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에 새긴 詩 / 안해원
점점 배가 불러오는 바지 주머니를
모른 척 한지 몇 주가 지나자
만삭이 되어 걸을 때마다 불편해진다
꺼내어 와르르 쏟아내니
열쇠뭉치며 십 원짜리 동전에 조여진 쪽지
모서리가 아린 채
글 한 줄 쓰기에도 힘들 너덜한 모습으로
창백하게 바라보고 있다
비밀스럽게 굳게 입 다문 채
손가락들에게 오래도록 버림당한 쪽지,
노트 속, 한 편의 詩로 살지 못하고
윤기 없고 듬성한 삶의 거름종이가 되어
비벼대던 일상이 잠든 후
좁고 어두운 곳에서 가련히 쓰러져 있었다
이내 버리려다
무심히 스친 詩 한 편 있어
헤진 가슴속에 꼭 안겨주지 못하고
문신 새기 듯 조심스레 돌아가며 글을 적어
이름도 없는 허름한 노트 사이에 끼워주니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깊이 잠들어 간다