는 방법이 당장 없는 것으로 탈바꿈 할 수 있습니다.
고급 관료의 초입인 5급 사무관이 이어지는 야근과 철야로 관료 세계를 지탱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를 심화 전공자만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각 국책 연구소, 기업 연구소 외에 전문 기업 (JP모건이나 메릴린치나 그런...)에 의뢰를 하곤 합니다. (국책 연구소에선 관료들이 요구하는 보고서 때문에 연구 못 하겠다고 늘 아우성이죠.)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애국심이 가득 담긴 워딩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잘 설계되고 정제된 워딩이었을까요?
작년 연말, 혹은 지금도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신문을 통해 들은게 다인 사람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왜 박상기 장관은 그런 발언을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검찰 개혁 요구로 코너에 몰린 법무부 입지도 작용했을지 모르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내세우고픈 욕망의 발로도 작용했을지 모르고, 또 유동자산 투기를 지독히도 미워하는 심정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 그걸 부추기고 그런 행동을 이끌어낸 보고서 또한 존재 했을 겁니다. 그걸 한게 아마도 우화속 뱁새 겠죠.
재미로 읽어보실 만한 누가 올린 우화를 링크로 남겨봅니다. 3편은 통 안나오네요.
얼마간 본업에 불태우고 났더니, 요 몇 일 번아웃을 빙자한 태업에 연속입니다. 이 참에 재미도 유익함도 없는 채굴 경험담을 정리 중에 있는데, 다음 편엔 그걸 간단히 써볼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