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습관적으로 앉아 있는 것은
자기 애착이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요구가 아니다
세안 후 로션을 바르거나 엉킨 머리카락을 매만질 때
금속성 대면은 일방적이고, 그녀는 창백하다
가슴골이 드러난 반라의 모습을 마주할 때도
초침만 조금씩 틈새를 좁히려고 힘을 쓰고 있을 뿐
거울은 처음부터 그녀에겐 관심이 없다
허리를 가볍게 휘감아 주거나, 감성적인 접촉도 없이
눈앞에서 표정 없는 무언의 시위자로 있을 뿐
희미해진 눈썹과 푸르스름한 입술
움푹해진 눈가의 푸른 반점들
거울 밖에서의 삶이란 때론 치명적이다
담배 냄새 찌든 중년 남자의 외눈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울은 어김없이 중독된 일상을 희롱한 후에
조금의 애착도 없이 무례하게 밀쳐 내 버린다
그래도 거울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토닥이며
색조의 문을 열고 연 금색 진주 펄 들판을 지나
꿈같은 인생을 날마다 손가락으로 더듬어 간다
어둠을 걷어내고 붉은 노을의 아침을 그려간다
그것이 사랑이라 믿는다
《작가노트》
우리는 모두 거울 속에 살고 있다. 더 예쁘게 더 화려하게, 이왕이면 원하는 곡선이 나오면 더욱 좋다. 내면 따위야 무엇이 중요한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만족스럽고 모두가 그렇게 봐주면 그뿐이다. 인생은 난해하고 사람들은 단조롭다. '외모'가 삶의 가치가 되어 버린 세상 속에서 거울은 정직할 수 없다. 희극같은 비극이다. 우리는 모두 여자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