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의 창조자 / 안해원
굴착기가 빌딩을 해체하고 있다
조그마한 기계 손이 거대한 과거를 분해한다
상승과 하강 좌우 회전의 반작용에 튕겨 나간 지식이
기하학의 선과 모서리를 무형의 곡선으로 만들다가
담 밑 구부러진 철근 더미에 걸려 나풀거린다
한 때의 영화는 쓰러져 분자의 군무가 되어 사라지고
과학과 산술이 무너진 자리에 여백이 찾아든다
잉잉거리는 소리의 유영이 귓속으로 들어와
눈동자 앞에서 영화의 불꽃을 회를 치며 날다가
형상을 만들고 여운을 남기고 이글거리는 추상이 된다
작은 손들이 큰 것을 부수고 위대함을 세우려는 시간에
크롤러는 마디마다 지표면을 흔들어 깨우는데
담벼락에 기대어 앉은 노숙자는 졸다가 일어나
해부의 기술 위에 기하학의 지식을 포개더니
주워든 꽁초를 비벼 손가락으로 말아 불을 댕긴 후
구름을 올려 목성을 만들고 은하수를 만든다
맹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