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 안해원
어스름한 산밑에 벌건 눈동자가 껌벅거리며
소나무 숲을 휘감고 꿈틀거린다
쇄골이 드러난 노송의 뿌리를 발톱으로 움켜쥔 채
콧구멍에서 연신 구름을 내뿜으며 승천의 기를 돋울 때마다
시커먼 뿔은 기세 좋게 나무들을 꺾어내 제단을 만들고
날름거리는 혀는 풀숲의 생명을 휘감아 제물로 삼는다
등에 업은 바람의 곡면에 날개를 얹고 등성이를 타고 올라
비상의 정점인 산꼭대기를 향해 민둥한 날개를 휘적거리며
붉게 달구어진 몸짓들을 음식으로 삼는 저 용龍이
언제부터 이 땅의 군주였던가
승천은 꿈도 꾸지 마라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빗물에도 다시 뿌리를 내려
너의 허세를 흔적도 없이 덮어버릴
작은 풀 한 포기의 봄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